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서울점자도서관 문 닫아
서울시 보조금 축소 한몫
예산 늘렸다 반박했지만
실적 평가 후 보조금 줄여
민간점자도서관 공통 이슈
시각장애인 공간 구축해야

31년간 운영해온 서울점자도서관이 지난해 말 문을 닫았다. 전문가들은 폐관 이유로 서울시의 지원예산 축소를 지목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장애인도서관 예산이 오히려 늘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쪽은 줄었다고 하고 한쪽은 늘렸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더스쿠프가 서울점자도서관 지원 예산과 폐관 이유를 살펴봤다.

지난해 12월 31일 폐관한 서울점자도서관.[사진=더스쿠프 포토]
지난해 12월 31일 폐관한 서울점자도서관.[사진=더스쿠프 포토]

2023년 12월 31일, 서울점자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1992년 1월에 개관했으니, 31년 만의 폐관이다. 서울점자도서관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연)가 운영해온 민간기관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공간이었다. 실물 점자책 700여권과 직접 제작한 전자도서, 녹음도서 등 음성책 1만5000여권을 제공했다. 서울점자도서관의 폐관으로 서울 소재 점자도서관은 9곳으로 줄어들었다.

시각장애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시설인 서울점자도서관은 왜 문을 닫았을까.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서울점자도서관을 운영해온 한시연은 “부족한 지원 예산이 폐관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서울시는 강하게 반박했다. “서울시 장애인도서관 지원 예산은 2022년 5억9000만원, 2023년 5억9500만원, 2024년 6억1600만원으로 최근 3년간 꾸준히 증액했다(서울시 홈페이지 1월 3일).”

한쪽은 ‘지원 예산 부족’을 꼬집고, 다른 한쪽은 ‘예산 증가’를 주장한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일단 점자도서관에 지원된 예산부터 보자. 서울점자도서관은 서울시와 노원구의 지원 예산과 법인 자체 예산으로 운영해 왔다.

한시연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서울시의 서울점자도서관 지원액은 2020년 7400만원에서 2023년 4200만원가량으로 줄었다. 매해 4900만원을 지원하던 노원구도 2023년 4410만원으로 예산을 줄였다. 연 2억~3억원의 비용이 필요한 서울점자도서관으로선 턱없이 부족한 공공예산인데, 이마저도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러자 서울시는 또다른 논리로 반박했다. “서울점자도서관은 한해 대출 권수가 60권을 밑도는 등 이용률이 저조했다. 그래서 실적을 평가한 다음 지원 예산을 줄였다. 우리가 홈페이지에 밝힌 장애인도서관 지원 예산이 늘었다는 자료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예산증액론은 사실일까. 2022~2024년 예산이 늘어난 건 맞다. 하지만 예산의 분석 기간을 좀 더 늘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8년엔 7억원, 2019년엔 8억원이었다.

2018~2019년 평균 지원금(7억5000만원)과 2022~2024년 평균(5억9800만원)을 비교해보면, 후자가 연 1억5200만원 적다.[※참고: 2020년과 2021년의 지원금은 각각 11억6500만원과 7억8000만원으로 더 많았다. 서울시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개선비 등을 포함하면서 지원금이 이례적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2020년과 2021년은 통계에서 제외했다.]


그렇다고 이 예산을 모든 점자도서관에 ‘균등하게’ 배정하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는 전체 지원예산 중 70%는 균등배분, 30%는 차등배분하고 있다. 물론 ‘실적’에 따라 예산을 차등하는 건 합리적인 과정이다. 문제는 그 과정이 얼마큼 효율적이고 투명하느냐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윤소희 한국시각장애인도서관협의회 사무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예산을 실적에 따라 3단계로 차등배분하다 보니, 장애인도서관들이 서로 협력하기보단 사업을 숨기는 등 출혈경쟁을 벌이곤 한다. 지원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점자도서관의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내놔야 할 서울시가 ‘이용률이 적다’는 명분으로 예산을 깎는 것도 문제지만, 여기엔 더 심각한 점도 숨어 있다. 서울에 있는 점자도서관 중 안정적으로 예산을 지원받는 곳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국립장애인도서관 1개뿐이란 점이다. 나머지는 모두 서울점자도서관처럼 민간이 운영하고 있다.

윤소희 사무국장은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점자 명함을 만들고, 구청의 점자민원안내서를 제작하는 등 고육책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점자도서관이 숱하다”면서 “대부분 민간 점자도서관의 상황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점자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다. 시각장애인의 커뮤니티 역할도 수행한다. 이미 폐관한 서울점자도서관도 작가와의 만남, 점자악보를 활용한 음악회 등 시각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점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점맹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교실도 꾸준히 열었다.

시각장애인에게만 혜택을 준 건 아니다. 서울점자도서관은 비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점역點譯ㆍ교정사 교육을 하는 ‘점자교실 훈맹정음’도 해마다 무료로 진행해 매 기수 1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해왔다. 각종 녹음도서를 우체국택배를 통해 집으로 배송하기도 했다. 한 점자도서관의 관계자는 “서울점자도서관이 도맡고 있던 수많은 역할을 다른 기관이 제대로 이어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서울점자도서관을 찾던 기존 시각장애인에게 ‘도서관을 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됐다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

평소 점자도서관을 애용하는 시각장애인 박은실씨는 이렇게 말했다. “점자도서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일주일에 한번씩 참여했고 점자책 신청도 많이 했다.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시각장애인을 대하는 게 익숙해서인지 불편함도 없다. 하지만 일반도서관은 아무래도 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점자도서관 한곳이 사라져 너무 아쉽다.”

김종인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원장은 “시각장애인의 교육을 위한 공간들이 점점 없어져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점자도서관의 폐관이 ‘서울점자도서관’에서 멈추느냐다. 지원 예산이 부족한 건 민간 점자도서관의 공통된 이슈여서다. “다른 점자도서관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시각장애인 은실씨의 질문에 그 누구도 ‘그렇지 않다’고 답을 할 수 없다. 어쩌면 이게 더 큰 문제다.

전지혜 인천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시각장애인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먼 곳으로 간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기존 서울점자도서관 이용자에게 다른 도서관 이용을 안내하고, 시각장애인이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에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와 지자체가 벼랑에 몰린 점자도서관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놔둘 때가 아니란 일침이다. 이제 우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