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강제력 없는 공인중개사협회
미국 윤리강령 도입 추진 중
법정단체 근거법 발의된 상황
급하게 규정해야 할 요소 있어

‘빌라왕’으로 대표되는 전세사기 사건에 공인중개사가 연루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뜩이나 신뢰를 잃었던 공인중개사의 입지가 더 좁아졌다. 그러자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법정단체화’로 변화를 이끌겠다고 나섰다. 협회가 법정단체가 되면 공인중개사의 일탈행위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풀어야 할 숙제도 숱하다. 

공인중개사의 부정행위를 막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 3개월 만에 통과됐다.[사진=뉴시스]
공인중개사의 부정행위를 막고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 3개월 만에 통과됐다.[사진=뉴시스]

“만물을 떠받치는 건 땅이다(Under all is the land).” 1913년 만들어진 전미부동산협회(NAR) 윤리강령의 서문 중 첫번째 문장이다. 토지(부동산)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그렇기에 얼마나 큰 책임감을 갖고 부동산 중개업에 나서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 2일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이하 공인중개사협회)는 전미부동산협회와 만나 ‘윤리강령을 서로 수용할 수 있다’는 양자 간 협력 계약을 맺었다. 미국 공인중개인들이 사용하는 윤리강령을 국내에도 적용하겠다는 밑바탕을 깔아둔 셈이다.

NAR의 윤리강령은 부동산 중개인이 부당 이익을 취하지 않고 매도자와 매수자,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NAR에 가입해 윤리강령을 지키겠다고 서약한 부동산 중개인들은 ‘리얼터(Realtor)’라는 명칭으로 따로 불린다. 그렇지 않은 부동산 중개인들은 ‘리얼터’라고 불리지 않는다. 소비자 입장에선 윤리강령을 준수하겠다고 서약한 중개사들과 아닌 중개사를 구분할 수 있는 셈이다. 

국내에는 공인중개사 윤리강령이 없지만 공인중개사무소의 현황을 파악할 수는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제공하는 ‘부동산중개업 조회’를 통해서다. 이를 근거로 소비자는 공인중개사무소에 소속된 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을 파악해 계약서 작성이 가능한 중개사와 그렇지 않은 중개보조원을 구분할 수 있다.

행정처분을 받아 영업이 정지된 상태라면 이 역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공식적인 윤리강령이 없어서 공인중개사로서 직업적 책임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긴 어렵다. 언급한 것처럼 영업 정지 상태는 확인하는 게 가능하지만, 영업정지 기간이 끝나면 그 이력을 알 방법은 없다. 

이런 이유로 국내 공인중개사들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다. 2022년 전세사기를 저지른 집주인과 공모한 공인중개사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중개사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막연한 비판은 아니었다. 실제로 전세사기에 가담한 중개사의 구체적인 규모가 드러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보험에서 발생한 보증금 반환사고는 총 8242건이었다. 이중 악성 임대인이 소유한 주택을 2회 이상 취급(계약)한 수도권 공인중개사는 242명, 그 가운데 전세사기에 가담한 중개사는 99명(40.9%)이었다.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공인중개사협회도 전세사기에 가담한 중개사들을 규제하고 문제가 더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작업을 철저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 2월 공인중개사협회는 전세사기가 대규모로 발생한 인천 미추홀구 등에서 자정 작업의 일단을 공개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론 ▲공인중개사 윤리규정 제정 및 교육, ▲협회 시세 모니터링 강화, ▲국토부 추천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 적용, ▲위험 매물 리스트 관리, ▲전세사기 의심 사례 적극 제보 등을 제시했다.

공인중개사협회는 자정 노력뿐만 아니라 협회를 ‘법정단체’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정단체는 변호사ㆍ감정평가사 등 법률에 따라 자격시험을 치르는 자격사들이 설립하는 법인이다. 일반 단체와 가장 큰 차이점은 ‘의무가입’ 여부다. 모든 중개사가 공인중개사협회에 가입해야 한다는 건데, 이런 경우엔 ‘회원 제명’의 힘도 커진다. 특정 중개사의 업무 자체를 막을 힘이 생긴다는 거다.

2022년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공인중개사법 일부개정안’에 따르면, 공인중개사협회가 법정단체로 전환되면 권한이 더 확대된다. 국토부의 승인을 얻어 ‘윤리 강령’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은 아니어도 협회가 만든 윤리 규정이어서 부정행위를 막을 수 있다. 사실상 단속할 수 있는 권리도 생긴다. 김병욱안 제41조 6에 따르면 공인중개사협회는 직접 부정 중개행위를 한 중개사를 조사해 정부에 행정처분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개정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 넘어간 상태다. 법으로서 큰 문제가 없다면 소위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김병욱 의원실 관계자는 “개정안이 크게 부족할 경우 법안소위로 아예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논의 대상이 됐다는 건 긍정적 신호”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공인중개사협회의 법정단체화만으로 공인중개업은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이 있다. 관례적으로 진행되던 공인중개사의 불ㆍ편법 행위를 통제하는 것이다.

자격증 대여를 알선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이 자격증을 빌려서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진 자격증 대여에 연루된 이들만 처벌 대상에 오르고, 알선 행위는 제외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인중개사가 사기, 사문서위조, 배임 등을 저질러도 그 자격이 취소되지 않는다는 점은 오랜 비판거리였다. 이런 고질병은 공인중개사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를 의식한 듯 국회는 전세사기 피해 규모가 커지자 자격증 대여 알선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2023년 2~3월에만 3건의 개정안이 나왔고, 지난 5월 ‘공인중개사법 일부개정법률안(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이 발효하면, 자격증을 알선한 이 역시 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개정안은 아울러 사기, 사문서위조 등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공인중개사의 자격을 취소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뒀다.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장은 “부동산거래질서교란행위 신고센터는 집값 띄우기를 위한 담합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있었다”며 “공인중개사의 부정행위를 신고하려는 소비자들도 늘었기 때문에 무등록 중개, 공인중개사의 거짓 언행, 명의대여 등 신고 항목을 확대 개편하는 건 반길 만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공인중개사협회의 법정단체화도 내부 단속이 활발해진다는 점에서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법정단체가 아니더라도 공인중개사의 고질병을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정비하는 게 우선이다. 이제 첫발을 내디뎠다. 결과를 보고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것 역시 정부와 국회의 몫이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