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가계통신비 착시의 오류
10년 새 감소한 가계통신비
여기엔 ‘착시 현상’ 숨어 있어
2020년 기점으로 반등 시작
스마트폰 기깃값·5G가 원인
꿈틀대는 통신비 잡을 수 있나

# “2013년 15만2800원→2022년 12만8200원.” 가계통신비 변화 추이입니다. 계산해보면 16.0% 줄었습니다. 각종 미디어가 “가계통신비가 10년 새 크게 줄었다”는 기사를 쏟아낸 이유입니다.

#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우리집 통신비도, 옆집 통신비도 줄지 않았습니다. 어찌 된 영문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2020년을 기점으로 삼으면 가계통신비가 다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더스쿠프가 가계통신비에 숨은 ‘착시 현상’을 취재했습니다.

가계통신비가 최근 상승세로 돌아섰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가계통신비가 최근 상승세로 돌아섰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가계통신비가 10년 새 크게 줄었다.” 최근 미디어에서 가계통신비가 줄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에 따르면 2013년 15만2800원에 달했던 가계통신비는 10년이 흐른 지난해 12만8200원으로 16.0% 감소했습니다.

이렇게 가계통신비가 줄어든 데는 정부 정책이 한몫했습니다. 일단 정부가 이동통신3사보다 휴대전화 요금이 저렴한 알뜰폰을 2012년 도입한 게 통신비 인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알뜰폰 도입 이듬해인 2013년 14만3100원이던 통신서비스 비용이 지난해 9만9400원으로 30.5% 줄어든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죠.

정부가 이통3사와 연계해 취약계층을 위한 요금을 감면하는 정책을 조금씩 확대해온 것도 ‘통신비 절감’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지난해 통신사업 요금감면 금액 추정치는 1조2749억원으로 2016년(4040억원)보다 3.1배 늘었습니다(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 가계통신비 이상한 감소 =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집은 물론 옆집에서도 가계통신비가 줄었다는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오로지 미디어에서만 그렇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앞서 언급했던 가계통신비 통계를 쪼개서 살펴보면 얘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최근 들어 가계통신비가 다시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기점은 2020년입니다. 그해 11만9800원으로 10년 새 최저치였던 가계통신비는 이듬해 12만3800원으로 반등하더니, 올해 1분기에는 13만원까지 올랐습니다.

통신비가 오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통계는 또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누적 통신 물가는 100.99로 전년 동기(100)보다 0.99포인트 더 상승했습니다. ▲휴대전화 요금,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 ▲인터넷 요금, ▲휴대전화 수리비, ▲유선 전화료, ▲우편서비스 등 6개 품목 물가가 포함된 통신 물가는 2018년 이후 4년 연속 하락하다가(전년 대비) 지난해 0.7포인트 오르며 상승 전환했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올해는 상승폭이 더 커진 셈입니다. 그만큼 서민의 부담이 가중됐단 얘깁니다.

■ 가계통신비 증가 이유➊ 단말기 = 정부가 비용 인하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지금, 가계통신비가 다시 늘어난 이유는 뭘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가계통신비는 크게 ‘통신장비 지출’과 ‘통신서비스 지출’로 나뉘는데, 두 비용 모두 최근 들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통신장비 지출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통신장비 지출은 2013년 9500원에서 2022년 2만8500원으로 10년 새 3배가 됐습니다. 정부 정책 덕분에 계속 줄어들던 통신서비스 지출도 2020년(9만2300원)을 기점으로 늘기 시작해 지난해 전년(9만690 0원) 대비 2.5% 증가한 9만9400원을 기록했습니다.

통신장비 지출이 늘어나는 데 기여한 1등 공신은 휴대전화 가격입니다.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박완주 의원(무소속)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국내 휴대전화의 평균 가격은 87만3000원으로 10년 전인 2014년(62만원)보다 40.8% 올랐습니다.

최근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출시한 신제품 가격만 봐도 휴대전홧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일례로 삼성전자가 올해 초 출시한 ‘갤럭시S23’의 가격은 115만5000원(이하 256GB 기준)으로 전작(갤럭시S22·99만9900원)보다 15만5100원 비쌉니다. 애플이 최근 출시한 아이폰15의 경우, 기본 모델의 가격은 150만원으로 전작과 동일하지만 최고 사양인 아이폰15프로맥스 가격은 15만원 더 올랐죠.

■ 가계통신비 증가 이유➋ 5G = 그럼 통신서비스 지출은 왜 늘었을까요? 업계에선 4G보다 비싼 5G 가입자가 가파르게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5G 가입자 수는 2020년 466만8154명에서 올해 8월 3150만8059명으로 2년 8개월 만에 7배나 늘었습니다. 전체 무선통신서비스 가입자(8097만4439명) 10명 중 4명(38.9%)이 5G를 쓰는 셈입니다.

가계통신비가 늘어난 핵심 요인이 휴대전화 기기가격과 5G란 얘긴데, 문제는 이 둘을 규제하는 데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정부 관계자의 최근 발언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박윤규 과기부 제2차관은 지난 7월 10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아직 스마트폰 제조사에 가격 인하를 요청해본 적이 없다”면서 “삼성전자나 애플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으로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경쟁하는 제조사에 한국만 가격 인하를 요구할 순 없다는 겁니다.

물론 정부가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한껏 비싸진 휴대전화 기깃값 부담을 덜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중고폰 시장의 활성화’입니다. 이를 위해 ▲신뢰할 만한 중고폰 사업자 인증, ▲판매자-구매자 간의 거래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는 시스템 마련, ▲중고폰 사업자의 세금 부담 완화 등 중고폰 시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스마트폰 보조금 액수를 늘리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 이른바 ‘단통법’의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대리점이나 판매점이 통신사가 공시한 지원금의 15% 내에서 구매자에게 ‘추가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었는데, 개정안이 통과하면 추가 지원금을 30%까지 늘릴 수 있습니다.


그만큼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스마트폰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만, 이런 개정안이 형평성에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신민수 한양대(경영학) 교수는 “추가 지원금 확대는 자금력이 탄탄한 대형 유통점에 상당히 유리하다”면서 “이들 유통점만 이익을 보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할 수 있으므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고 5G 요금제를 손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통3사가 5G 요금제 인하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서입니다. 정부가 설득한 끝에 이통3사는 기존 요금제보다 저렴한 ‘중간 요금제’를 내놨습니다. 하지만 중간 요금제는 소비자들로부터 ‘데이터가 너무 적어 실효성이 없다’는 쓴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가계통신비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사가 난색을 표하고 있어서다.[사진=뉴시스]
정부가 나서서 가계통신비를 낮추기는 쉽지 않다. 스마트폰 제조사와 통신사가 난색을 표하고 있어서다.[사진=뉴시스]

가격이 저렴한 알뜰폰 업체들을 지원해 5G 요금을 낮추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알뜰폰 5G 이용자가 적다는 게 한계입니다. 5G 알뜰폰 이용자 수는 30만8578명(8월 기준)으로 전체 5G 이용자 수(3150만8059명)의 0.9%에 불과합니다. 알뜰폰 5G 요금제가 저렴해지더라도 가계통신비를 당장 낮추기 어렵다는 방증입니다.

익명을 원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이통3사의 주요 먹거리가 5G인 만큼 이통3사를 설득해 가격을 떨어뜨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같은 통신사를 쓰면 할인해 주는 통신사 결합할인 제도를 강화하거나 중간요금제를 더 세분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그나마 개선점이 보일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휴대전화 기깃값도, 5G 요금제도 손대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는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가계통신비를 통제할 수 있을까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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