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동네축제 텅 빈 보고서➊
지역축제 연 1000개 넘어
한해 행사ㆍ축제경비 수천억원
정체성 없이 난립하는 게 문제
전시성 행정에 예산만 낭비

# 너른 공터에 하얀 천막 수십개를 세우고, 귀가 떨어져나갈 듯 커다란 음악을 튼다. 흥을 돋우는 사회자의 목소리, 군침 도는 음식 냄새, 지나가는 발걸음을 멈춰 세우는 호객…. ‘OO축제’라고 이름 붙는 곳에서 늘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 한해 수백, 수천개의 축제가 열린다. 여기에 투입되는 예산도 수천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정체성 없이 난립하고 있는 축제들이 대부분이다. 전시성 행사로 전락하고 마는 우리동네 축제, 이대로 괜찮을까. 더스쿠프 視리즈 동네축제 텅 빈 보고서 첫번째 편이다. 

비슷비슷한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비슷비슷한 축제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오색찬란한 단풍과 한해 농사 수확이 한창인 요즘, 전국 곳곳이 축제로 시끌벅적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개최 예정인 축제를 포함해 올해 열리는 지역축제는 총 1129건이다.

지자체별로 보면 ‘진주남강유등축제’ ‘독일마을맥주축제’ 등을 개최하는 경남이 142개로 가장 많고, 경기(125개), 강원(118개) 순이다. 올해 축제는 지난해(944건)와 비교해 19.6%가 늘었다.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전환하고, 대부분의 방역체제가 해제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1129건의 지역축제 중 95.1%에 해당하는 1074건은 국비나 지방비로 예산 지원을 받는다. 가령, 1994년 시작된 한성백제문화제(서울 광진)는 국비 1억7500만원과 지방비 11억7200만원을 지원받아 열린다.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도농 어울림 축제(경기 화성)는 지방비 2억9000만원이 책정됐다. 여기에 집계되지 않은 축제까지 포함하면, 한해 동안 지역축제에 어마어마한 돈이 투입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인 지방재정365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지자체가 쓴 ‘행사·축제 경비’ 총액은 8969억5334만원이다. 서울시청이 449억2400만원으로 가장 많이 썼고, 제주시청이 254억5400만원을 지출했다. 민간단체와 상인회 등이 쓰는 돈까지 합하면 이 역시 더 많아진다.

지역축제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축제를 개최한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지역축제는 그저 ‘축제’에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그 축제를 계기로 해당 지역에 관심을 갖고, 재차 방문해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게 아니라 축제 하나로만 끝나는 일이 부지기수다. 

게다가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드는 축제도 숱하다. 이번엔 시선을 골목축제로 옮겨보자. 지역축제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면, 골목축제는 그 범위를 좁혀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게 주요 목적이다. 

정부는 2015년부터 주민주도형 골목경제사업(2015~2018년), 지역골목경제 융·복합상권 개발사업(2019년), 골목경제 회복지원사업(2020~2022년)을 이어오며 골목상권을 살리는 데 사활을 걸었다. 서울시도 골목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아래 2019년부터 ‘생활상권 지정’ ‘로컬브랜드 육성’ 등의 사업을 전개해오고 있다. 

먼저 ‘생활상권 육성사업’을 보자. 이 사업은 주민생활 중심지에서 도보 10분 이내의 침체한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게 골자다. 이를 근거로 서울시는 2020년 ▲신정6동(양천), ▲난곡동(관악), ▲창신동(종로), ▲방배2동(서초), ▲가락본동(송파)을 생활상권으로 선정하고, 2021년엔 ▲인수동(강북), ▲망원동(마포), ▲남가좌동(서대문), ▲방이동(송파), ▲행운동(관악), ▲면목동(중랑)을 추가했다.

지역축제가 많이 열리고 있지만 전시성 행사에 그치는 것도 많다.[사진=뉴시스]
지역축제가 많이 열리고 있지만 전시성 행사에 그치는 것도 많다.[사진=뉴시스]

이렇게 생활상권으로 지정된 곳에선 해마다 골목축제도 열린다.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9~11월)에도 열리고 있는 ‘골목상권 투어’가 그것이다.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에 밀려 침체한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일환으로 열리는 이 축제는 해당상권의 상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로컬마켓과 일일클래스가 주를 이룬다. 인수동(강북구)에선 10월 9일부터 13일까지 상점 영수증과 SNS 인증 이벤트를 열고, 10월 14일엔 강북문화예술회관 광장에서 로컬마켓과 맥주축제를 개최했다. 면목동(중랑구)에선 9월 9일 한신어린이공원, 10월 21~22일 겸재작은도서관 앞 산책로 일대에서 로컬마켓을 열었다.

골목상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차별화됐느냐고 묻는다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게 사실이다.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골목축제는 열리는 장소만 다를 뿐 그 내용이 비슷비슷하다. 주말이면 곳곳에서 열리는 프리마켓에서 만날 수 있는 품목들이 로컬마켓에 등장하고, 요즘 유행하는 ‘탕후루’를 판매하는 곳도 하나쯤 있다. 서울 내에 동일한 품목의 골목가게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골목축제만의 특색을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서울시의 또다른 골목상권 프로젝트인 ‘로컬브랜드 상권 사업’이다. 서울시는 지난해와 올해 ▲양재천길(서초구), ▲합정(마포구), ▲장충단길(중구), ▲선유로운(영등포구), ▲오류버들(구로구), ▲용마루길(용산구), ▲경춘선숲길(노원구) 7곳을 로컬브랜드 상권으로 선정했다.

로컬브랜드 상권은 스토리, 특화상품, 문화시설 등 유·무형의 지역자원을 활용한 특색 상권을 말한다. 상권당 3년간 최대 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이 사업에서도 현재 ‘Fall in 로컬!’이란 축제를 열고 있다. ‘장충단길 불멍 캠핑(중구)’ 등이 그나마 색다르긴 하지만 내용이 유사하다. 더욱이 같은 기간 열리고 있는 ‘골목상권 투어’와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생활상권 육성사업’이 상권별로 올해 또는 내년에 마무리되는데, 그 사업을 ‘로컬브랜드 상권 사업’이 이어받고 있다”면서 “그러다보니 아직 기한이 남아 있는 상권과 로컬브랜드 상권에서 비슷한 유형의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시다발적인 사업으로 인해 동시다발적으로 골목축제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골목상권 살리기 사업의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골목상권 활성화 사업을 통해 종로구 통인시장의 엽전 도시락, 노원구 도깨비시장의 ‘도깨비’ 캐릭터가 탄생했다. 강북구 장미원 골목시장은 ‘장미원’이라는 이름을 따 입구를 장미꽃 모양의 구조물로 장식했다. 입구엔 점포 안내 지도도 만들어 부착했다.

골목상권 활성화 사업을 통해 생긴 변화인 건 맞지만 이것 말고는 달라진 점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변화로 상권에 어떤 경제적 효과가 보태졌는지 알 수 없지만 늘 오던 사람이 오고, 사던 사람이 산다. 

지역 콘텐츠를 살린 동네축제가 필요하다.[사진=연합뉴스]
지역 콘텐츠를 살린 동네축제가 필요하다.[사진=연합뉴스]

하얀 천막을 빼곡하게 세워놓고,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품목을 늘어놓는 골목축제로 골목상권의 활성화를 기대하긴 역부족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지역축제의 지속가능성 개선방안(2019년)’ 보고서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상당수 축제가 경쟁력 없는 전시성 행사로 전락하거나 축제의 본질적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다.” 

골목을 살리고 지역경제를 끌어올릴 축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고민해볼 때가 됐다. 그렇지 않으면 한해에만 수십억~수백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축제들이 지역경제를 살리기는커녕 전시성 행정으로 그치고 말 거란 얘기다. ‘동네축제 텅 빈 보고서’ 다음편에선 지난 10월 21~22일 열린 면목동(중랑) 골목축제 ‘말콩달콩 in 면목’ 취재기를 다룰 예정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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