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암표의 어두운 경제학 2편
매크로로 표 선점하는 암표상
이중매매 · 환불문제 책임 안 져
생태계 기여 없이 이득만 취해
공연법 개정해도 적발 어려워
문화행사 · 스포츠 경기 사각지대
암표 관련 수익 몰수 등 처벌 강화
적극적 단속 · 수사 이뤄져야…
암표 외면, 소비자 인식 개선 필요

공연계는 입장객 본인 확인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사진=연합뉴스]
공연계는 입장객 본인 확인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다.[사진=연합뉴스]

# 10만원짜리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해 30만원짜리 암표를 구매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3번 공연을 볼 수 있는 금액을 한번에 지출했으니, 소비자로선 공연 보는 횟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암표가 기승을 부릴수록 공연 생태계가 망가진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 물론 공연 기획사 등도 자구책을 펼치고 있다. 예매 실명제를 도입하거나 대체불가능한 토큰(NFT‧Non Fungible Token)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하지만 암표를 규제할 허술한 법망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암표를 근절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면 현행법엔 어떤 문제가 있을까. 더스쿠프 視리즈 ‘암표의 어두운 경제학 2편’에선 암표상이 법망 위에서 춤추는 까닭을 살펴봤다.

우리는 視리즈 ‘암표의 어두운 경제학 1편’에서 분야를 불문하고 기승을 부리는 암표상과 이들을 잡으려는 공연‧경기 기획사들의 자구 노력을 들여다봤다. 일례로 공연 기획사들은 예매 실명제를 도입하고, 입장 시 본인 신분증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많게는 10만명까지 몰리는 대규모 공연에선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대부분 공연 30분 전에 입장하는 관객을 모두 확인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의미 있는 노력이지만 한계가 뚜렷하다는 거다. 문제는 암표를 막기 위해 만든 법도 ‘허술하다’는 점이다. 현행법의 허점을 하나씩 살펴보자. 

■ 한계➊ 공연법 개정 = 현행 ‘경범죄처벌법’은 암표 매매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흥행장·경기장·역·나루터·정류장 등 오프라인상에서 이뤄지는 암표 거래만 규제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암표 거래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온라인이 암표 거래의 온상이 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 자체가 지나치게 낡은 셈이다. 실제로 매크로(macro·반복작업 자동화 프로그램)를 이용해 입장권을 대량으로 선점하는 온라인 암표상들은 갈수록 몸집을 키우고 있다.

문제는 경범죄처벌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나 국회에서 분야별 개별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많다는 점이다. 오는 3월 시행되는 ‘공연법’ 개정안(태영호·이종성·배현진·이병훈 의원 대표 발의)을 보자. 개정 공연법은 ▲매크로를 이용한 입장권 부정 판매 금지,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의 내용을 담고 있다.  

주요 스포츠 경기마다 암표상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사진=뉴시스]
주요 스포츠 경기마다 암표상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매크로를 이용하지 않은 경우는 처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매크로를 이용한 암표 거래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대표는 “현실적으로 암표상 개개인의 매크로를 적발하기는 불가능하다”면서 “암표상이 분업화해 예매책부터 구매책까지 여러 사람을 거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개정 공연법의 ‘1000만원 이하의 벌금’ 규정 역시 암표상에겐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한나 변호사(한나 법률사무소)는 “암표 판매로 많게는 정가의 수십배에 달하는 이익을 취하는 암표상을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근절하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면서 “암표 판매를 통한 수익 전부를 추징·몰수하는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점은 또 있다. 무엇보다 공연(음악·연극·연예·국악·곡예 등)이 아닌 축제·시상식·팬미팅을 비롯한 문화행사엔 법을 적용할 수 없다. 스포츠·e스포츠 경기 역시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국회엔 스포츠 경기나 e스포츠 경기 암표를 근절하기 위한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2건)’ ‘이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1건)’ 이 발의돼 있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21대 국회가 3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처리가 난망한 상황이다. 

■ 한계➋ 법 개정 후 = 설사 계류 중인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는다고 해도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많다. 암표상을 척결할 단속·수사 인력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으면 법의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2011년 ‘철도사업법’을 개정해 열차 승차권의 암표 판매를 단속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지만 실제 처벌 건수는 전무하다. 허종식(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부 철도특별사법경찰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년~2023년 8월) 열차 암표상 처벌 건수는 제로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KTX와 SRT 운영사인 ‘코레일’ ‘에스알’은 암표를 단속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코레일이나 에스알이 암표 의심 정황을 적발해 경찰에 인계하더라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숱하다. 

이 때문에 국회엔 ▲열차 암표 신고자에게 포상금 지급, ▲암표 거래 의심자에 대한 정보 제공 요청 등의 내용을 담은 철도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3건이나 발의돼 있지만 이들 역시 낮잠만 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린 무얼 바꿔야 할까. 전문가들은 입법도 중요하지만,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백세희 변호사(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의 말을 들어보자.

“법적 규제와 처벌 강화도 필요하지만 암표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인식이 동반하지 않으면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암표의 문제는 공연의 생산자나 향유자가 아닌 제3자 암표상의 배만 불린다는 데 있다. 이들은 공연 생태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지만, 이득만 취한다. 그러면서 이중매매나 환불문제가 발생하면 종적을 감춘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공연산업의 성장을 위해 소비자가 암표상을 외면하는 등 인식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암표는 산업의 독毒이다. 암표상이 활개 치면 해당 산업은 얼어붙는다. 암표상이 대량으로 사들인 티켓을 판매하지 못해 공연 시작 전 취소하면, 주최 측만 손해를 입는다.

공연을 열어도 문제다. 아티스트는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러야 한다. 공연을 보고 싶던 팬은 티켓을 구하지 못해 발만 구르고, 암표를 구입한 팬은 나쁜 기억만 가져갈지 모른다. 그들 중 몇몇은 공연이라면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암표를 근절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관련 법을 만들고 단속 대책을 촘촘하게 세우면 뿌리를 뽑을 수 있다. 문제는 21대 국회가 끝나간다는 점이다. 암표 관련법들을 줄줄이 내놨던 의원들이 다시 국회에 등원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럼 22대 국회를 기대해야 하지만, 그때 뭐가 달라질지는 알 수 없다. 암표를 둘러싼 불편한 현실이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