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엔비디아 성장의 비밀➊
더스쿠프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반도체기업 최초 시총 1조 달러
GPU 게임 전유물이란 편견 탈피
‘포스트 잡스’로 꼽혔던 젠슨 황
흙수저 신화에 세간 찬사 쏟아져
소통 강조하고 자기 희생도 감수
큰 성과 이룬 후 조명은 결과론적
젠슨 황의 전략과 철학 살펴봐야

엔비디아의 기술을 적용한 영화 인셉션은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엔비디아의 기술을 적용한 영화 인셉션은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 아카데미 시상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1, 아이언맨2, 히어애프터, 인셉션…. 타이틀만 봐도 알 법한 다섯편의 영화는 세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나,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2011년) 시각효과상 후보작이다. 둘, 당시로선 혁신에 가까웠던 3D 기술을 사용했다.

마지막 공통점은 다소 흥미롭다. 다섯편의 영화를 한데 묶은 셋째 키워드는 ‘엔비디아(Nvidia)’다. 이들 후보작은 엔비디아와 손을 잡고 화려한 3D 기술을 구현해 냈다. 그래, 엔비디아는 이미 10여년 전에도 알찬 회사였다.
 
# the Next Jobs?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그해 1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병가病暇를 냈다. 췌장암 치료(2004년)에 이어 간이식(2009년) 수술까지 받은 잡스를 두고 사망설이 불거졌다. 해외 언론은 ‘잡스의 후계자’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 IT 웹진 ‘테크뉴스월드’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글을 실었다. “넥스트 잡스는 엔비디아 CEO?(Could Nvidia’s CEO Be the Next Steve Jobs?)” 포스트 잡스 시대를 이끌 경영자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을 꼽았던 거다. 대만계 미국인인 그는 그렇게 ‘차세대 CEO’ 중 한명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 신선한 충격파 

사실 10년 전 엔비디아는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처럼 대중적 인지도를 갖고 있던 회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실만은 탄탄했다. 2010년 당시 외장형 GPU(Graphics Processing Unit·그래픽 처리장치) 시장에서 이 회사의 점유율은 60%에 달했다. 그해 엔비디아는 33억3000만 달러(약 3조7000억원·당시 환율)의 매출을 올렸고, 기업가치는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엔비디아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게임용 GPU’나 만드는 업체라고 깎아내리는 세력도 있었다. ‘동양에서 날아온 CEO가 포스트 잡스?’라면서 차별 섞인 시선으로 비꼬는 이들도 숱했다. 

# 언더독의 반란 

그로부터 10여년이 훌쩍 흐른 지금, 엔비디아는 그때 그 폄훼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세계 시장에 신선한 충격파를 던지며 ‘넥스트 뉴노멀’로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엔비디아의 성장 비결은 게임에나 쓰인다고 조롱당하던 바로 그 GPU다. 

수년간 CPU(Central Processing Unit·중앙처리장치)의 언더독쯤으로 평가받던 엔비디아의 GPU는 인공지능(AI)과 챗GPT에 ‘없어선 안 될’ 핵심 부품이 됐다. 개당 최대 4만5600달러(5866만원)로 치솟은 엔비디아의 AI용 GPU(H-100)를 두곤 ‘없어서 못 사는’ 품귀 현상까지 벌어졌다. 

이를 발판으로 엔비디아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반도체 기업으로선 최초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동시다발적 변수를 빠르게 계산할 땐 GPU가 CPU보다 우월하다는 걸 간파한 엔비디아와 젠슨 황의 식견이 ‘1조 달러’ 시대를 여는 초석으로 작용했다. 

젠슨 황은 GPU의 새로운 가능성을 포착했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가속 컴퓨팅 없이는 불가능한 과학·응용 산업이 있을 것이란 믿음을 단 한번도  의심치 않았다. GPU는 이전에는 할 수 없던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거나, 훨씬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 결과, 우리는 비디오 게임에서 디자인으로, 디자인에서 디지털 제품으로, 디지털 제품에서 분자공학·유전체학·AI에 이르는 과학기술 컴퓨팅으로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이 정말 자랑스럽다(2023년 3월 20일 CNBC 인터뷰).” 

# 새로운 아이콘 

이 때문인지 전례 없는 ‘엔비디아 현상’엔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유수의 투자회사와 미디어가 엔비디아에 ‘승자’란 칭호를 줄줄이 붙이고 있다. “엔비디아는 올해 최고의 승자다(Nvidia Is This Year’s Big Winner·인터넷 투자매체 더 모틀리 풀)” “엔비디아는 AI 시장에서 승자독식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Nvidia is in a great position to be in a winner-takes-all moment for A.I.·CNBC)”. 

뜨거운 관심은 이 회사의 CEO 젠슨 황에게도 옮겨졌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수조 달러 규모의 칩 회사를 거느린 가죽 재킷의 보스(Nvidia CEO Jensen Huang: Leather-jacketed boss of trillion-dollar chip firm·로이터)” “실리콘밸리에는 새로운 스타일 아이콘이 있다(Silicon Valley Has a New Style Icon·뉴욕타임스)” “화장실 청소부에서 실리콘밸리 1조 달러 칩의 왕으로(From lavatory cleaner to the $1 trillion chip king of Silicon Valley·더 타임스)”. 

엔비디아 창업주 젠슨 황은 포스트 잡스로 꼽혔던 CEO 중 한명이다. [사진=뉴시스]
엔비디아 창업주 젠슨 황은 포스트 잡스로 꼽혔던 CEO 중 한명이다. [사진=뉴시스]

외신의 묘사에서 보듯 젠슨 황은 독특한 경영자다. 우리로 따지면 그는 ‘흙수저 CEO’다. 미 중남부 켄터키에 있는 ‘오네이다 밥시스트’ 학교에 입학했을 땐 동양인이란 이유로 3년 넘게 기숙사 변기를 닦아야 했다. 

경영 스타일도 남다르다. 미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에 있는 엔비디아 본사엔 젠슨 황의 방이 없다. 중요한 논의도 콘퍼런스룸을 빌려 진행한다. 직원뿐만 아니라 세상과 실시간 소통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이다. 

리더론 역시 색다르다. “CEO와 임원의 단기적 희생이 회사 전체에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게 그의 오랜 철학이다. 2008년 금융위기 시절엔 “내 연봉은 1달러”라면서 뛰어난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일에 자금을 집중 투자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깎아내렸을지 몰라도, 그가 ‘포스트 잡스’ 중 한명으로 꼽혔던 건 과한 평가가 아니었다.

# 마법 같은 일 

하지만 대단한 성과 뒤에 따라붙는 ‘찬사’는 결과론에 불과할 때가 많다. 엔비디아가 지금의 자리에 올라서지 못했다면, 젠슨 황은 ‘가죽 재킷이나 입는 허세 가득한 CEO’ ‘실리콘밸리에선 통하지 않는 스타일’이란 혹평을 받았을 수 있다. 기숙사에서 변기를 닦았던 일은 흙수저의 승리가 아니라 약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쯤으로 치부됐을지 모른다. 

우리가 파고들어야 하는 건 과정이다. 엔비디아와 젠슨 황이 ‘언더독 GPU’를 가다듬기 위해 어떤 전략을 폈는지, 그 전략이 실패했을 때 무얼 발판으로 다시 일어섰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쿼드로(3D 솔루션), 테그라(모바일 프로세서), 테슬라(반도체 슈퍼칩) 등으로 이어지는 엔비디아의 기술적 진화 과정도 세세히 뜯어봄 직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난한 ‘동양계 미국인’이 무슨 돈으로 엔비디아를 창업했으며, 누군가 자금을 댔다면 ‘그는 대체 뭘 믿고 엔젤을 자처했는지’도 탐색해볼 만한 질문들이다. 이같은 의문을 풀어내야 ‘스티브 잡스나 젠슨 황 같은 혁신적인 인물이 국내에서 탄생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 

12년 전 젠슨 황은 “엔비디아는 머지않은 미래에 마법 같은 일을 해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 말은 현실이 됐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12년 전 젠슨 황은 “엔비디아는 머지않은 미래에 마법 같은 일을 해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 말은 현실이 됐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 12년 전 그의 말 

이런 맥락에서 우린 視리즈 ‘엔비디아 성장의 비밀’을 통해 엔비디아의 진화를 이끈 결단이 무엇인지 따져봤다. 2011년 우리가 인터뷰했던 젠슨 황과 2023년 해외 언론이 만난 젠슨 황의 교차점도 짚어봤다. 

12년 전 젠슨 황은 이런 말을 남겼다. “엔비디아는 머지않은 미래에 마법 같은 일을 해낼 것이다.” 그는 끝내 마법사가 됐고, 세계는 그의 마법에 취했다. 우리 앞엔 언제쯤 마법사가 나타날까.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 참고: 550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은 6월 19일 발간한 경제매거진 더스쿠프의 총론입니다. 이어지는 파트 기사들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 [파트1] GPU는 어떻게 AI의 심장 됐나
출고예정일_ 6월 22일 목요일 
 
· [파트2] 저평가 받던 ‘언더독’, 제왕 노리다 
출고예정일_6월 23일 금요일 

· [파트3] 그때의 젠슨 황, 지금의 젠슨 황
출고예정일_6월 2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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