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은행권 비리 반복되는 이유
경남은행, 500억원대 횡령
KB국민, 미공개중요정보 이용
대구은행, 증권계좌 불법 개설
시중은행 도덕적 해이 심각해
내부통제 강화 나선 금융당국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 추진
곳곳에 CEO 면죄부 조항 마련
법 개정하면 은행 비리 사라질까

한동안 잠잠했던 국내 은행의 횡령·비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가리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금융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금융당국이 준비 중인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선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 개정안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까.

국내 은행의 횡령‧비리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내 은행의 횡령‧비리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예금·적금·대출·이자 등 은행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단어가 있다. 그중에서도 은행의 핵심 가치를 나타내는 것은 신뢰와 안전성이다. 피 같은 내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은행이라는 거다. 

하지만 최근 국내 은행의 행보는 신뢰나 안전성과는 거리가 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횡령·불공정거래 등과 같은 비리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고 있어서다. 은행권의 도를 넘은 비리 사건은 시중은행과 지방은행을 가리지 않고 있다. 

비리 사건의 포문을 연 곳은 지방은행인 경남은행이다. 지난 2일 경남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무를 담당하는 투자금융부서 직원이 2007년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총 562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직원은 자금인출 요청서를 위조해 경남은행이 취급한 PF대출자금을 가족이 운용하는 법인계좌로 이체하는 등 은행돈을 자기 돈처럼 사용했다. 사실 횡령 수법이 새로운 건 아니었다. 가족 명의 계좌로 PF대출 상환금을 이체하거나 대출 서류를 조작하는 전형적인 수법을 사용했다. 그런데도 경남은행은 이 직원이 15년 넘게 은행돈을 횡령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일주일 후인 9일에는 KB국민은행에서 미공개중요정보를 활용한 불공정거래 사건이 적발됐다. KB국민은행 증권업무 부서 직원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상장법인의 무상증자 소식을 이용해 주식투자에 나섰고, 막대한 부당이익을 얻었다. 

금감원은 “부서 소속 직원 상당수가 미공개중요정보를 이용해 본인이 직접 주식거래를 했다”며 “다른 부서 직원과 가족·지인 등에게 기업의 무상증자 정보를 전달해 주식 매매에 이용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기간은 3년이 넘고(2021년 1월~2023년 4월), 상장기업 수는 61개에 달했다. 이를 통해 KB국민은행 직원들과 관계인들이 거둬들인 불공정거래 수익은 127억원(직원 66억원·정보수령자 61억원)이나 됐다. 해당 부서 전체에 도덕적 해이가 팽배했다는 의미다.  

다음날인 10일에는 지방은행인 대구은행에서 증권계좌 불법개설 사건이 발생했다. 대구은행 직원들은 고객이 증권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작성한 신청서를 복사해 또다른 증권사 계좌를 개설하는 데 사용했다.

고객 몰래 증권계좌를 개설한 게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계좌개설 안내문자(SMS)를 차단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목적은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실적을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터진 은행권 비리 행위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4월 은행권 횡령 사건(우리은행 700억원·신한은행 2억원·KB저축은행 95억원 등)이 연이어 터진 지 1년여 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터진 횡령 사건으로 국내 5대 시중은행장(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NH농협은행·하나은행)은 2017년 이후 5년 만에 국정감사에 출석했고, 앞다퉈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금융당국도 ‘내부통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내부통제 강화 방안 마련에 나섰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6월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금융회사와 정부의 노력에도 은행권의 비리 행위는 계속해서 터지고 있다.

물론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밝혀진 사건이라는 의견도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금융당국의 대대적인 조사 이후 은행의 비리 행위가 하나둘씩 불거지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조사와 내부통제 강화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제 은행권의 횡령과 비리 사태는 줄어들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낙관적이지 않다. 금융당국과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비리의 싹은 또다시 움틀 것이란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이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의 핵심은 금융회사에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최고경영자(CEO)에게 묻겠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경영학) 교수는 “금융사고의 책임을 법적으로 CEO에게 물을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가 강화될 것”이라며 “내부통제의 책임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선안’으로는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를 강화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의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선안’으로는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를 강화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사진=연합뉴스] 

물론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더라도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할 거란 반론도 있다. 금융당국의 내부통제 개선 방안의 초점이 제재보다는 예방에 맞춰져 있어서다. 

특히 시장이 우려하는 건 금융당국이 “평소에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임원은 금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받을 수 있다”고 밝힌 부분이다.  ‘상당한 주의’라는 두루뭉술한 기준으로 금융회사 임원에게 면제부를 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놓은 셈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이 삼고 있는 상당한 주의의 기준은 매우 애매모호하다. 금융당국은 ‘상당한 주의’의 판단 기준 사례로 ▲법률의 입법 취지, ▲예상되는 법익침해의 정도,▲위반행위의 구체적인 모습과 그로 인한 피해 결과와 피해 정도, ▲법인의 영업 규모와 구체적인 지휘감독 관계, ▲위반행위 방지를 위해 기업이 실제로 행한 조치 등을 꼽았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CEO의 징계 근거인 ‘중대 금융사고’ 조항과 ‘제재 수위’를 개정안에서 제외한 탓에 약발은 더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이 CEO 면제부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면서 말을 이었다.

“CEO를 처벌할 수 있게 만들어야 연임을 위해서라도 내부통제를 강화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CEO 밑에 있는 부행장이나 비리 행위를 저지른 직원만 처벌을 받을 공산이 크다. 고질적인 꼬리자르기식 관행이 계속될 수 있다는 거다. 금융 사고를 막고,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선 CEO의 책임을 묻고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면제부의 기준이 되는 ‘상당한 주의’의 기준이라도 좀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금융사의 내부통제 강화를 기대할 수 있다.”

디테일 없이 두루뭉술하게 만든 법으로는 은행권의 도덕적 해이를 뿌리뽑지 못할 것이란 일침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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