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같이탐구생활 행복한 복지⓫
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 2편
국민연금 제도 불신하는 국민 숱해
정부 재정안정 위한 개혁에만 몰두
핵심 빗나간 개혁 성공할 수 있을까 

# 오는 10월 말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할 국민연금 개혁안을 두고 수많은 뒷말이 떠돕니다.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방안을 담았다” “총선을 감안해 ‘더 받는’ 내용을 넣었다” “재정안정을 꾀해야 하는데 ‘더 받는’ 안이 말이 되는가” “‘더 받는’ 안이 없다면 국민연금 존재 이유가 뭐냐” “정부가 아예 숫자 없는 연금개혁안을 내놓을 전망이다” 등 끝도 없습니다. 

# ‘묻지마 뒷말’에 불과하지만, 이 얘기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있습니다. 다름 아닌 연금재정 고갈론입니다.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안이 나오는 것도, ‘더 받는’ 안을 우려하는 것도 모두 연금재정의 고갈과 직결돼 있습니다. 연금재정 고갈, 이젠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더스쿠프 같이탐구생활 ‘행복한 복지-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別傳 2편’에서 연금재정 고갈론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봤습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개혁하려면 국민들의 불안부터 잠재워야 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국민연금을 개혁하려면 국민들의 불안부터 잠재워야 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지금이라도 이자를 쳐서 전 국민에게 돌려줘라.” “자꾸 더 내고 덜 받으라는데 이건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 아닌가.” 최근 국민연금 개혁안 관련 보도에 빠지지 않고 달리는 댓글들입니다. 한마디로 국민연금 제도를 없애라는 거죠. 

물론 ‘더 내고 덜 받는다’는 건 지금까지 납부해온 돈보다 적게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전히 연금 수급자는 자신이 낸 돈보다는 많이 받지만 수익률이 하락한다는 뜻이죠. 이 때문에 덮어놓고 사기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국민연금 제도가 상당수 국민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건 정부가 곱씹어볼 문제임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국민연금 제도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르겠군요.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국민연금을 손보겠다는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 왔습니다.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논의하는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보건복지부 산하 전문가위원회)는 지난 13일 국민연금 개혁 자문안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했습니다. 지난해 11월 28일부터 11개월간 23차례의 회의 끝에 나온 자문안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이 자문안을 토대로 10월 말까지 개혁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재정계산위가 자문안에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개혁안엔 또 어떤 내용을 추가할 건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지난 4월 이후 재정계산위가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지난 9월 1일 진행한 공청회에서 언급된 자문안 초안과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정보를 통해 개혁안의 윤곽을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국민연금 개혁안 준비 과정은 대략 이렇게 정리됩니다. 첫째, 재정계산위는 2093년까지 국민연금기금의 고갈을 막는 데 재정계산의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를 통해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안을 시나리오별로 내놨죠.

둘째,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방안은 왜 고려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나오자 재정계산위는 소득대체율을 높일 경우 연금재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일부에선 이를 ‘더 받는’ 시나리오로 해석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연금재정에 미치는 악영향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게 재정계산위의 설명입니다.

셋째, 재정계산위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보건복지부는 현재 연금보험료 인상률이나 소득대체율 등의 숫자를 제시하지 않은 개혁안도 고려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는 자문안 내용을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는 자문안 내용을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재정계산위의 준비 과정을 잘 살펴보면 두가지 딜레마가 나타납니다. 재정안정에 무게를 두면 국민연금 제도의 존재 이유를 둘러싼 비판이 커집니다. 반대로 소득대체율에 초점을 맞추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국민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특히 재정안정에 무게를 둔 개혁안이 채택되고, 개혁안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유효기간은 2093년까지입니다. 그 이후엔 기금 고갈을 또 걱정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뭔가 이상할 겁니다.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이란 기치를 내세웠지만, 정작 답 없는 공방만 펼치고 있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린 지금 무엇을 논의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개혁의 첫번째 발걸음을 ‘국민연금제도를 왜 만들었는지’를 복기復棋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럼 지금부터 국민연금제도의 취지를 하나씩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국민연금제도는 국민의 노후 안정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취지였죠. 물론 이 제도 덕에 행복한 국민은 있습니다. 문제는 초기에 가입한 세대만 행복하고, 뒤에 가입하는 세대는 행복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보험료율은 오르고, 연금 수령 시기는 늦어지고, 소득대체율은 줄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가 생긴 이유는 뭘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기금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 기금 고갈 우려는 누군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생긴 게 아닙니다. 경기침체 등 대외변수 때문도 아닙니다. 정부가 애당초 국민연금을 설계할 때 ‘기금 고갈’을 전제로 삼았습니다. 

이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민연금 제도 시행(1988년) 이전에 발표한 ‘국민연금제도의 기본구상과 경제사회적 효과분석(1986년)’ 보고서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의 보고서엔 “2020년부터 재정 지출이 급격히 증가해 2047년에 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면서 “보험료율과 급여수준 등을 계속 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언뜻 봐도 기금 고갈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보험료율 조정이나 연금 수령 시기 조정, 기금 운용 수익률 등에 따라 시기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기금 고갈은 기정사실이었다는 겁니다.[※참고: 현재 국민연금의 개혁 과제가 37년 전 과제와 내용 면에서 똑같습니다. 기금 고갈을 막자는 거죠. 이는 애초부터 문제 해결의 방향을 잘못 설정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문제는 당시 정부가 국민연금의 전제를 국민에게 알려준 적 없다는 겁니다. 당연히 국민에게 ‘다른 의견이 있는가’를 물어본 적도 없고, ‘기금 고갈 후 이렇게 운영하면 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국민에게 ‘국민연금의 정체성’을 호도했습니다. 국민연금은 분명 ‘보험의 구조’를 띠고 있지만, 이를 저축이라고 표현하면서 가입자를 끌어모았던 겁니다. 관련 홍보영상은 지금도 국민연금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아직도 국민연금을 ‘저축’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후 들어선 정부도 설명을 하지 않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보장한다’면서도 어떻게 보장할 것이라고 명시한 적은 없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은 여전히 ‘기금 고갈이 언젠가는 발생할 텐데, 그 이후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재정계산위는 국민 재산에 영향을 주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준비하면서 그 회의록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자문안을 이미 보건복지부에 넘겼는데도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보험료율을 높여 재정안정만 꾀하면 개혁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개혁은 국민연금 제도의 당초 취지를 고려해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민의 신뢰가 필요합니다. 국민연금에 관한 정보들이 투명해져야 하고, 기금 고갈에 따른 공포가 사라져야 하며, 특정 세대가 손해를 보는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보험료율이 언제 또 오를지 몰라서, 연금 지급 시기가 언제 또 늦춰질지 몰라서, 기금 운용이 손실을 볼까 두려워서 전전긍긍해야 하는 지금의 국민연금 제도는 설사 재정계산위의 자문안대로 개혁을 한다 한들 지속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연금재정 안정에 바탕을 둔 재정계산보다 더 중요한 게 따로 있다는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국민연금 개혁안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럼 국민연금 제도는 개혁이 가능할까요? 사실 연금 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 가운데, 기금 고갈 우려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뿐입니다. 예컨대 호주는 세금으로 충당하는 기초연금과 사용자(고용주)가 전적으로 보험료를 부담하는 퇴직연금으로 연금 제도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제도는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보험료율이 엄청나게 높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훨씬 낮은 칠레는 소득의 10%를 보험료로 내고, 소득대체율은 70%에 달하지만, 기금 고갈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각국의 연금 제도를 벤치마킹하면 된다는 얘깁니다. 그런 개혁을 할 수 없다면 정말 수많은 국민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민에게 돈을 돌려주고 국민연금 제도를 폐지하는 걸 고려하는 게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보험률이 10%인데, 소득대체율은 70% 달하는 칠레의 연금에서도 기금 소진 우려는 없다.[사진=연합뉴스]
보험률이 10%인데, 소득대체율은 70% 달하는 칠레의 연금에서도 기금 소진 우려는 없다.[사진=연합뉴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대안을 검토해 볼 계획입니다. 국민연금이 고갈한다면 다른 방법은 없는지, 지금의 적립식을 끝까지 고집해야 하는 것인지, 한해 납부한 보험료로 보험금을 충당하는 부과식은 불가능한 대안인지, 제도를 손보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지 등을 검토해볼 생각입니다. 

대안을 검토하는 과정엔 이정우 전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와 「신新 국민연금 8대 비밀」과 「내일 국민연금이 없어진다면?」의 저자인 이승민 작가가 참여합니다. 둘의 대담은 더스쿠프 같이탐구생활 ‘행복한 복지-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別傳 3편’에서 다룰 생각입니다. 국민연금의 바람직한 개혁 방안은 과연 뭘까요?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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