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마이크론 사이버 안보 위배”
미중 반도체 전쟁 끝내 불붙나
백악관 요청에 발목이 잡힌 한국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산하의 인터넷안보심사판공실(CAC)이 21일 미국 반도체회사 마이크론의 제품 판매를 중지했다. 중국 CAC는 이날 “마이크론 제품에 비교적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존재해 중국의 정보 사회기반시설 공급망에 중대한 안보 위험을 불러온다”며 마이크론 제품이 사이버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중 반도체 전쟁이 전세계로 확전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중국의 마이크론 제품 판매 중지에 숨은 함의를 쟁점별로 살펴봤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미국으로 초대했다. [사진=연합뉴스]
미중 반도체 전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미국으로 초대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의 정보시설 운영자는 이제 마이크론 제품 구매를 중지해야 한다. 중국은 마이크론의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다. CAC는 지난 3월 31일 기습적으로 “마이크론이 중국에 판매한 제품이 사이버 안보를 위배했는지를 심사한다”고 밝혔고, 지난 21일 판매를 중지시켰다. 마이크론 제품이 사이버 안보를 위배했다고 결론 내린 셈이다. 

마이크론은 매출 기준 세계 5위의 반도체 회사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미국 1위다. 마이크론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308억 달러, 대중對中 매출은 전체의 11%인 33억 달러였다. 현재 중국 내 직원 수는 3000여명에 달한다.   

■ 쟁점➊ 디커플링 vs 디리스크=지난 4월 중국은 마이크론을 향한 사이버 안보 심사가 통상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CAC 조사는 지금까지 최소 31일 이상 진행됐다. 중국 기업 디디추싱의 경우에서처럼 1년 이상 조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의 결정은 이제 반도체 문제가 경제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20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회담을 갖고 “주요 공급망에서 과도한 대중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항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창설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지난 4월 18일 G7 외교장관들의 공동성명과 궤를 함께한다. G7 외교장관들은 “중국이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a responsible member of the international community)이 되기를 기대하며, 중국이 불공평한 거래, 경쟁력 회피, 데이터 유출 행위, 일방적 무역 행위에서 벗어나 투명성, 예측성, 공평한 기준을 제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이 21일 미국 반도체회사 마이크론 제품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했다. [사진=뉴시스]
중국이 21일 미국 반도체회사 마이크론 제품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했다. [사진=뉴시스]

중국 외교부는 21일 G7 정상들이 오히려 국제평화를 저해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또 “G7이 미국의 경제적 강압에 동참하는 공범이 되지 말라”며 “일방적인 대규모 제재와 (중국을 공급망에서 제외하는) 디커플링(decoupling), 공급망 교란 행위는 미국을 진정한 경제적 강압자로 만들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중국과 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라 디리스크(위험 제거)와 다양화를 꾀하려는 것(de-risk and diversify)”이라며 “(중국과의 관계가) 빠른 시일 내에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쟁점➋ 미중 확전의 그늘=중국이 주요 정보시설 운영자들이 마이크론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한 이유는 ‘국가 안보 위협’이다. 이는 중국이 향후 미국과 일본의 주요 반도체 관련 회사들의 제품을 안보 위협을 이유로 판매 금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경제매체 블룸버그는 “반도체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미국과 중국이 대립해 온 주요 격전지”라며 “중국의 (마이크론 판매금지) 조치는 기습”이라고 분석했다. 또 퀄컴, 브로드컴, 인텔 등 미국 반도체회사들이 향후 중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체는 중국에서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 근무했고, 보안 컨설팅회사 트렌치코트를 창업한 홀든 트리프릿 CEO의 발언을 인용했다. “(중국 정부의 말처럼) CAC의 결정이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 보복하는 게 아니라곤 볼 수 없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기업들은 이런 속임수에 넘어가선 안 된다. 이는 순수하고 단순한 정치적인 행위이며, 누구든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그럼 미·중 반도체 확전의 끝은 어떻게 될까. 기술력의 차이는 물론이고 역사적으로 봤을 때도 미국이 유리하다는 것을 부인하긴 힘들다. 다만, 블룸버그의 말과는 달리 중국은 ‘기습’을 했다기보다는 ‘역습’을 했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G7 정상들이 21일 공동성명에 ‘중국의 공급망 배제’를 넣은 것이 기습에 가깝다. 또한 “누구든지 (미중 반도체 전쟁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과거 미중 통상전쟁처럼 양국에 모두 해당된다.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자료 | 더스쿠프, 사진 | 뉴시스]​

두 나라의 반도체 전쟁은 2015년 중국의 칭화유니그룹이 마이크론 인수를 시도하면서 시작됐다.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7월 칭화유니그룹의 230억 달러 규모 마이크론 인수를 불허했다. 2016년 미국의 페어차일드는 중국 기업과 인수에 합의했지만, 미국 정부의 반대를 예상해 합의를 철회했다.

중국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중국 반독점당국은 2018년 7월 미국 퀄컴의 네덜란드 NXP 인수 승인을 거부했고, 마이크론의 일부 제품이 지식재산권(IP)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중국 내 판매를 금지했다. 미국과 중국은 이후에도 반도체 관련 회사, 제품, 소재 개별 안건을 두고 ‘맞불놓기’를 지속했다. 

미국 상무부는 2020년 수출통제조례(EAR) 규정에 따라 ‘중국군 연관 기업’이라는 이유로 중국 반도체회사 SMIC, 홍콩 드론회사 DJI 등을 블랙리스트로 지정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는 2021년 1월 같은 이유로 차이나모바일 등 중국 3대 통신사를 상장폐지했다.

같은 3월에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2019년에 제정된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네트워크법’ 위반으로 중국의 화웨이, ZTE, 하이테라, 하이크비전, 다화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기업’으로 지정했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은 지난해 8월 자국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최대 25%에 달하는 투자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발효했다. 미 상무부는 올해 3월 이 법에 따라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 보조금을 받으면 10년 동안 중국 등 우려대상국에서 5% 이내에서만 생산을 확대할 수 있다는 내용의 ‘가드레일(안전장치)’을 발표했다. 

■ 쟁점➌ 미중 싸움과 한국=미국과 중국이 붙었는데 정작 피해는 우리 기업이 입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장이 위치해 있는 생산거점인 동시에 단일 소비시장으로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시장조사회사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세계 D램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19.0%에서 올해 14.0%, 2025년 12.0%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기준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이 각각 45.1%, 27.7%로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이 일본과 한국을 미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우방’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도 부담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 영문판은 22일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비난을 강화하기 위해서 G7 정상들을 소집했다”고 보도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 정상을 워싱턴으로 초청했다”고 강조했다. 이 매체는 이를 “지역 내 국가들의 분열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의도”라고 비난했다. 

사실상 미국 편에 선 삼성전자는 중국 리스크를 슬기롭게 털어낼 수 있을까. [사진=뉴시스]
사실상 미국 편에 선 삼성전자는 중국 리스크를 슬기롭게 털어낼 수 있을까. [사진=뉴시스]

미·중 반도체 갈등으로 도태 위기에 처했던 중국 반도체 회사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 4월 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들은 “미 백악관이 윤석열 정부 측에 한국 기업들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일제히 보도한 바 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중국으로선 로컬 기업의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고, 이는 중국 반도체 회사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양쯔메모리(YMTC)가 있다. YMTC는 낸드 시장에서 점유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미국 상무부의 수출통제 명단에 추가됐다.

하지만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최근 “YMTC가 올해 2월 중국 국영투자자들로부터 대기금(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 70억 달러를 받아 수입이 금지된 첨단 반도체 장비를 국산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자립계획을 세웠다”며 “중국 반도체 자립 노력에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기업들이 마이크론의 빈틈을 채우지 않는다면, 과실은 중국기업에 돌아갈 것이란 얘기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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