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전기차 제조사 LFP 배터리 채택
국내에선 “결국엔 삼원계” 호언
LFP 점유율 2018년 대비 3.8배
배터리 3사 모두 LFP 시장 진출
韓 늦은 추격, 中은 새 LFP 개발
LFP 시장 성공적 안착 가능할까

‘중국의 싸구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지금까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평가는 변변찮았다. 그래서 2021년 테슬라를 비롯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LFP 배터리 탑재 비중을 높이겠다고 선언할 때도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 LFP 배터리는 갈수록 각광받고 있고, 이제야 진가를 알아챈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중국을 잡겠다”며 이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뒤늦은 결정은 아닐까. 

국내 배터리 업계가 LFP 배터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사진은 삼성SDI의 각형 배터리.[사진=뉴시스]
국내 배터리 업계가 LFP 배터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사진은 삼성SDI의 각형 배터리.[사진=뉴시스]

“우리는 프리미엄급 전기차 시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반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용도는 저가형 전기차에 국한된다. 우리가 LFP 배터리 개발에 뛰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2021년 11월 삼성SDI 관계자가 밝힌 자사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당시는 전기차 업계 선두주자인 테슬라를 시작으로 폭스바겐, 포드,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까지 LFP 배터리 비중 확대를 선언한 직후였다. 그때만 해도 국내 배터리 업계엔 ‘어차피 배터리 시장의 대세는 삼원계(NCMㆍNCA)’란 인식이 넓게 퍼져 있었다.

삼원계 배터리는 니켈(N)과 코발트(C) 베이스에 망간(M)이나 알루미늄(A)을 첨가하는 배터리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그동안 삼원계 배터리 개발에 주력해왔다. LFP 배터리보다 에너지 효율성이 좋은 데다 기술 진입장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다만 LFP 배터리보다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랬던 삼성SDI의 입장이 올해 들어 바뀌었다. 지난 3월 15일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업과 고객 다양성이 중요하다”면서 “LFP 배터리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LFP 배터리 개발을 공식화한 거다.

4월 27일 열린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도 삼성SDI 측은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전기차가 나오고, 소비자 선택의 폭도 커질 것”이라면서 “LFP 배터리 등 코발트 사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삼성SDI의 이런 변화가 업계의 주목을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동안 배터리 3사의 전략은 조금씩 달랐다. LG에너지솔루션(이하 LG엔솔)은 “고객이 원하면 만든다”는 전략으로 일찌감치 LFP 배터리 양산 기술을 확보했다.

지난해엔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 배터리 시제품을 선보였고, 중국 난징南京 공장 일부를 LFP 생산라인으로 전환했다. 올해는 미국 미시간주에 이어 애리조나주에도 대규모 LFP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주로 ESS용이지만, 미시간주에서 생산할 LFP 배터리가 전기차에 사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SK온은 조금 신중했다. LFP 배터리를 개발은 해놓고, 상황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취했다. 그러던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콘퍼런스에서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선보였다. 시장 안팎에서 SK온이 조만간 대규모 증설을 위한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국내 배터리 3사의 ‘개발 방향’이 크게 달라졌다. 제품 다양화에 제한을 두지 않던 LG엔솔은 논외로 치더라도 LFP 배터리를 향한 SK온, 삼성SDI의 입장은 완전히 달라졌다. SK온은 ‘소극적’에서 ‘적극적’으로 바뀌었고, 삼성SDI는 ‘만들지 않겠다’던 기존 전략을 뒤집었다. 

최근 중국 업계가 잡고 꽉 잡고 있는 LFP 배터리 시장이 급성장했다.[사진=뉴시스]
최근 중국 업계가 잡고 꽉 잡고 있는 LFP 배터리 시장이 급성장했다.[사진=뉴시스]

■ 질문➊ LFP 배터리 왜 뜰까  = 그럼 LFP 배터리를 둘러싼 환경은 뭐가 달라진 걸까. 답은 간단하다. LFP 배터리 시장이 예상보다 훨씬 더 커졌다.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EV볼륨에 따르면 2018년 기준 NCM(니켈ㆍ코발트ㆍ망간) 배터리의 시장점유율은 62.3%였다. NCA(니켈ㆍ코발트ㆍ알루미늄) 배터리는 26.6%, LFP 배터리는 7.1%에 불과했다. NCM 배터리와 NCA 배터리는 모두 삼원계 배터리다.

하지만 지난해 NCM 배터리는 61.3%, NCA 배터리는 8.5%, LFP 배터리는 27.2%를 기록했다. 지난 5년간 삼원계 배터리 시장이 88.9%에서 69.8%로 쪼그라드는 동안, LFP 배터리 시장은 3.8배 커진 셈이다.

물론 LFP 배터리 수요처는 아직까지 중국 전기차 생산업체와 테슬라가 대부분이지만, 이 수요처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난해 8월 UBS증권 애널리스트들은 보고서를 통해 “2021년 105억 달러(약 14조원)였던 전 세계 LFP 배터리 시장 규모는 연평균 19.7% 성장해 2030년엔 527억 달러(약 70조원)를 넘어설 것”이라면서 “LFP 배터리가 2030년 세계 배터리 시장의 40%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런 전망이 나오는 이유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기술적 진화를 이뤄냈다. 언급했듯 LFP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보다 효율성(주행거리 단축)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평가는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LFP 배터리는 삼원계 배터리만큼은 아니더라도 기술 개발을 통해 효율성이 상당한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지난 4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중국 LFP 배터리의 셀 단위 평균 에너지밀도는 ㎏당 145~160Wh, 팩 단위 평균 에너지밀도는 ㎏당 120~140Wh 수준이었다. 최근 양산되는 중국 LFP 배터리의 셀 단위 평균 에너지밀도는 ㎏당 최대 210Wh, 팩 단위 평균 에너지밀도는 ㎏당 155~160Wh까지 향상됐다. 1회 완전충전 후 주행거리도 400㎞ 수준으로 개선됐다. 

게다가 LFP 배터리는 안정성 면에선 삼원계 배터리보다 훨씬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일례로, 삼원계 배터리는 배터리의 수명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100% 충전이 아닌 80%의 충전이 필수인 반면 LFP 배터리는 100% 충ㆍ방전도 가능하다. 

최재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중국지역전략팀) 전문연구원은 “LFP 배터리 시장은 중국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급성장했다”면서 “지금은 테슬라를 비롯해 폭스바겐, BMW, GM, 스텔란티스, 현대차ㆍ기아, KG모빌리티(옛 쌍용차) 등 주요 기업들이 2만2000~3만 달러 수준의 보급형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어서 LFP 배터리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LFP 배터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를 선언한 이유도 그래서다. 

■ 질문➋ 중국 넘을 수 있을까 = 자! 이쯤 되면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뒤늦게 힘을 쏟고 있는 LFP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배터리 3사는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중국이 꽉 잡고 있는 이 시장을 파고들 수 있기는 할까.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 LFP 배터리의 기술력이 한발짝 앞서 있기 때문이다. 

정부(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28일 세계 최고 성능의 LFP 배터리 개발을 위해 233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과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정부(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28일 세계 최고 성능의 LFP 배터리 개발을 위해 233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과제를 추진한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단적인 예로 세계 최대 배터리 회사인 중국의 CATL은 에너지 밀도를 높이기 위해 LFP 배터리에 NCM 배터리의 장점을 혼합하는 기술을 완성해 양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M3P’로 불리는 신형 배터리인데, CATL은 M3P 배터리의 에너지밀도가 ㎏당 230Wh로 NCM 배터리(㎏당 250Wh)에 근접한 수준을 보이는 것으로 홍보하고 있다.  

더구나 중국 기업들은 최근 LFP 배터리보다 더 값싼 소듐(나트륨)을 원료로 한 나트륨이온 배터리까지 양산하고 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주원료인 나트륨은 지구에서 여섯번째로 많은 원소다. 가격은 리튬의 80분의 1 수준이다. 우리는 이제 LFP 배터리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데, 이미 중국은 멀찌감치 달아난 셈이다. 

그럼에도 국내 배터리 업계나 시장 분석가들은 낙관적인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다수의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FP 배터리는 기술적인 면에서 큰 장벽이 없다”면서 “기술력을 통해 충분히 가격경쟁력도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업계의 애널리스트들의 분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과연 그들의 낙관론처럼 LFP 배터리 시장을 빼앗는 건 ‘식은 죽 먹기’일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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