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내년 전력기금 수입 늘어날 듯
전기요금 인상 염두에 둔 계산
늘어난 기금으로 뭐 하나 봤더니
신재생 지원 축소하고 원전 우대
전력기금 조성 취지와 맞는 걸까

윤석열 정부는 2022년 2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전기요금을 ㎾h당 40.4원 올렸다. 올해 4분기에는 산업용(을) 전기요금만 10.6원 더 인상했다. 문제는 윤 정부가 내년에도 전기요금을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예산안 세부사업설명서’를 분석하면 그런 예측이 가능하다. 문제는 인상한 전기요금 중 일부를 어디에 쓸 계획이냐다. 

윤석열 정부가 내년에도 전기요금을 일정 부분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내년에도 전기요금을 일정 부분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사진=연합뉴스]

예산서는 어떤 사업에 얼마만큼의 예산을 투입할지를 기록해놓은 일종의 계획이다. 예산서를 보면 정부가 뭘 하려고 하는지 유추할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예산서에 어떤 내용을 기록해놨을까. 

정부 예산서를 일일이 따져 봤더니 흥미로운 내용 두개가 도출됐다. 첫째, 정부가 내년에도 전기요금을 또다시 올릴 것으로 보인다는 거다. 둘째, 그렇게 늘린 재원 중 상당 부분을 원전 지원 사업에 투입할 것이란 점이다. 

■ 숨은 이슈➊ 전기요금 인상 =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예산안 세부사업설명서’의 전력산업기반기금(이하 전력기금ㆍ표➊) 법정부담금 수입계획안에 따르면 전력기금 수입은 올해 2조5894억원에서 내년 3조2028억원으로 6134억원 더 늘어난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정부가 내년도 예상 전력판매량과 전력단가를 높여 잡아서다. 정부는 전력판매량 전망치를 올해 55만3372GWh에서 내년 56만1592GWh로 상향조정했고, 전력단가는 올해 ㎾h당 126.40원에서 내년 154.14원으로 예상해 계산했다(표➋). 

전력단가가 올라간다는 건 전기요금이 오른다는 의미다. 계산상으로 27.74원이 오르는데, 올해 인상분(21.10원)을 내년도 전력단가에 반영하더라도 6.64원(27.74원-21.10원)이 더 상승하는 셈이다.

물론 발전원가 인상에 따라 전기요금을 올리는 게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국민의 반발과는 별개로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야 왜곡된 전기요금을 정상화할 수 있어서다.

최근엔 한전의 대규모 부채로 인해 인상의 명분도 생겼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쉽게 올리지 못할 뿐이다. 다만, 전기요금 인상 계획을 왜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예산서에만 반영했는지는 의문이다. 

■ 숨은 이슈➋ 묘한 사용처 = 중요한 건 정부가 이렇게 늘어나는 전력기금을 어디에 쓸 것이냐다. 증액과 감액이 이뤄진 세부사업들을 보면 그 취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전력산업기반조성 사업’으로 분류된 예산은 올해 총 89억원에서 내년 1421억원으로 16배가량 증액됐다(표➌).

구체적으로 보면 원자력 생태계 지원 예산이 89억원에서 112억원으로 1.3배 늘었다. 원전생태계 금융 지원 사업(1000억원), 원전 수출 보증 사업(250억원), 원전 기자재 선금 보증보험 지원 사업(58억원) 등에 올해 없던 예산을 배정한 게 증액에 영향을 미쳤다. 윤 정부의 원전 부흥 사업들이 대거 전력산업기반조성 사업에 편입됐다는 얘기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들의 예산은 눈에 띄게 줄었다. ‘재생에너지 지원 세부사업’ 내역을 보면 예산 합계가 올해 1조490억원에서 내년 6054억원으로 4436억원 줄었다.

세부 감액 내역을 보면, 신재생에너지 발전차액 지원 사업(-1395억원), 신재생에너지 금융 지원 사업(-1284억원),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 사업(-875억원) 등이다. 내년 전력기금이 올해보다 늘어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신재생에너지 지원에 돈을 쓰지 않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럼 정부의 이같은 전력기금 사용 계획은 타당한 걸까.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전력기금의 사용처는 전기사업법 시행령에 명시돼 있다.

이에 따르면 ▲안전관리,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의 적정한 관리ㆍ보존, ▲전기의 보편적 공급, ▲전력산업기반조성사업과 관련 기획ㆍ관리ㆍ평가, ▲전력산업 전문인력의 양성ㆍ관리, ▲전력산업 분야 시험ㆍ평가와 검사시설 구축, ▲전력산업의 해외 진출 지원, ▲전력산업 분야 개발기술의 사업화 지원사업, ▲원자력발전의 감축을 위해 발전사업을 중단한 사업자 지원 등이 사용처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마지막 항목이다. 원전 감축을 위해 발전사업을 중단하는 사업자를 지원한다는 건 최소한 원전 부흥에 전력기금을 사용하는 게 적절치 않음을 시사한다.

물론 이 조항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생겼다. 조항 신설이 예고된 2020년 당시 야당(현 국민의힘)은 “탈원전 정책을 위한 시행령 개정과 기금 운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윤 정부 역시 ‘원전 부흥을 위한 기금 운용’에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시행령 개정 없이 법 취지와 배치되는 정책을 펴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력기금 재원엔 전기요금뿐만 아니라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위반 과징금도 있다. RPS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사업자에게 일정 비율 이상의 전기를 반드시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해 공급할 것을 의무화한 거다. 

이를 어기면 RPS 과징금을 물고, 그 과징금은 전력기금 재원으로 쓰인다. 이런 측면에서 전력기금 재원 중 일부를 원전에 투입하는 건 모순이다. 신재생에너지발전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에 동참하지 않은 사업자들로부터 거둬들인 과징금을 원전 지원 사업에 배분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전력기금은 매년 국회 심의를 통해 사업의 세부항목과 항목별 예산 규모가 확정된다. 특히 국회는 결산 절차를 통해 기금 집행 결과도 평가한다. 전력기금의 쓰임새를 바로잡을 수 있는 건 국회라는 얘기다. 과연 국회가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까. 아울러 전력기금의 사용처가 정치적 결정에 따라 오락가락해선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
wangjaelee@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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