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일산 지역 초교 집단폭행 사건
피해학생 아버지 단독인터뷰➋
11명 동급생 장애학생 폭행
틱 증상 때문에 따돌림 악화
학교 측 ADHD 약 복용 누설
교감은 대안학교 전학 언급
공론화 후 여론 조리돌림까지
피해자 父 소송전 불사한 이유

학폭은 피해 학생과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다.[사진=연합뉴스]
학폭은 피해 학생과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다.[사진=연합뉴스]

# 학폭 사건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이슈입니다. 고위공직자들이 직職을 내려놓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죠. 유명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도 학폭에 연루되면 운동장이나 스크린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 하지만 학폭을 예방하는 시스템도, 학폭 피해학생을 위한 구제책도 아직 미흡하기만 합니다. 학폭을 당한 학생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조차 마련하지 않은 학교가 숱할 정도이니,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교육 당국과 학교가 학폭 가해자에게 엄정한 처분을 내리고 있는지 의문을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 지난 8월 29일,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5학년 동급생 11명이 한명의 학생을 집단폭행했던 겁니다. 이 사건은 ‘일산 지역 초등학교 집단폭행’으로 명명돼 신문과 방송에서도 조명을 받았습니다.

# 더스쿠프가 사건의 피해학생 아버지 A씨를 직접 만났습니다. A씨는 “진짜 문제는 집단폭행 사건이 아니라 학폭을 예방할 수 없는 교육 시스템”라면서 “우리 가족은 학교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소송전을 선택했다”고 한탄했습니다. 피해학생 아버지 단독 인터뷰 두번째 편입니다. 

학교는 법적 다툼의 장으로 전락했다.[사진=연합뉴스]
학교는 법적 다툼의 장으로 전락했다.[사진=연합뉴스]

우리는 ‘일산 지역 초교 학폭 사건’ 1편에서 사건의 전말을 살펴봤습니다. 틱 증상이 있는 피해학생 B군은 동급생 10여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지만, 담임교사는 B군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이 친구를 때렸으니 빨리 전화를 하셔서 사과를 하시라”는 엉뚱한 말을 남겼습니다.  

물론 처음엔 사건의 진실을 잘못 파악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담임교사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B군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B군은 틱 증상이 있다는 이유로 공공연하게 따돌림을 당해오던 아이였습니다. 담임교사가 이런 사실을 모조리 외면한 채 어머니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담임교사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학교의 최고 책임자인 교감 역시 B군의 호소를 외면했습니다. B군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긴커녕 B군 부모에게 ‘쌍방 폭행’을 운운하거나 기숙형 대안학교로의 전학을 권유했습니다. 

현재 B군의 아버지 A씨는 아들의 따돌림을 주도한 가해학생과 그 학생의 부모, 그리고 담임교사와 교감선생, 기사에 조롱하는 악플을 단 누리꾼을 대상으로 여러 건의 소송을 제기해 놓은 상태입니다. 특히 A씨가 분노한 건 학생의 방패 역할을 해줘야 할 학교 측이 혐오와 차별을 부추겼다는 점입니다.  

✚ 담임교사의 문제는 앞서 지적했습니다. 교감은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아들이 틱 증상으로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은 담임교사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반 학생들이 다 알고 있더라고요. 심지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란 소문까지 퍼졌습니다. 이게 아들을 향한 학급 따돌림이 확산하는 계기였습니다. 알고 보니 이 사실을 학생에게 알린 게 교감이었습니다.”

✚ 교감이 학생의 민감한 정보를 알렸다고요?
“아들의 수업 태도를 탐탁잖게 여긴 학생 몇몇이 교감에게 민원을 제기했나 봅니다. 이때 교감이 우리 아들을 두고 ‘ADHD 약을 먹는 환자니까 이해해라’란 식으로 얘기했습니다. 이건 집단폭행 당시 가해학생 부모로부터 확인받은 내용입니다. 소송의 증거자료로도 제출했습니다.”

✚ 아이의 정보를 노출하는 건 심각한 문제로 보입니다. 
“아들의 발달이 느린 건 맞습니다. 다른 점도 분명 있습니다. 다만 통합반(비장애학생과 함께 수업을 받는 반)을 다니면서도 그동안 큰 사고가 없었습니다. 생활기록부에도 행동과 습관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성장하고 있다는 거였죠.”

A씨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5학년 때 통합반으로 진학한 건 긍정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은 ADHD 약을 먹는 심각한 문제아로 몰렸습니다. 학급에선 ‘징그러운 아이’로 통했다더군요. 그간 꾸준히 아들의 따돌림을 주도했던 학생은 이번 집단폭행 사건에 연루되지도 않았어요. 당시 현장에 없었거든요.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애를 엄하게 다그쳤으니 참….”

장애학생이 학교에서 각종 편견과 맞닥뜨리는 건 흔한 일입니다. “다른 학생의 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비장애 학생과의 분리를 원하는 학부모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특수교육 전문가들은 “여러 연구에서 통합교육을 받은 학생이 분리교육을 받은 학생에 비해 높은 사회적응력을 보인다는 게 증명됐다”면서 “또래 친구와 어울리며 일상생활에 필요한 경험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A씨 역시 학교가 이번 폭행 사건을 계기로 B군을 ‘분리’하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 B군에게 장애가 있는 거라면, 학교 측은 더 적극적으로 보호하려는 제스처를 취해야 했던 게 아닌가요.
“보호요? 교감은 계속 ‘쌍방폭행으로 번질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참 친절하게도 대안을 제시해 주기도 했습니다.”

✚ 어떤 대안인가요.
“교감이 그러더군요. 기숙형 대안학교를 알아봐 줄 테니 전학을 가라고요. 대안학교를 다니고도 대학에 간 사례가 있다면서요. ‘우리가 왜 도망쳐야 하냐’고 따져 묻자 ‘그게 왜 도망가는 거라고 생각하냐, 대안학교로 가면 다 도망치는 거냐’고 도리어 맞받아치더군요.”

✚ 지금도 화를 참기 어려우신 듯합니다.
“그때 어금니 꽉 깨물면서 참았던 분노가 터지더군요. 그동안 학교와 선생은 학생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믿음마저 깨졌습니다.”

교감과 피해자 부모의 대화 녹취록.
교감과 피해자 부모의 대화 녹취록.

✚ 그래서 소송을 결정하신 건가요?
“사실 이런 사안이 법정에 간 것 자체가 비극입니다. 문제를 제기했다가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고, 이겨도 얻을 게 없다면서 주변에선 고소를 말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소송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을 도와주고, 보호해 주겠다고 말해준 건 변호사뿐이었으니까요. 학교는 맞을 짓을 해서 맞은 게 아니냐는 태도였습니다. 사건을 조사하면서 학폭 전문가들의 얘길 들어보니, 한국의 학폭위는 학부모와 변호사들의 대리전으로 변질한 지 오래라더군요.”

✚ 미디어에서도 이 사건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폭위 결과에서 아들이 폭행당한 사실이 인정된 건 순전히 기사가 나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언론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자 교육청이 학교에 장학사를 파견했습니다. 일부 가해학생 부모는 기사를 읽고서야 사건의 전말을 알았다면서 사과했습니다. 미디어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쌍방폭행 프레임으로 몰렸을 겁니다. 저는 우리 아이만 내세우는 진상 부모로 낙인찍혔을 것이고요.”

✚ 이 사건을 공론화한 것 때문에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사들이 여럿 모인 익명 카페에서 우리 가족이 ‘조리돌림당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저와 아내가 ‘언론플레이를 한다’를 식이었죠. 아이가 폭행을 당한 것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말까지 했더군요. ‘정신병자 같으니까 학교에서 다 싫어한다’ ‘그렇게 태어난 걸 누구 보고 탓하냐’…. 저와 아내는 이미 진상 부모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가정교육 잘못해서 애가 저렇단 식으로요. 학폭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걸 체감했습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A씨가 ‘정말 궁금한 게 있다’며 입을 뗐습니다. “학폭 사건은 끊임없이 보도됩니다. 그때마다 교육 당국은 이런저런 해결책을 내놓죠. 그런데도 학폭 사건은 또 터집니다. 교육 당국이 내놨던 해법이 소용없다는 방증 아닐까요? 폭력 없는 교실을 만들기 위한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국내 1호 학폭 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노윤호 변호사(법률사무소 사월)는 “폭력을 허락하지 않는 학교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학생들 스스로 학폭 방관자가 아닌 목격자가 돼줘야 합니다. 학생이야말로 교실에서 누가 따돌림을 당하는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선순환이 작동하려면 교육 시스템을 향한 신뢰가 쌓여 있어야 합니다. 학폭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신고하거나 알리지 않는 이유는 괜히 끼어들었다가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내 일도 아닌데 굳이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망설임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일산 초등학교 집단폭행 사건’에선 이런 선순환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다양한 배경과 성향, 특징을 지닌 아이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으니까요. 이렇게 따지면 학폭 문제는 우리 사회의 뼈아픈 단면이기도 합니다. 폭력을 보고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기 때문입니다.

A씨는 호소했습니다. “평소에 따돌림을 당하다가 집단으로 맞고도 ‘네가 때렸지?’라고 되묻는 어른이나 교사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가해학생의 부모로부터 사과를 받고, 학교 측이 적극적으로 아이를 보호해 줬다면 이렇게 증거를 수집해 가며 밤새 고소장을 썼을까요? 학폭에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은 모두가 방관자입니다. 아이의 따돌림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저 역시 예외일 순 없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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