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中 2차전지 원료 흑연 수출 통제
對美 맞불 전략이란 가능성 제기
韓 2차전지 겨냥한 거란 시각도
美日 챙긴 尹 향한 청구서일지도
지금 필요한 건 ‘똑똑한 대중 외교’

중국이 흑연의 수출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흑연은 2차전지 핵심 원자재다. 그러자 정부와 2차전지 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별 영향이 없을 거란 분석도 있지만, 업계에선 수입 통제 자체가 악재란 주장도 적지 않다. 이번 조치의 배경엔 윤석열 정부의 대중對中 외교가 영향을 줬을 거란 얘기도 나온다. 지금 우리 정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중국이 2차전지 핵심 원자재인 흑연의 수출을 통제하기로 했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뉴시스]
중국이 2차전지 핵심 원자재인 흑연의 수출을 통제하기로 했다. 사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뉴시스]

지난 10월 20일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세관)가 ‘흑연 품목의 임시 수출 통제 조치 최적화 및 조정에 관한 공고’를 발표했다. 이 공고엔 고순도ㆍ고강도ㆍ고밀도 흑연(인조흑연+천연흑연)과 그 제품의 수출을 통제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 상무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최근 중국 정부는 수출통제법에 따라 흑연 품목 임시 통제에 관한 전면적인 평가를 진행했고, 조정을 결정했다”면서 “기존에 임시 통제했던 고민감성 흑연 품목 3종을 이중용도 품목(민간용이지만 군수용으로도 전환할 수 있는 물자) 통제 리스트에 넣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신 철강 등에 쓰이는 저감도 흑연 품목에 관한 임시 수출 통제 조치는 취소했다.

쉽게 말해, 흑연을 군수물자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 통제 품목에 넣겠다는 거다. 이번 조치는 12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날을 기점으로 중국 내 흑연 제품 수출업자는 상무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수출을 할 수 있다. 중국 상무부는 “어떤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게 아니다”면서 “관련 규정에 들어맞는 수출은 허가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흑연이 2차전지의 핵심 원료 중 하나란 점이다.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가 미국을 넘어 한국까지 겨냥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이 저사양 인공지능(AI) 칩의 대중對中 수출을 통제하자 맞불을 놓은 것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로 2차전지가 타격을 입으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적극 밀고 있는 전기차 산업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2차전지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삼은 우리나라 역시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흑연 하나에 무슨 타격이 있겠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일단 흑연의 가치부터 살펴보자. 흑연은 2차전지에 들어가는 음극재의 핵심 원료다. 흑연의 품질에 따라 2차전지의 성능이 달라진다. 2차전지용 흑연은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2차전지용 흑연 수입액은 7909만 달러였고, 그중 94.3%(7461만 달러)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가 한국의 2차전지 산업 전체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대중국 수입의존도를 단기간에 줄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가 필수적인 이유다.[사진=뉴시스]
대중국 수입의존도를 단기간에 줄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가 필수적인 이유다.[사진=뉴시스]

물론 실질적인 타격이 없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김동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지난 8월 1일부터 차세대 반도체 필수 원자재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통제했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실질적인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면서 “이번에도 당장 통제를 하겠다는 것보다는 ‘언제든 통제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시진핑 주석이 한덕수 국무총리를 만나 방한訪韓 얘기를 나눴다는 걸 보면 최근 중국이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겨냥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한ㆍ중 관계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내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합작기업 설립 등을 통해 손을 잡고 있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는다. 

그럼에도 중국이 이번 조치를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쓴소리도 적지 않다. 익명을 원한 배터리소재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수입 절차가 뒤로 밀릴 수 있다. 수입 다변화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이 다른 원자재까지 통제하면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중국을 자극하는 일이 잦았던 만큼 실질적 통제와 추가 통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한중 관계는 차갑게 식었다. 지난 4월 윤 대통령이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의 긴장이 커진 건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시도했기 때문”이라면서 “국제 사회는 이런 변화(힘에 의한 변화)에 반대해야 한다”고 언급한 후 양국 관계는 더 얼어붙었다. 그 발언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중국의 기본 원칙을 부정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어진 8월 캠프데이비드에서의 한ㆍ미ㆍ일 안보협력 제도화 합의(사실상 군사동맹), 9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중국과 일본의 순서를 바꾼 윤 대통령의 ‘한ㆍ일ㆍ중’ 발언 등도 중국을 자극했을 거란 분석이 많다. 최근 시진핑 주석의 방한 얘기가 오가고 있긴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불편한 관계임은 부정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이번 흑연 수출 통제의 여파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많지만 결론은 하나다. 중국은 ‘언제든 수출 통제를 통해 한국을 압박할 준비를 갖췄다’는 거다. 더구나 중국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아직도 많다. 대중對中 수입 품목 중엔 국내 산업에 큰 영향을 주는 품목이 한둘이 아니어서다. 

일례로 2차전지 양극재에 들어가는 전구체(니켈ㆍ코발트ㆍ망간 수산화물, 산화텅스텐 등)의 중국 의존도는 96.7%(올해 1~9월 수입액 기준ㆍ이하 동일)에 달한다. 고성능 전기차 배터리에 주로 사용하는 수산화리튬의 의존도는 78.6%, 반도체 핵심 광물로 꼽히는 희토류의 의존도는 86.4%다. 역시 반도체 생산 공정에 쓰이는 네온의 의존도는 82.7%다. 세계 시장을 이끄는 한국의 반도체와 2차전지 산업이 중국의 몽니에 휘둘릴 수 있다는 방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생필품 중 중국산이 아닌 품목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지난 10일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20 23년 상반기 특정국 의존도 품목 수입액 현황’에 따르면 수입액 1000만 달러 이상 품목 중 특정국가 의존도가 90% 이상인 ‘절대 의존 품목’은 472개였는데, 이 가운데 266개 품목이 중국산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수입 다변화가 정답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만만치도 않다. 그러면 남는 건 하나다. ‘똑똑한 대중 외교’다. 우리 정부는 중국이 내밀 청구서에 대응할 만한 답을 갖고 있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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