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삼성에 던진 원초적 질문➋
미국에 새 미래 초석 다지는 삼성
250조원 규모 투자 플랜 제안해
미국과 반도체 동맹 강화할수록
중국 리스크가 숨통 조일 수 있어
마이크론은 이미 중국 보복 당해
삼성도 중국 의존도 상당하지만
리스크 최소화할 대책은 안 보여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 가운데 대중對中 매출 비중은 30%에 달한다. 메모리 반도체의 한 축인 낸드플래시의 절반도 중국에서 만든다. 그만큼 중국은 삼성전자에 중요한 시장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삼성전자의 노선이 조금 바뀌었다. 원했든 그러지 않았든 미국 일변도 전략을 쓰고 있다. 반도체 투자 대부분도 미국에 쏠려있다. 이 전략, 괜찮을까. 더스쿠프의 視리즈 ‘삼성 향한 원초적 질문’ 두번째 편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투자 플랜에 중국은 빠졌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성전자는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투자 플랜에 중국은 빠졌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과감한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의 삼성 반도체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 지난해 8월 사면 직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임직원에게 전한 말이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40년 전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심했을 때 발언했던 것으로 유명한 ‘도쿄 선언’의 글귀도 함께 꺼내 보였다. 투자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삼성의 미래를 그리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내비친 셈이었다. 

이를 입증하듯 올해 역대 최악의 반도체 위기 앞에서도 삼성전자는 투자에 속도를 냈다. 앞서 視리즈 ‘삼성 향한 원초적 질문’ 첫번째 편에서 살펴봤듯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1분기 실적은 매우 암울했다. 14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고, 25년 만에 반도체 감산을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2분기 전망은 더 심각하다. 반도체 한파는 더 거세지고, 1분기 반도체 부문 손실을 상쇄해줬던 스마트폰 신규 출시 효과도 2분기엔 미미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꺼내든 비장의 카드는 다름 아닌 투자였다. 

■ 현주소➌ 투자의 법칙 =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삼성전자는 지금껏 투자를 통해 극복해 왔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성공신화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과감한 투자 덕분이었는데, 이런 삼성전자의 DNA는 이번에도 발동했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연구ㆍ개발(R&D) 비용으로 분기 사상 최대 규모인 6조5790억원을 지출했다. 같은 기간 시설투자에 쓴 돈도 1분기 기준 최대 액수인 10조7388억원에 달했다. 

대규모 투자 플랜도 마련했다. 지난 3월 15일 삼성전자는 경기도 용인에 ‘첨단 시스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발맞춰 향후 20년간 3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미국 텍사스주에 20년간 2000억 달러(약 250조원)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안을 제출한 데 이은 두번째 장기 투자 플랜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야심찬 투자 로드맵을 향한 우려도 적지 않다. 중대한 기로에 놓인 것치곤 ‘투자 로드맵’에 뚜렷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아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산업연구원은 ‘경제 안보 시대, 전략산업의 미래와 우리의 대응 방안’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산업의 미래 지형 변화를 야기하는 요인으로 1순위 ‘지정학(국제정치)’, 2순위 ‘기술’을 꼽았다. 과거엔 기술이 반도체 산업 지형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얘기다. 

실제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주요국 간의 파격적인 지원 정책,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이 이미 반도체 산업의 지형을 흔들어 놓고 있다.[※참고: 산업연구원의 해당 보고서는 45인의 기업ㆍ관ㆍ학ㆍ연 전문가의 연구ㆍ회의 결과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투자 플랜을 구상할 때 지정학적 요인을 얼마나 살펴봤느냐다. 언급했듯 최근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는 미국에 집중돼 있다. 2021년 11월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홀로 미국을 방문해 170억 달러(약 23조원) 규모의 투자건을 직접 추진했고, 지난해 5월엔 2000억 달러(20년간)를 투자하겠다는 플랜을 미국 정부에 제안했다. 

해당 투자비의 대부분은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삼은 비메모리 반도체, 특히 파운드리 사업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성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초석을 미국에 놓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공장은 미국 오스틴시, 테일러시(건설 중), 평택에 있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을 때도 따로 남아 22일간 미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미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 중 하나다. ‘반도체의 머리’ 팹리스 시장 지배력은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압박과 ‘반도체칩과 과학법(칩스법)’에 따른 지원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를 감안했을 때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는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문제는 ‘중국 리스크’다. 미국의 지원을 받으면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과 투자가 제한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미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36개 중국 기업을 ‘수출통제 명단(블랙리스트)’으로 지정했고, 지난 3월엔 14개 중국 기업을 ‘미검증 명단’에 추가했다. 앞으로 더 많은 중국 기업들이 블랙리스트에 등록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미국 기업이거나 미국 기술ㆍ장비ㆍ소프트웨어 등을 사용하면 이들 중국 기업엔 사실상 반도체 판매가 어렵다.

그뿐만이 아니다. 첨단 기술의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반입하는 것도 제한된다. 여기서 말하는 반도체 장비의 기술 수준은 18나노 이하의 D램, 128단 이상의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수 있는 정도다. 장비 반입을 못한다는 건 공장을 신ㆍ증설하거나 첨단 기술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미국이 칩스법을 만들고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게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어서다. 문제는 이런 중국 리스크가 삼성전자를 관통하고 있다는 거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중국 매출 비중이 높은 편이다. 미국 투자가 본격화하기 전인 2021년 기준 29.9%였다. TSMC의 중국 매출 비중이 10% 수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의존도가 높다. 

미국이 바라는 ‘중국 내 투자 제한’ 문제도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에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후공정 공장을 두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전체의 40%를 중국에서 생산하는데, 설비 투자가 안 되면 매출과 기술 개발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다. 물론 삼성전자는 대중 투자 제한 조치를 올해 10월까지 유예 받았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변수’일 뿐이다.

심각한 건 메모리 반도체에서만 타격을 입는 게 아니란 점이다. 중국은 팹리스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22년 중국의 세계 팹리스 시장점유율은 미국(68.0%), 대만(21.0%)에 이어 9.0%로 3위를 차지했다.

성장 속도도 빠르다. 최근 5년간(2017~2022년) 팹리스 연평균 성장률이 22.5%에 달한다. 파운드리 분야 투자를 미국에만 집중하는 게 긍정적인 효과만 낳진 않을 거란 얘기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중국의 보복 전술도 염두에 둬야 한다. 중국의 ‘역습’은 이미 시작됐고, 삼성전자도 예외일 수는 없다. 첫 희생양은 마이크론이었다. 중국은 지난 21일 마이크론 제품의 자국 판매를 중지했다. 중국 정부는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있어 중대한 안보 위험을 불러온다”며 판매금지 이유를 밝혔지만, 명확한 근거는 대지 않았다.

그보다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 따른 보복 조치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는 중국 전문가 홀든 트리프릿 트렌치코트(보안 컨설팅업체) CEO의 말을 인용해 “(중국의 판매금지 조치는) 순수하고 단순한 정치적 행위이며, 누구든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중국이 미국과 미국의 우방국에 경고장을 날린 셈인데, 삼성전자라고 중국의 보복에서 자유로울 것이란 보장이 없다. 미국과의 반도체 동맹이 강화할수록 중국의 보복 가능성이 더 높아질 여지도 있다.

실제로 중국의 보복에 따른 결과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 비중이 2021년 29.9%에서 올 1분기 18.8%로 뚝 떨어진 건 무시할 수 없는 통계다.[※참고: 일부에선 삼성전자가 중국의 마이크론 제품 판매금지 조치에 따른 수혜를 입을 거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미국은 한국에 “한국 반도체 기업이 마이크론의 대체 공급자가 되지 말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보여준 로드맵엔 중국 리스크를 상쇄할 뚜렷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4일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사장도 ‘미국의 압박 탓에 중국 사업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중국 투자는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전체 사업에 영향을 줄 만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뜻을 드러냈다. 

한편에선 일본 내 투자를 통해 중국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을 것이란 낙관론도 나오지만, 확신하긴 어렵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일본 요코하마에 300억엔(약 2948억원)을 투자해 반도체 시설을 짓는다. 하지만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중국의 대체지로 일본을 염두에 뒀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일단 투자 규모가 크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 규모를 봤을 때 생산시설은 아니고 연구시설이나 시제품 생산시설 정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삼성전자가 투자를 약속한 금액은 TSMC(10조원가량)나 마이크론(1조3697억원)이 최근 일본에 투자한 금액엔 한참 못 미친다. 

더구나 일본 시장과 중국 시장은 규모 면에서 비교 불가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ㆍ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세계 반도체 시장 비중(소비액 기준)은 미국과 중국이 각각 25.0%, 24.0%로 가장 컸고, 일본은 6.0%에 불과했다. 삼성전자가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플랜으로는 중국 리스크를 감수하기 어려울 공산이 크다는 거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미국엔 대형 팹리스와 최고의 벤처캐피털, 인력풀이 많다. 그런 점에서 미국 시장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건 필요한 일이다. 특히 텍사스주는 향후 미국 첨단산업을 이끌 지역으로 손꼽힌다. 국내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입장에선 얘기가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중국 시장을 더 면밀히 따져야 한다. 종합적인 판도를 고려해 좀 더 신중하게 판단했어야 했다.”

TSMC는 최근 애플ㆍ엔비디아ㆍ퀄컴 등 우량 고객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서 아성을 견고히 다졌다. 인텔은 ARM과 동맹을 결성하며 칼을 제대로 갈았다. 이런 경쟁 속에서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성장 전략은 제 길을 가고 있을까. 아직까진 그 길의 끝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예측하기 힘들다. 

고준영 더스쿠프 경영전문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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