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트 클럽’은 척 팔라닉(Chuck Palahniuk)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다소 난해한 이 ‘컬트 무비’는 원작자 폴라닉이 독일 철학자 니체에게 심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한결 이해하기 편하다. 그는 니체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장황한 설명 없이 잠언箴言(교훈이 되는 짧은 말)처럼 던진다. 주제 역시 니체가 상정한 예언자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의 분위기를 풍긴다.영화 속 테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은 다중인격체인 주인공이 자신의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낸 또다른 인격체이자 ‘선지자
「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박노식 지음 | 삶창 펴냄시인은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다. 인간이 아닌 것들이 우는 소리. 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시인의 가슴 역시 울음이 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울음은 자기 감성에 빠져버려 나온 것이 아니다. 삶이라는 것을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설움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그 설움을 남을 설득하거나 남에게 주장하는 데 쓰지 않는다. 그의 설움은 스스로에게 말하는 ‘독백’으로 완성한다. 「8월에 만나요」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 민음사 펴냄노벨 문학상 수상
1997년 재기발랄한 형제감독 조엘 코언(Joel Coen)과 이단 코언(Ethan Coen)이 각본을 쓰고 감독해 제작한 ‘파고(Fargo)’는 범죄물이지만 재기발랄한 감독들이 즐겨하듯 범죄물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다. 우리가 진지하고 심각하게만 받아들이는 현실의 허무맹랑함과 어이없음을 마음껏 조롱한다.영화의 시작에 앞서 검은 바탕에 흰 글씨의 ‘안내문’이 화면 가득 뜬다. “이 이야기는 실화(true story)다. 영화에 그려진 사건들은 실제로 1987년 미네소타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생존자들의 요청으로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중학교 2학년짜리 흑인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를 두고 알로이시우스 수녀와 플린 신부는 거칠게 충돌한다. 드러난 사실(fact)은 간단하다. 수업 중에 플린 신부의 호출을 받아 사제관에서 플린 신부를 ‘독대’하고 온 학생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고, 학생이 불안해했다는 것이다. 그럼 사실이 곧 진실일까.플린 신부는 육식, 포도주, 담배를 즐긴다. 플린 신부가 사제실에서 남학생과 독대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기호嗜好에 관한 사실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진실(truth)’이 달라진다. 플린 신부를 학생들을 아끼고, 그저
12일(현지시간), 체코 공영방송에 따르면, 세계적인 작가 밀란 쿤데라가 별세했다. 94세로 세상을 떠난 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쿤데라는 공산 체제였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소설 '농담'과 희곡 '열쇠의 주인들'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으나, 저서를 압수당하고 집필과 강연 활동에 제한을 받는 등의 억압을 겪었다. 결국 197
가톨릭 교회의 보수적 가치를 신봉하는 알로이시우스 수녀원장에게 진보적인 플린 신부는 ‘불온’한 요주의 인물이다. 당연히 적개심을 품는다. 플린 신부는 부임 첫 강론부터 알로이시우스 수녀가 듣기에 조금 ‘수상한’ 발언을 한다.플린 신부가 발언한 내용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난파선에서 탈출해 구명정에 혼자 남은 선원이 자기가 배운 대로 별자리에 의존해 바다를 헤쳐나간다. 그러면서 선원은 계속 자신이 바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한다. 외톨이가 되면 별자리까지 의심스러워진다. 우리 모두 그렇다.”당연한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알로
주인공 알마시는 아무런 수식어 없는 글쓰기를 고집하는 인물이다. 문장 속 형용사나 부사와 같은 수식어는 대개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요소다. 감성을 극도로 배제하면 지극히 건조한 이성만 남는다. 마치 얼굴에서 육기肉氣를 모두 제거한 금욕주의적 조선 선비와 같은 얼굴이 된다.영화 초반에 보이는 알마시가 내뱉는 말이나 그 표정은 인간의 온갖 ‘감성’을 송두리째 적출해버리고 그 자리를 온전히 이성으로 채운 모습이다. 저것이 과연 가능할까 믿어지지 않는데, 아니나 다를까 캐서린과 마주친 순간부터 이성은 사라지고 감성이 알마시를 점령한다.우아한
# 망각과 왜곡사라진, 그래서 잊힌 기억의 초상肖像. 그건 행운일까 불행일까. 독일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저서 「도덕의 계보」에서 망각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제어 장치’라고 표현했다. “…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희망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인간이 활력을 유지하는 건 망각이란 메커니즘이 ‘나쁜 기억’을 제어했기 때문이란 거다.하지만 망각은 때론 사실을 왜곡하는 오류를 범한다. 희미해진 옛 기억이 현재와 오버랩될 때 그런 현상을 빚는다. 이런 오류는 2022년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 기억의 오류 처음엔 이름조
시인 김수영은 누구인가. 문학을 아는 이들에게 묻는다면,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시인’이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상투적인 표현이 아닐까.좀 더 자세히 들어가보자. 김수영의 시어는 통쾌하다. 딱딱하게 정제된 언어가 아닌 그만의 체화된 언어로 표현해낸다. 그렇다고 해서 어렵지도 않고, 오히려 소탈하고 자기고백적인 내용을 써낸다.정치적으로 흐트러지지 않으면서도 당대의 시대상을 작품에 담아내는 자유주의자의 시각 역시 현대 문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그러한 김수영의 시로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오랜 세월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세계문학사 속 굵직한 작가들의 각기 다양한 러브스토리를 담은 이승하 시인의 산문집 “빠져들다”가 “꿈꾸듯 미치도록 뜨겁게”라는 제목으로 18년 만에 개정 증보되어 다시 나왔다. “지상에는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러브스토리를 수집해보았습니다.”-증보판 머리말 중에서 이 시인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 채 양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기도 전에 결혼반지를 맞추고 성당에서 약혼식을 올렸던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사랑이란 앞뒤 재면서
서언 가치는 그 무엇이 옳다, 좋다, 바람직하다 할 때에 있어서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관념적 실체입니다. 절대적인 가치와 주관적인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가치는 더불어 나오는 것이지 혼자 나올 수 없는 것이 사회적 모럴로서의 가치의 기본 특징입니다. 그런데 ‘한국적’이라 하먼 가령 한국의 대표 음식Korean staple food인 김치를 말할 때처럼 한국 사회 내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통용되고 있는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요소를 지닌 것을 의미하는 만큼 우리가 '한국적 가치The Korean Value'를 논하고자 하먼
정고요 시인의 첫 시집 이 지난 11월 17일 ‘배게 시인선’을 통해 출간되었다. 정고요 시인은 198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과 독어독문학을 전공했고, 2017년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는 2017년 창간된 독립문예지다. 새로운 문예 활동, 독립문학의 주체들과의 소통과 연결을 지향하는 문예지로, 창간 이래로 6권의 부수를 발행했다. 시집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믿음을 가지면 리듬을 가질 수 있다’, ‘봄에 알게 된 노래를 여름에 함께 불
서언2-1, 김수영 사유의 내적 기원2-2, 김수영 사유의 외적 기원마무리 서언세상에 혼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관계의, 상호작용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더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시대의 아들1)이라고 했거니와, 현존재인 나는 세계 속의 존재라는 하이데거의‘세계-내-존재’ 또한 같은 말이 아닌가 말입니다. 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 문학예술도 마찬가지고, 김수영의 시적 성취와 사유의 열매 또한 갑자기 돌출한 것이 아닙니다.김수영의 시작 초기 이력을 자세히 보니,‘묘정의 노래’(‘45)에 이어‘공자의 생
세상에 혼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관계의, 상호작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더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시대의 아들1)이라고 했거니와, 현존재인 나는 세계 속의 존재라는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또한 같은 말이 아닌가. 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 문학예술도 마찬가지고, 김수영의 시적 성취와 사유의 열매 또한 갑자기 돌출한 것이 아니다.김수영의 시작 초기 이력을 자세히 보니, ‘묘정의 노래’(‘45)에 이어 ‘공자의 생활난’(‘45), ‘가까이할 수 없는 서적’(‘47), ‘아메리카 타임지’(‘47), ‘이
영화 ‘미션’은 1754년부터 2년간 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과 남미 과라니 부족 간에 벌어졌던 소위 ‘과라니 전쟁’을 보여준다. 무기라야 작은 짐승 사냥하는 새총 같은 활과 화살밖에 없는 원주민들과 세계 최강 스페인·포르투갈 연합군 간 전쟁은 애당초 성립부터 가능하지 않다. 전쟁이 아니라 그저 학살이었을 뿐이었다. 그 참혹했던 ‘과라니 학살사건’을 ‘과라니 전쟁’으로 명명하는 서양인들은 참으로 용감하기는 하다.1750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에 체결된 ‘마드리드 조약’에 의해 수천년간 그 땅의 원주인이었던 과라니족의 운명이 결정된
서언 자, 나는1) 이미 김수영을 “서구의 합리적 이지와 동양의 고전적 소양, 송곳style같이 날카로운 모던한 감각을 지녔으면서도 고유의 민중적 전통의 뿌리를 깊이 있게 의식했던 한국의 보기 드문 문화 검투사a cultural gladiator”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결코 그냥 한 헛소리가 절대 아닙니다. 나의 연륜과 학문과 철학적 예지라 할까요, 머 그런 이미지의 연쇄작용에서 어느 날 운이 닿아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머 음악의 황제 베토벤이“짜자자 잔~”하고 ‘운명’이 지닌 영웅적 삶의 본질에 대한 음악적 리듬을 읽
나는 지난 회에 ‘인류사는 문체투쟁사다’라는 문제제기를 통해 ‘시인은 왜 철학자를 고발하였나’를 풀어갈 것을 약속하먼서 이걸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철학사에서 하나의 패턴pattern으로 서로 부딪치고 차이와 반복을 드러내며 강물처럼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은 시와 소설이라는 문체의 역사와 함께 흘러왔음을-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를 대변하는 철학자이고, 플라톤은 소설을 옹호하는 철학자로서-좀 장황하게 늘어놓으먼서 대서사로서의 서곡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먼서 나는 시리즈가 이어지기
오페라 ‘연대의 아가씨’는 이탈리아 작곡가 게타노 도니체티가 쓴 첫번째 프랑스 오페라다. 이 작품은 1840년 초연 당시 큰 인기를 누려 600회 연속 공연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연대의 아가씨는 남자 주인공 토니오의 독창곡 ‘아, 나의 친구(Ah, Mes amis)’로 유명하다. 매우 높은 하이 C를 9번이나 내야 하는 최고 난도의 기교가 필요한 곡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역사상 가장 부르기 어려운 테너 아리아로 오페라 관객에게 스릴을 선사하는 아리아다.♬ 1막 = 스위스 산골짜기 마을에 프랑스 제21연대가 주둔하고 있다. 막사에서
사람 사이가 각별해지는 덴 비밀스러운 공유가 자리한다. 둘만 아는 농담, 둘만 아는 교감, 둘만 아는 이야기가 쌓이다 보면 어느새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관계가 된다. 하지만 자신을 온전히 내보이고 이해받을 수 있는 대상을 만난다는 건 극히 드문 행운과도 같다. 여기 가족보다, 때로는 연인보다 가깝게 마음을 나눈 두 사람이 있다. “나에게 한 친구가 있었고, 우리는 모든 걸 함께했다. 그러다 친구가 죽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도 함께했다.” 「먼길로 돌아갈까?」는 빛나는 시절을 함께한 소중한 존재에게 바치는 헌사다. 문학평론가이자 퓰
1, 문제제기나도 남들처럼 뽀대나는 세계철학사를 쓰고 싶은 오랜 꿈이 있었습니다. 문예비평가의 소임을 다하느라 서가에 수천 권의 관련서들이 뒹굴고 있지만, 그 중에 가장 믿음이 가는 것은 들뢰즈/가타리의 등 적지 않은 철학 애서들입니다. 대체 모든 걸 돈으로만 가치를 매기는 부박한 신자유주의의 세상에 저 수밀도와도 같이 아름답고 풍성하게 농익은 사유의 열매를 맛보는 재미를 그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이킥 오르가슴’이라 할까요? 그러니 나는 연애보다 철학이 더 좋다니 이 늘샘의 헛소리를 믿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