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암표의 어두운 경제학 3편
비주얼로 본 암표 연대기
어제오늘의 문제 아닌 암표
오프라인서 기승 부린 암표상
2000년대 온라인으로 넘어와
관련 법적 규제 1973년 시행
낡을 대로 낡은 법의 뻔한 한계
처벌 강화한 대만 눈여겨봐야

‘암표暗票.’ 글자 그대로 법을 위반해 몰래 사고파는 각종 표를 뜻한다. 사실 암표 문제가 불거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 고속버스 터미널에선 명절 때마다 경찰 단속반과 암표상의 전쟁이 펼쳐졌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암표가 기승을 부렸다. 문제는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암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법의 사각지대 때문이다.

1990년대만 해도 길에서 암표상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터미널이다. 이들은 특히 귀성객이 몰리는 명절에 활개를 쳤다. 승차권을 정가의 3~6배에 판매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단속 경찰도 암암리에 활동하는 암표상을 잡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자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은 1990년 ‘고속버스 회원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신용카드처럼 연회비 1만원(개인)을 지불하면 회원카드를 발급하고, 회원에 한해 전화로 승차권을 예약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승차권 취소시 위약금도 대폭 상향조정했다. 기존엔 출발 전 금액의 10%, 출발 후 50%를 공제하던 것에서 출발 전 50%, 출발 후 70%로 올렸다. 암표상들이 승차권을 대거 사들였다가 판매하지 못했을 경우 환불하는 꼼수를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암표상을 잡으려는 이 대책이 정작 일반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사정이 생겨 승차권을 취소하는 소비자까지 높은 위약금 부담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스포츠 분야도 암표로 골머리를 앓았다. 1990년대 2000~5000원대였던 프로야구 입장권은 암표 탓에 5000~2만원에 거래되기 일쑤였다. 입장권을 선점한 암표상들이 2~4배 높은 가격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2002년 열린 한일 월드컵도 암표로 얼룩졌다. 한국과 독일이 맞붙었던 4강전의 경우, 1등석 정가가 38만4000원이었지만 암표 가격은 200만원까지 치솟았다. 더 큰 문제는 이 무렵 인터넷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암표를 온라인에서도 거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암표상을 막기 위한 노력들은 일반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졌다.[사진=뉴시스]
암표상을 막기 위한 노력들은 일반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졌다.[사진=뉴시스]

이처럼 암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뿌리뽑지 못하는 건 ‘낡은 법’ 때문이다. 암표를 규제하는 ‘경범죄처벌법’은 무려 50년 전인 1973년에 시행했다.

‘인터넷’은 꿈도 못꾸던 시절에 만들어진 이 법은 암표매매를 ‘경기장‧역‧나루터‧정류장 등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승차권을 되파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암표만 규제하고 있다는 거다. 처벌 규정도 ‘2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에 그친다.

낡은 법을 손보지 않은 탓에 암표 문제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특히 엔데믹(endemic‧풍토병) 전환으로 모처럼 기지개를 켜고 있는 공연업계는 암표로 몸살을 앓고 있다이는 숫자로도 엿볼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공연 분야 암표 신고 건수’는 2020년 395건에서 2022년 4224건으로 치솟았다. 지난해 10월까지 누적 신고 건수도 973건에 달한다.

프로 스포츠 분야도 마찬가지다. 2020년 6237건이던 암표 신고 건수는 지난해 9월(누적 기준) 2만8243건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실제 후속 조치가 이뤄진 비율은 2.7%(2023년 9월 기준)에 불과했다. 언급했듯 법적 미비와 공백 탓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오는 3월부터 공연계의 온라인 암표를 규제할 ‘공연법 개정안’을 시행한다는 점이다. 이 개정안은 ▲매크로(macro)를 이용한 입장권 부정판매 금지,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우려도 만만치 않다. 분업화해 활동하는 암표상의 매크로 행위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처벌 규정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로 ‘1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의 처벌 규정은 해외와 비교하면 약한 수준이다. 그럼 해외는 어떨까.

암표상 처벌을 강화한 대표적 국가는 대만이다. 대만은 지난해 3월 K-팝 스타 ‘블랙핑크’의 공연 티켓이 정가의 40~50배로 치솟는 등 암표 문제가 커지자 관련 법을 손봤다. 대만 정부는 지난 5월 ‘문화창의산업발전법’을 개정했는데, 처벌 수위가 꽤 세다.

▲예술‧문화 공연 입장권을 고가에 재판매 금지, ▲실제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처벌. ▲입장권 정가의 10~50배 벌금 부과, ▲매크로 등 부당한 방법으로 입장권 구매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대만달러(약 1억2000만원)의 벌금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엄격한 처벌로 암표 문제를 끊어내겠단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과연 우리는 낡은 법과 허술한 법으로 암표를 근절할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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