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항공‧면세 … 구조조정 칼바람 어디까지 갈까
여행‧항공‧면세 … 구조조정 칼바람 어디까지 갈까
  • 김정덕 기자
  • 호수 383
  • 승인 2020.04.06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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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구조조정 빨간불

위기 중에 위기다. 국내 경제도 세계 경제도 올스톱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다. 문제는 기업이다. 중소ㆍ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위기에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여행ㆍ항공ㆍ면세업계엔 벌써 구조조정 바람이 휘몰아쳤고, 그 칼바람은 다른 업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무직이든 현장직이든 노동자에게 또 힘겨운 시절이 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재계에 부는 구조조정 칼바람의 심각성을 살펴봤다. 

이스타항공은 전체 직원의 40%를 감원할 예정이다.[사진=연합뉴스]
이스타항공은 전체 직원의 40%를 감원할 예정이다.[사진=연합뉴스]

“사방에서 곡소리가 들릴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을 방문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요즘, 대기업 임원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근황을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겹쳤다”면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이 벌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탁월한 감각과 철저한 시장분석 능력을 바탕으로 임원까지 오른 마케팅 전문가다. 전문가들이 아무리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솟아날 구멍은 어디든 있다”며 긍정론을 펼치던 그가 ‘위기’를 거론한 건 처음이었다. 

중요한 건 지금 나타나고 있는 모든 정황이 A씨의 위기감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는 정부의 정책자금을 받기 위해 은행 창구에 늘어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만 닥친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19 이전에 위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매출 상위 40대 기업 중 28개 기업의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감소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참고 : 2019년말 연결기준이며, 공기업ㆍ금융기업ㆍ합병기업 등은 제외.] 줄어든 영업이익의 총액은 61조8683억원에 달했다.

반면 나머지 12개 기업에서 늘어난 영업이익 총액은 3조2299억원에 불과했다. 매출은 20개 기업이 절반씩 늘거나 줄었는데, 증가 총액(34조7009억원)보다 감소 총액(47조8304억원)이 더 많았다. 손꼽히는 대기업들이 장사를 하고도 돈을 못 벌었다는 건데, 그만큼 경영환경이 어려웠다는 방증이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악재가 터지면서 소비도 꽁꽁 얼어붙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 대비 18.5포인트 급락한 78.4였다. 2008년 7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컸던 2009년 3월(72.8) 이후 가장 낮다.

기업들의 경기전망이 낙관적일 리 없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전국 2200여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2분기 경기전망지수(BSI)’는 1분기보다 18포인트 하락한 57(100 이상은 긍정적, 이하는 부정적)로 나타났다. 역시 2009년 1분기(55)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산업ㆍ전방위 구조조정 중

기업들이 현금 마련에 열을 올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ㆍNH농협)의 3월 원화대출은 2월보다 20조원가량 늘어난 1170조7000억원이었다. 2월 증가 규모(5조5000억원)와 비교하면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가운데 대기업 대출이 8조1000억원 증가했다. 대기업마저 위기를 느낀다는 의미다. [※참고 : 중소기업은 5조3600억원, 소상공인은 3조원 증가했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IMF 경제위기(1997년)나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보다 더 심각하다고 판단하는 경영자들이 많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IMF 때는 국내 경제가 무너졌지만, 세계 경제는 괜찮았다. 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금융위기 때는 세계 경제가 안 좋았지만, 국내 경제가 괜찮았다. 그래서 위기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라 안팎의 상황이 모두 안 좋다. 더 심각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는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라면서 “현금이 급하다기보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현금을 쟁여놓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업의 위기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구조조정이 전산업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호텔ㆍ여행ㆍ면세업계부터 보자. 호텔 분야에선 이미 도산업체들이 나오고 있다. 국내 최초 호텔 리조트 운영 전문법인인 HTC는 3월 26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4월 1일부터 전직원을 대상으로 1개월간 유급(평균 임금의 70%) 휴직에 들어갔다. 호텔롯데는 전 직원에게 일주일 무급휴가를 권장하고 있다. 여행업체인 하나투어는 SM면세점 특허권을 반납하고 5년 연장 포기를 선언했다. 

항공업계에선 저비용항공사들이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이 이스타항공인데, 4월 말까지 전체 직원의 약 40%(750명)를 감원할 예정이다.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후에도 신청자가 부족하면 정리해고에 나선다. 항공업계가 흔들리면서 기내식 업체들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유통ㆍ외식산업에도 구조조정 광풍이 불어닥쳤다. 롯데쇼핑은 3월 27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비효율 점포와 부진 사업을 과감히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CJ푸드빌은 부동산을 비롯한 고정자산 매각, 신규투자 동결, 지출 최대한 억제, 경영진 급여 반납, 신규 매장 출점 보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유동성 확보대책을 내놨다.

중공업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과 세계의 시장인 미국이 코로나19에 휘청거리고 있어서다. 두산그룹은 악화한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인원 감축이나 조직 규모 축소가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업계는 해외 공장 생산 중단으로 사실상 국내 공장만으로 버티고 있다. 그러자 상당수 부품업체들도 휴업을 고려하고 있다. 포스코는 3월 27일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석유ㆍ화학 분야는 공장 가동 중단, 전환 배치 등으로 분주하다. 3월 26일 SK종합화학은 나프타분해(NCC) 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은 3월 31일 울산공장의 고순도테레프탈산(PTA) 공정 가동을 중단하고, 파라자일렌(PX) 공정 가동률을 낮추기로 했다. 해당 공정 근무 인력은 여수ㆍ대산공장으로 전환 배치한다.

자영업계는 이제 대량 실업자를 흡수할 여력이 없다.[사진=연합뉴스]
자영업계는 이제 대량 실업자를 흡수할 여력이 없다.[사진=연합뉴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위기가 구조조정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업 경영 악화→구조조정과 도산→대규모 실업→소비 감소→기업 경영 악화’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면 무서운 재앙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부실한 사회적 안전망의 덫

사회적 안전망이 튼실한 것도 아니다.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된 취약계층은 수두룩하고, 정부가 주관하는 취업교육이나 일자리 매칭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마지막 기댈 언덕이라던 자영업도 포화상태에 다다른 지 오래다.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를 마냥 반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고, 해고된 후의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실업자를 위한 가장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이 실업급여”라면서 “하지만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여전히 저조하고 특수고용직이나 프리랜서 등은 가입조차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실업급여를 받는다 해도 고작 3~6개월인데, 그사이에 경기가 안 좋아지면 취약계층은 답이 없다”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사회안전망 구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총선 이후 가장 먼저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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