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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 4편
연금 운영에 정부 개입하면 안돼
기금에 개입하면 쌈짓돈으로 사용
지배구조 바꾸고 정부는 손 떼야

“국민연금 개혁은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 3편에서 이정우 전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와 「내일 국민연금이 없어진다면?」의 저자인 이승민 작가가 공통적으로 지적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연금 제도의 신뢰 회복을 위해 필요한 건 뭘까요. 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 4편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운영과 기금 운용에 정치가 개입하면 국민연금 제도의 신뢰도가 떨어진다.[사진=뉴시스]
국민연금공단 운영과 기금 운용에 정치가 개입하면 국민연금 제도의 신뢰도가 떨어진다.[사진=뉴시스]

‘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 3편’에서 이승민 작가는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고양이(정부)에게 생선(국민연금 기금)을 맡긴 격이다.” 이정우 전 교수 역시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은 구조적으로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꼬집었죠. 국민연금 제도가 어떤 정권이냐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기금을 정부가 쌈짓돈처럼 쓰는 점을 지적한 겁니다. 

이런 비판은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상한 지배구조에서 출발합니다.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정부가 개입한 사건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당시 합병은 제일모직에 유리한 반면 삼성물산엔 불리했습니다. 그런데도 삼성물산의 대주주 국민연금공단(지분율 11.2%)은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죠. 이 비상식적인 결정의 뒤편엔 정부의 입김이 있었습니다. 

2017년 불거진 국정농단 사건과 그 재판 과정에서 실상이 나타났습니다. 올해 4월 한국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과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서 한국 정부가 일부 패소하면서 문제점은 더 명확해졌죠.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대통령이 임명한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공단의 운영을 주관하고 있으니 공단의 의결권 행사를 ‘사실상 정부의 결정’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엘리엇의 이익을 침해했다는 결론이 난 거죠.[※참고: 법무부는 판정에 불복해 영국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기금을 쌈짓돈처럼 끌어다 쓸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정부가 사회기반시설 확충에 필요한 자금을 국채발행을 통해 조달할 때 그 국채를 국민연금공단이 사줍니다.

방식은 ‘투자’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세금을 조달하지 않고 정책을 추진하는 셈입니다. 이처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둔 상황’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이정우 교수와 이승민 작가의 대담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기자 : “두 분 모두 국민연금공단 지배구조와 거기에서 기인한 문제점을 지적해 주셨는데요. 결국 국민연금공단과 기금이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거죠?”

이승민 작가(이하 이 작가) : “그렇죠.”

기자 :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캐나다연기금은 정치 개입 가능성을 없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캐나다연기금은 정치 개입 가능성을 없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이 작가 : “그게 참 어렵죠. 일례로 캐나다에도 캐나다연기금이라고 해서 우리의 국민연금공단과 비슷한 기관이 있어요. 캐나다연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들은 각 연방(주)의 재무부 장관이 임명합니다. 다만 우리처럼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하는 게 아니라 위원들이 위원장을 선출한다거나 외부의 감사를 받는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에요. 특별히 더 독립적인 구조를 가졌다고 하기는 어렵죠. 그럼에도 국민 신뢰도가 상당히 높아요.”

기자 : “왜일까요?”

이 작가 : “오로지 안정성과 수익성, 그 두가지에만 초점을 두고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죠. 정치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특히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캐나다연기금의 운용이 영향을 받지는 않아요. 국민도 모두 그걸 확신하고 있고요.”

인적 구성 바꾸면 독립성 생길까

이정우 교수(이하 이 교수) : “저는 독일 사례를 좀 들어볼게요. 독일은 각각의 직업군이나 업종에 따라 별도의 사회보험을 두고 있는데, 운영은 자치기구를 통해서 합니다. 이해당사자인 노동자와 사용자만 운영에 참여할 수 있어요. 참여자는 동률이고요. 정부는 오로지 감독자 역할만 합니다. 당사자가 운영하라는 거죠. 전문가가 필요하면 그 역시 당사자들이 꾸리면 됩니다.”

기자 : “그럼 독립적인 공단 운영과 기금 운용을 위해서는 독립적인 인적 구성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이 교수 : “꼭 그렇게만 말하기도 힘듭니다.”

기자 : “왜죠?”

이 교수 : “어떤 제도든 정치권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제도를 기획하고, 집행하고, 감독하는 게 그들이니까요. ‘인적 구성을 어떻게 하느냐’는 게 독립성을 담보해주진 못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노동자 대표와 사용자 대표, 정부 대표, 전문가 대표, 그 외 지역가입자 대표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잖아요. 하지만 정부가 제 입맛에 맞는 결정을 해 줄 사람을 추천하게끔 할 수도 있거든요.”

이 작가 : “저도 그 부분에 동의합니다. 사실 인적 구성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 혹은 어떤 사회적 합의가 정착돼 있느냐의 문제로 보는 게 더 합리적이죠.”

기자 : “결국 공단을 독립적인 조직으로 만들되 정부가 제도를 개선하는 일 외에 공단이나 기금의 운용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으면서 감독은 철저히 해야 한다는 걸로 정리하면 되겠군요. 그래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다는 거고요.”

이 교수 :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처럼 정부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개입하는 건 오히려 제도를 망치는 길입니다. 따라서 정부 개입을 막을 장치나 정부의 다짐이 없는 개혁 논의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 작가 : “제가 확정기여방식(DC)으로 연금제도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DC 방식은 가입자의 보험료를 개별 연금계좌에 적립하고, 적립금의 운용실적에 따라 연금수급액이 달라지는 제도입니다. 국민연금 제도를 두지 않은 나라들이 이런 방식의 퇴직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향후 연금을 얼마씩 고정적으로 받는 게 아니다 보니 수급자에게 운용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운용사는 수익률 경쟁을 펼칩니다. 시장경쟁 과정에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없죠.”

기자 : “정부는 시장 관리만 하면 되겠군요.” 

이 작가 : “그렇습니다. 어떤 나라에선 전체 운용사의 평균 수익률보다 낮으면 그 자체로 시장에서 퇴출당하기 때문에 연금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연히 고갈을 우려할 필요도 없고요.”

이 교수 : “이 부분은 이 작가님과 제 의견이 좀 다른 듯합니다. 우선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는데, DC 방식에서도 정부 지원이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세금감면 혜택(비과세)이 대표적인데요. 그만큼 정부는 그 부족분을 다른 세금으로 조달해야 하죠. 그렇게 되면 연금 보험료 납부액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큰 혜택을 받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게다가 부자가 더 좋은 상품에 더 일찍 가입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죠. 연금은 장기투자이기 때문에 수익률이 1%만 차이 나도 받는 돈이 크게 달라져요. 이런 방식은 공정하지 못한 것 아닐까요?”

국민연금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론을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전 교수와 이 작가의 의견이 조금 엇갈렸습니다. 상반된 두 의견은 국민연금 향한 질문 別傳 5편에서 풀어볼까 합니다.

<‘국민연금 향한 질문 別傳 5편’에서 계속>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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