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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의사 공급량 줄여 고연봉 유지
2010년대 들어 대체인력 늘어나자
전공의·전문의 수 늘리면서 대응해
韓 의사 수 최저치 유지해 고연봉
그들이 의대 증원 반대하는 속내

미국의 2021년 연봉 순위 1~18위는 모두 의사다. 미국 의사들은 전공의를 줄이고, 전문의를 늘리는 방식으로 고연봉을 유지했다. 2010년대 들어 의사보조(PA) 등 대체 직군이 늘어나자 미국 의사들은 전공의 수를 스스로 늘리기 시작했다. 한국 의사들이 인력 부족을 주장하면서도 의대 정원 증가에는 반대하는 속내를 알아봤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의료진 부족으로 인한 중증 응급환자 우선 진료’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의료진 부족으로 인한 중증 응급환자 우선 진료’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의 고임금 직업 1~18위는 의사다(2021년 노동통계국 자료). 미국 심장 전문의 평균 연봉은 35만3970만 달러로 1위, 마취과 전문의가 33만1190달러로 2위다. 18위는 연평균 23만1500달러인 일반의다. 19위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20위가 마취 전문 간호사다. 미국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25개 직업 중에서 의료 관계 직업은 22개에 이른다. 

미국 의사들은 공급을 줄여서 가격을 높인다는 경제학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 높은 연봉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7명으로 38개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권이었다. 미국보다 의사 수가 적은 OECD 회원국은 한국(2.56명), 멕시코(2.51명), 콜롬비아(2.45명), 튀르키예(2.18명)뿐이다. OECD 평균 의사 수는 1000명당 3.7명이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10월 ‘미국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버는 이유’라는 기사에서 “의사 교육 시스템의 문제로 미국 의사 공급이 인위적으로 방해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의사들의 고연봉은 전공의(레지던트) 숫자를 줄이고, 전문의 숫자는 늘리며, 해외 의사 수도 통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부와 의회의 헛발질은 덤이었다. 미국이 전공의 숫자를 줄인 계기는 정부가 제공했다. 미 보건복지부는 1980년 보고서에서 미국 의사 수가 7만명 정도 남아돌 것으로 잘못 예상했다.

그래서 전공의 수를 결정하는 졸업후교육인증위원회(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ACGME)를 1981년 출범시켰다. 하지만, 의사 수는 남아돌지 않았고 사실상 전공의 수를 제한하는 목적을 가진 ACGME는 이제 미국 내과전문의협회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미국의 고연봉 의사들조차 우려할 정도로 전공의 수가 적어지자 미국의사협회는 전공의 정원의 증원을 추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 정치권이 헛발질을 했다. 미 의회는 1997년에 노인의료보험이 지원하는 전공의 교육 예산을 줄이고, 이를 20년 동안 동결했다. 1인당 연간 15만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미국 전공의 관련 예산은 미국의 노인의료보험인 메디케어에서 나온다. 

전문의 숫자가 너무 많고, 해외 의사를 규제하는 제도가 숱한 것도 미국 의사의 고연봉을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017년 “미국 의사들의 3분의 2가 전문의인데 반해 유럽 등 다른 나라들에서는 일반의가 3분의 2로 더 많다”고 보도했다. 해외에서 온 의사는 반드시 미국에서 의사 시험, 인턴, 전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딘 베이커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 설립자는 2017년 폴리티코에 실린 ‘의사 월급이라는 문제’란 기사에서 미국 의사들이 공급을 줄여서 최대한의 이익을 보는 구조를 열심히 만들어낸 경위를 설명했다. 딘 베이커는 “경제학자가 미국 의학계의 임금 구조를 보면 좌파든 우파든 관계없이 카르텔과 흡사한 무엇인가를 볼 것”이라며 “이제 의사 카르텔을 무너뜨려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미국 의사들과 정부, 의회가 합작해서 만든 전공의 숫자 부족 문제가 사실상 의사 공급 병목현상을 만들어낸 주범이다. 공공정책 연구기관인 니스카렌센터의 로버트 오르 분석가는 “미 정부가 1997년 메디케어의 전공의 지원에 상한을 두면서 의사 부족 사태가 더 나빠졌다”며 “미국 의료 시스템은 사실상 세계 어느 선진국들보다 1인당 더 적은 수의 의사를 배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오르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전공의 정원에 제한이 없었다면 2000년 전공의가 2만569명이었겠지만, 실제 전공의 숫자는 1만6301명으로 필요 인력의 20%가 부족했다. 그런데 미국 전공의 수는 2000년대 중반 들어 갑자기 늘어나더니 2022년엔 숫자에 제한을 두지 않았던 것과 거의 유사한 수준까지 증가했다. 

이유는 경쟁이었다. 의사 공급은 그대로였지만, 의사 대체 인력이 급증했다. 미국에서는 의사가 아니어도 전문간호사(NP)나 의사보조원(PA) 혹은 정골의학사(DO)가 진료를 보고, 처방할 수 있다. 미국 병원에 취업한 DO 숫자는 2006년 911명에 불과했지만, 2015년 2244명, 2023년 6812명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해외 출신 의사들도 2006년 4380명에서 2023년 8399명으로 증가했다. 

미국이 경쟁 체제를 도입한 계기는 의사 부족, 의료비 증가로 의료 시스템이 붕괴했기 때문이다. 의사를 만나겠다는 선호도가 적은 무보험 환자, 메디케이드(저소득층용의료보험) 환자가 급증하면서 대체 진료 인력의 수요가 커졌다. 클레스 에릭슨 미 의과대학협회 인력연구센터 소장이 2013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의사 대신 NP·PA·DO로부터 진료를 받겠다는 환자는 59.6%로 몇년 만에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미국 아이다호주 프라이머리헬스 병원에서 의료보조원(PA)이 다음 환자를 부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아이다호주 프라이머리헬스 병원에서 의료보조원(PA)이 다음 환자를 부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 의사들도 미국과 같이 의사 공급량을 줄여 높은 소득을 유지해온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의 OECD 기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56명으로 미국보다도 적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의사 수가 가장 적다. 의사들이 저임금·폭력 등 문제로 해외 이민을 떠나면서 사회 문제가 됐던 튀르키예보다도 적은 숫자다. 

우리나라 전문의 비율은 미국보다도 높다. 의사 면허는 종신면허라서 활동 의사 수 통계를 써야 하는데, 2022년 우리나라 활동 의사는 11만2321명이고, 전문의 수는 10만명을 넘었다. 전문의 수는 2008년 6만7382명에서 2019년 10만161명으로 증가했고, 매년 2000명 이상씩 늘어난다.

전문의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이유는 진료비가 비싼 선택진료가 가능해서다.  의료법 37조 2항과 보건복지부령 제174호에 따르면 10년 이상 경력의 전문의, 의대 교수는 진료에 추가비용을 징수할 수 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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