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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 마지막편
어떤 방식이든 구조 개혁이 우선
이해당사자인 정부, 구조 안 바꿔
고양이로부터 생선 뺏어와야 개혁

# ‘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 5편’에서 이정우 전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와 「내일 국민연금이 없어진다면?」의 저자인 이승민 작가는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손봐야 하는지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놨습니다. 

# 그럼에도 문제 인식은 같았습니다. 국민연금 제도를 구조적으로 손보지 않은 채, 보험료율 인상이나 연금 수급 연령 연장 등 연금 재정 안정화만 꾀하는 것은 개혁이라 할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 그렇다면 역대 정부는 왜 국민연금제도의 개혁을 외치면서도 정작 구조를 혁신하는 논의는 진행하지 않은 걸까요? 더스쿠프 같이탐구생활-행복한 복지 ‘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 마지막편입니다. 

현재 국민연금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가입자와 수급자다. 그들의 입장에서 제도 개혁을 생각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현재 국민연금 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가입자와 수급자다. 그들의 입장에서 제도 개혁을 생각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민연금 향한 질문 별전’ 마지막 편을 펼치기에 앞서 이정우 전 인제대 교수와 이승민 작가가 지금까지 주장해온 ‘국민연금 개혁론’을 요약해보겠습니다. 두 전문가는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국민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고, 국민연금 기금 운용을 정부가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정권에 따라 제도가 오락가락한다는 점에 공감했습니다. 

그로 인해 국민연금 제도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으니 그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습니다. 다만 방법론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승민 작가는 개인별 연금 적립금을 모두 나눠준 뒤 시장을 통해 각자 운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완전한 적립식으로 운영하자는 건데, 그렇게 하면 수익률이 높은 쪽으로 가입자가 이동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다고 이 작가는 말했습니다. 

영미권 국가들이 이런 방식의 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방식도 복잡하지 않아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 작가의 논리는 ‘국민연금 폐지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연금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수 없다면 적립기금을 국민에게 모두 나눠준 후 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게 그의 주장이니까요. 

반면 이정우 전 교수는 제대로 된 부과식으로의 개혁을 주장합니다. 여기엔 몇가지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현행 국민연금 제도가 부과식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저출산ㆍ고령화가 반드시 보험료율 인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 실제로는 노동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저출산ㆍ고령화 문제 해결 방식이나 연금 재정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국민연금에 시장 논리를 대입하면 불공정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점 등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부과식으로 개혁하면 우려하는 것처럼 보험료율을 급격히 올리지 않고도 충분히 국민연금 제도를 사회복지 제도의 한축으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입니다. 

흥미로운 건 두 전문가 모두 보험료율을 얼마나 인상해야 하는지, 연금 수급 연령을 얼마나 늦춰야 하는지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보다 구조 혁신이 선결과제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국민연금 제도’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겁니다.

역대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 제도 개혁을 얘기할 때면 가장 먼저 보험료율을 거론했다.[사진=연합뉴스]
역대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 제도 개혁을 얘기할 때면 가장 먼저 보험료율을 거론했다.[사진=연합뉴스]

그럼 왜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구조 개혁을 말하지 않는 걸까요? 두 분의 대담을 더 들으면서 그 논의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기자 : “두 분 모두 보험료율을 인상하거나 연금 수령의 연령을 연장하는 건 국민연금 개혁의 핵심이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이유가 뭔가요?”

이정우 교수(이하 이 교수) : “앞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는데요. 보험료율을 올린다면 대체 얼마나 올려야 하는지 과학적 근거를 갖고 적정선을 제시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와 공단은 그러지 않아요. ‘어느 정도 올려야 기금 고갈을 얼마나 더 늦출 수 있다’는 식의 계산이 전부입니다. 그게 무슨 개혁입니까?” 

이승민 작가(이하 이 작가) :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60세가 되기도 전에 퇴직하는 이들이 대부분인데, 연금은 수년 후에 받으라니 이건 말이 안 되죠. 노후 안정을 위한 제도라고 하지만, 오히려 노후를 더 불안정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기자 : “그럼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노후 안정을 위한 적절한 제도라고 보시나요?” 

이 작가 : “완전 적립방식이기 때문에 기금이 고갈될 우려가 없습니다. 55세만 되면 얼마든지 연금을 받을 수 있어서 본래 기능에도 충실하죠. IRP를 채택한 다른 나라들의 경우, 우리나라와 비슷한 보험료율(9%)을 부담하거나 혹은 더 적은 보험료율을 부담하면서도 연금 수급액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환율이나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말이죠. 게다가 최근의 노동 환경과 IRP는 꽤 잘 어울리는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기자 : “그건 무슨 뜻이죠?”

이 작가 : “요즘은 ‘N잡러’라고 해서 여러 개의 파트타임 일자리를 가진 이들이 많잖아요. 이런 경우 N잡러는 A회사에서도 퇴직연금을 받고, B회사에서도 퇴직연금을 받아요. 그럼 퇴직연금이 두곳에서 들어오니까 노동자로선 이득입니다.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시대에 IRP가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거죠.” 

이 교수 : “하지만 IRP 방식으로 갈 경우, 또다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어요.”

기자 : “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어떤 방식으로 연금 제도를 뜯어고치느냐보다 중요한 건 각 방식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추는 거다.[사진=뉴시스]
어떤 방식으로 연금 제도를 뜯어고치느냐보다 중요한 건 각 방식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추는 거다.[사진=뉴시스]

이 교수 : “예를 들면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려 할 때, IRP라는 안전망이 있으니 해고 좀 해도 되지 않느냐란 주장을 펼 수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지금껏 공적연금에 연계돼 있던 다양한 사회보장 시스템들이 서서히 무너질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 등도 영향을 받아요. 이게 혼자 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거든요. 특히 우리 국민연금제도는 애초에 부과식으로 설계했어요. 그래서 저는 시스템을 갈아엎는 것보단 국민연금을 설계 취지대로만 운영해도 지속가능한 제도로 정착할 수 있다고 봐요. 가령, ‘국민연금제도를 이젠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에 불씨를 제공한 기금 고갈이란 문제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노인이 많아진다는 것에서 출발한 거예요. 이건 연금의 문제가 아닌 노동시장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만 해결해도 연금 문제의 절반은 해결하는 셈이죠.” 

이 작가 : “사회보장 시스템이 약해질 수 있다는 건 저도 인정합니다. 교수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처럼 제대로 된 부과식으로 국민연금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보고요. 하지만 과연 그 어느 정부가 국민연금 제도 개혁을 위해서 노동시장까지 확실하게 챙기면서 개혁을 이뤄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부분에서 참 회의가 듭니다.”

이 교수 : “그렇죠. 누구든 쉽고 빠른 길을 택하려 하지, 복잡하고 어려운 건 택하려 하지 않으니까요.”

기자 : “두 분 말씀을 듣다 보니 우리가 어떤 방식을 택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택한 방식에 맞는 시스템을 얼마나 잘 구축하느냐가 더 중요한 듯합니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게 있습니다. 그럼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왜 이런 근본적인 논의를 하지 않는 걸까요?”

이 작가 : “어떤 방식이 됐든 제대로 개혁을 하려 하면 정부의 개입을 막는 쪽으로 지배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건 정부에 손해잖아요. 지금껏 국민연금 기금으로 국공채 등에 투자하면서 다양한 정책사업을 펼쳐왔는데, 기금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면 반가울 리 없죠.” 

이 교수 :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놨는데, 그 생선을 다시 달라고 하면 쉽게 주겠습니까?”

기자 : “보험료율을 올려서 기금 적립금을 더 늘리자는 주장도 정부와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시나요?”

이 작가 : “저는 그렇게 봅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기금 적립금을 늘리는 게 결코 좋은 일이 아니거든요. 기금은 대부분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됩니다. 지금은 당해연도의 보험료가 그해 연금을 충족하고 있지만, 고령화로 인해 그게 어려워진다면 공단은 투자 자산들을 매각해서 현금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단이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는 건 전 세계가 알아요. 그러니 누가 그 자산을 비싼 값에 사주겠어요? 공단은 수익은커녕 본전도 찾기 힘든 상황이 될 거예요. 저는 공단의 모든 자산이 굉장히 헐값에 팔릴 거라고 봅니다.” 

기자 : “교수님도 이런 전망에 동의하시나요?”

이 교수 : “적립 기금이 최대치에 이르는 시점까지 지금과 같은 투자를 하고, 이후부터 자산 매각을 한다면 이 작가님 말씀처럼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봅니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자산을 조금씩이라도 현금화할 계획을 세워야겠죠. ‘기금 적립금을 늘리면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은 환상에 불과합니다.” 

자, 여러분은 두 분의 대담을 어떻게 보셨나요? 어쩌면 우린 지금보다 더 좋은 국민연금 제도를 가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두 전문가의 지적대로 국민연금을 제대로 개혁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연금 재정 안정화만을 위한 보험료율 인상, 연금 수급 연령 연장 등 핵심이 아닌 부차적인 것들에 더 신경 쓰면 그 기회는 점점 멀어질지 모릅니다. 우리 정부는 어느 쪽 길을 걷고 있는 걸까요?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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