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로부터 “당신은 누구입니까?”란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대거나 자신이 하는 일 등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좀 더 복잡한 의도가 숨어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당신의 존재 혹은 당신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었다면. 심리학 교수이자 신경과학자인 그레고리 번스는 저서 「‘나’라는 착각」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존재를 ‘단수’로 이해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자신을 단지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겠지만, 실제 당신은 ‘하나’가 아니라며 “우리는 몸이라는 실체를 갖고 있지만,
철수라는 이름에서 묘한 친근감이 느껴진다면 아마도 교과서 때문일 거다. 관공서가 ‘홍길동’을 예시로 써왔다면 교과서는 오랜 시간 ‘철수’를 예시로 사용했다. 철수는 영희와 함께 시험 시간마다 만나는 단골손님이었다. 철수와 영희가 대화를 나누거나 행동하면, 그 모습을 보고 답을 구하는 식이다.철수는 과목을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데, 물리 문제에서 유독 고생할 때가 많다. 문제 속 철수는 고속으로 다가오는 열차 앞에 서거나, 수십 미터 높이에서 떨어지거나, 우주선을 탄 채 운석과 충돌한다. 그래서인지 한때 인터넷에는 철수의 처지를 안타까
비극을 마주할 때 우리는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에 안도한다. 비극의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자의 목소리를 껄끄럽게 여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린 슬픔에 무지한 사람이 돼간다. 타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무엇을 선택해도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전쟁은 인간에게 가혹한 선택을 강요한다. 미국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은 전쟁이라는 극한상황에 내몰린 자의 딜레마와 후유증을 그린 소설이다. 1947년 미국 남부 출신 청년 스팅고는 꿈에 그리던 뉴욕에 입성한다. 스팅고는
우린 ‘먹는 것’에 민감하다. 건강에 직결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식재료나 가공식품을 살 때면 원산지, 영양 성분, 원재료 등을 꼼꼼히 살핀다. 식품첨가물도 눈여겨본다. 기준이나 규격이 있다 해도 왠지 ‘화학적’ 합성품이 신경 쓰이곤 해서다.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늘 고민거리다. ‘입는 것’은 어떨까. 옷은 ‘먹는 것’ 다음으로 일상생활에서 밀접하게 사용하는 소비재다. 포장 식품 라벨에는 성분 목록이 있지만 옷은 그렇지 않다. 이는 옷을 만들 때 ‘섬유 자체 말고 다른 성분이 많이 들어가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의 작품들은 지금 읽어도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가 최초로 사용한 단어인 ‘로봇’과 인간 같은 곤충들, 인간에 의해 강제로 대량 증식된 도롱뇽, 전염병을 권력 수단으로 이용하는 독재자는 세계대전 당시의 세계와 지금 우리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터미네이터(1984년)’는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대표적인 영화다. 자원을 낭비하고 서로 갈등만 일삼는 인간들이 쓸모없다고 판단한 ‘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디스토피아 영화의 고전이
「듄의 세계」톰 허들스턴 지음·강경아 옮김 | 황금가지 펴냄 「반지의 제왕」에 필적할 수 있는 유일한 시리즈 「듄」의 모든 세계가 담겼다. 「듄의 세계」는 작가 프랭크 허버트의 인터뷰부터 주변 인물의 증언, 그리고 허버트의 청년 시절부터 드니 빌뇌브 감독이 만든 영화 ‘듄’까지 160여장의 사진을 담았다. 고대 트로이 전쟁부터 이슬람 저항, 초심리학과 우생학 그리고 아라비아의 로렌스, 새뮤얼 버틀러, 사담 후세인, 프리메이슨 리 등 「듄」을 탄생시킨 수많은 사건과 사상, 인물을 만날 수 있다. 「민족문학사상 2023년 통권 2호」민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장기간 피해가 확산한 일종의 ‘느린 재난’이다. 1994년 출시된 가습기살균제는 1000만개 가까이 판매됐다. ‘가정의 청결과 건강을 관리한다’는 이 제품은 2011년 원인불명의 폐 질환 사례가 수집되면서 전대미문의 환경재난을 부른 주범으로 지목됐다. 2023년 10월 말까지 피해를 신고한 7877명 중 확인된 사망자만 1835명에 달한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오랜 시간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연구해온 환경사회학 연구자 박진영이 정치와 과학이 부딪히는 장場에서 서서히 변화해 온 한국 사회를 이야기한다. 가습
인공지능(AI)이 쓴 소설은 창작인가 모방인가. AI와 협업해서 만든 작품은 예술품인가 모조품인가. AI 작업이 늘면서 문학계ㆍ예술계에서도 심오한 질문들이 오가고 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학관觀이나 예술관觀이 충돌하면서 좀처럼 ‘합의점’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나타난 ‘콘텐츠 대폭발’ 시대에 AI가 또다른 전환점을 부여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우리가 싱귤래리티(singularity) 1편에서 던진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예술은 모방인가, 창조인가. 인공지능(AI)이 이 세상 모든 작
인공지능(AI)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많은 이들이 ‘창조성’도 이젠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AI의 글이든 그림이든 결과적으론 인간의 작품을 학습한 결과물이다. 일종의 모방행위라는 건데, AI가 모방을 넘어 ‘창조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더스쿠프의 새 연재물 ‘공병훈의 맥락’ 1편에서 AI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가는 기점을 뜻하는 ‘싱귤래리티’를 논해봤다.강렬하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색채, 거친 붓의 터치, 뚜렷하면서도 애매하기도 한 인상적 윤곽의 그림을 통해 위대한 창조성의 화가로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오펜하이머를 다룬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의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시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놀런 감독이 평단과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전달한 사실상 첫번째 영화인 ‘메멘토’ 역시 시간과 기억을 풀어낸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인터스텔라’도 시간과 중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자! 이제 사족을 접고 본론을 이야기해보자. 놀런 감독의 영화를 볼 때 필자가 가장 궁금하게 생각했던 건 블랙홀이다. 블랙홀이란 존재는 오펜하이머가 원폭을 개발하던
「좋은 엄마 학교」제서민 챈 지음 | 허블 펴냄 참관 방문을 나온 사회복지사 앞. 평소 놀이를 좋아하던 딸은 이날만은 놀이를 거부한다. 사회복지사 앞에서 좋은 엄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여자의 마음은 초조해진다. 이때 ‘좋은 엄마’는 어떻게 행동할까. 억지로라도 노는 모습을 증명해야 할까. 아니면 지친 아이가 쉬도록 놔두는 것이 좋을까. 「좋은 엄마 학교」 는 현대 사회가 엄마들에게 요구하는 크고 작은 덕목에 의문을 던진다.「이방인의 춤」김수우 지음 | 걷는사람 펴냄다른 생명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생명이 있을까. 누군가의 도움
지난 8월 24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방류가 시작됐다. 제1원자력발전소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다.당시 원자로 3곳이 침수되면서 130만㎥(약 13억 리터)의 방사성 핵종 오염수가 발생했다. 도쿄전력은 1000개 이상의 탱크에 이들 오염수를 저장한 뒤 다핵종제거설비(ALPS)를 통해 방사성 물질을 처리해왔다(표➊).하지만 탱크 용량의 한계로 더이상 오염수를 수용하기 어려워지자 일본 정부는 물의 일부를 방류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
# 5G 주파수는 28㎓, 3.5㎓ 두개다. 둘 중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담보하는 주파수는 28㎓인데, 사실상 ‘가동 중지’ 상태다. 그럼 3.5㎓ 주파수는 어떨까. 이 역시 금세 깨질 봄꿈처럼 기대할 게 없다. 무엇보다 3.5㎓ 기지국을 충분히 구축할 공간이 부족하다. 설사 전국 구석구석에 3.5㎓ 기지국을 만들더라도 ‘20배 빠른 속도’는 불가능하다. 3.5㎓의 최대 속도가 LTE보다 약간 빠른 수준이어서다. # 두 이야기는 우리가 단독 입수한 ‘5G 3.5㎓ 기지국 설치맵’을 분석한 결과다. 28㎓든 3.5㎓든 지
금속 또는 합금이 특정 온도에선 전기저항이 제로가 되는 것을 초전도 현상이라고 한다.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물질이 바로 초전도체다. 물질에 전류가 흐르기 위해선 플러스(+)와 마이너스(-) 성질을 띠는 ‘전하’의 집결체인 ‘전자’가 이동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자가 이동할 땐 다른 불순물과 충돌하거나 전자끼리 부딪쳐 저항이 생긴다.하지만 초전도체에선 이런 충돌이 없기 때문에 전기저항이 일어나지 않는다. 저항이 없으면 저항 때문에 생기는 전력에너지의 손실도 사라진다. ‘마이스너 효과’는 초전도체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다. 도선에 전
# 17세기 그림에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의 수박을 본 적 있습니다. 과육이 적은데다 색도 연해서인지 무척 낯설었습니다. 과학자들이 ‘리코펜’ 성분을 보충해 과육을 붉게 만든 게 지금의 수박이 됐다고 합니다. # 이번엔 피자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탈리아 문화부가 최근 2000여년 전 화산 폭발로 파괴된 폼페이 유적에서 이탈리아 피자의 ‘원조’로 추정할 만한 그림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메리카대륙에서 유럽으로 토마토가 건너간 것과 모차렐라 치즈가 만들어진 시기보다 훨씬 이전에 그려진 그림이어서 ‘그림 속 음식’이 진짜 피자라고 단
#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은 과학자였습니다. 입으면 무릎까지 내려오는 아버지 와이셔츠를 입고 과학자 가운(아마도 실험복)이라고 했습니다. 도서관에 가선 과학잡지 뉴턴과 과학동아에 심취하곤 했습니다. 특히 우주 분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동차를 한시간만 타도 멀미를 하던 꼬맹이는 그렇게 우주선을 타는 꿈을 가졌습니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주문처럼 외우곤 했죠. ‘블랙홀이 태양계로 오면 큰일일 텐데’라고 걱정하고 ‘화이트홀을 찾아서 도망가야겠다’는 공상도 품었습니다. # 음… 머리가 조금 크고 나서 알아차린 듯합니다. 우주인이 되
올 상반기 글로벌 증시를 뜨겁게 달군 회사가 있다. 미국의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NVIDIA)다. 6월 들어 숨 고르기에 돌입했던 엔비디아의 주가는 최근 또다시 고점을 찍으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래서인지 이 회사를 향한 투자 열기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엔비디아가 불과 몇달 새 글로벌 증시의 주역에 설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수익률 267% 기록했습니다” “만세를 부르고 싶네요” “지난해에 팔았는데 후회막심입니다” “이래도 되는 건가요? 이제는 무섭기까지 합니다”.여기 환호와 성찰, 흥분과 공포가 뒤섞인 현장이
[소프트뱅크의 Arm 고육지책]곡절 끝에 나스닥에 ‘출사표’ 반도체 기업 Arm이 뉴욕증시에 입성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5월 1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Arm의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는 최근 나스닥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 초안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했다. 소프트뱅크 측은 자금 조달 규모와 공모 희망가 범위는 공개하지 않았다. 상장 시기 역시 “증시 상황을 고려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Arm의 나스닥 도전은 소프트뱅크 입장에선 고육지책이다. 최근 몇년간 핵심 투자사업인
우리는 때때로 소중한 것들을 잊곤 한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공기다. 공기는 너무나 흔한 존재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공기가 없는 바다 속이나 우주에서는 3분도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된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물과 음식은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어 고마움은커녕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다. 책 또한 그렇다.책은 인간 지성의 발전을 크게 이끈 위대한 발명품이다. 1452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만든 금속 활자는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지니며, 서구 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한 결정적 요인이 되었
# 윤석열 정부의 정책적 근간은 ‘경쟁’이다. 유통이든 IT든 통신이든 모든 시장의 구성원을 ‘경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 밑바탕엔 ‘메기효과’란 경영이론이 있다. 성장이 정체된 산업 생태계에 메기와 같은 포식자가 등장하면 시장엔 다시 활력이 감돈다는 거다. # 하지만 메기효과는 국가 정책을 펼칠 때 맹신할 만한 이론이 아니다. 여기엔 뛰어난 메기 한 마리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강자 논리’가 깔려 있는데다, 철학과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여지도 많아서다. 더스쿠프가 ‘메기효과의 모순과 허상’을 취재했다. 視리즈 첫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