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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팁 받으면 최저임금 깎아
팁 도입하면 긱 노동자 불리해
경영주, 연금 등 비용 절감 가능해

카카오모빌리티가 결제 화면에 팁을 추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카카오모빌리티가 결제 화면에 팁을 추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공개적으로 팁을 요구하는 식당‧카페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택시 호출 서비스 사용자가 기사에게 1000~2000원 팁을 주는 기능을 추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미국식 팁 문화를 도입할 수 있을까. 팁의 경제학을 알아봤다. 

■ 팁에 숨은 경제학=한국에서 미국과 같은 형태의 팁 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어렵다’. 미국의 팁은 사회의 암묵적인 법칙에서 출발했지만, 최저임금 체제가 이중으로 돼 있어서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 

미국 노동부는 공정노동법(FLSA)을 근거로 팁을 받는 직원을 보호한다. 이 법은 정기적으로 한달에 30달러 이상 팁을 받는 이들에 한해 연방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 팁을 받는 직원의 최저임금은 연방 최저임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시간당 2.13달러로 규정돼 있다. 연방 최저임금은 7.25달러,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6.78달러, 뉴욕시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5.00달러다. 


고용주는 직원이 임금과 팁을 합쳐 연방 최저임금 이상을 확보했는지를 보고할 의무가 있다. 연방 최저임금에서 팁 최저임금을 제외한 시간당 5.12달러 이상이 팁으로 확보했는지를 파악하는 건 고용주의 의무다. 팁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고용주는 그 차액을 보존해줘야 한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 [사진=뉴시스]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 [사진=뉴시스]

서구권의 팁 문화는 주인-대리인 문제를 해소하는 방법이다. 경제학에서 주인-대리인 문제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접 얽힌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때 발생한다. 주식회사의 주주와 전문경영인의 관계처럼 주인은 대리인의 역선택과 태만과 같은 도덕적 해이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미경제학회의 학술지 ‘저널 오브 이코노믹 퍼스펙티브’의 편집장인 경제학자 티모시 테일러는 2020년 한 학부생의 논문을 공유하며 “팁을 주는 관행은 로마 시대 이전으로 올라간다”며 “중세 봉건시대 후기에 영주가 감사나 동정의 뜻으로 자신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농노에게 추가로 돈을 주던 것이 팁 문화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미국‧영국 등 서구권에서 팁을 주는 이유 중 하나로 서비스 품질을 꼽는 것엔 이처럼 대리인 문제가 깔려 있다. 영국 컨설팅회사 WMT가 2019년 팁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전체의 73.0%가 음식의 품질, 기다리는 시간의 단축 등 직원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팁을 준다고 답했다. 

요식업의 경우 사장이 서버(Server‧웨이터‧웨이트리스)를 고용하고, 서버가 고객을 응대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품질이라는 측면에서 서버의 이익과 고객의 이익은 다를 수 있다. 고객은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에게 좋은 품질의 음식을 정직하게 제공해 달라는 일종의 성과급으로 팁을 제공한다. 

■ 팁은 고용주에게 좋을까=미국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팁을 둘러싼 인식이 나빠지고 있다. 식당과 서비스 기업들이 매장에서 실제 서비스를 받지 않았는데도 팁을 내도록 강요하고, 팁의 규모도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결제 화면에서 팁을 청구하지 않았던 스타벅스도 지난해부터 결제창에서 팁을 선택하도록 했다. 

미국의 소비자 금융회사 뱅크레이트의 지난 6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41.0%가 “기업들이 팁에 의존하지 말고 임금을 더 많이 지급해야 한다”고 답했다. 팁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한 이들은 응답자의 66.0%에 달했다. 미국 크레디트카드닷컴의 지난 5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고객들은 평균적으로 계산서 금액의 21.0%를 팁으로 지불했다. 

한국에서 팁 제도를 도입하면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볼까. 언뜻 월급 외에도 팁을 받을 수 있는 직원들 같지만, 미국식 팁 제도를 도입하면 실제론 고용주가 가장 큰 이득을 본다. 임금을 최저임금 이하나 최저임금으로 고정하고도 인력난에 말려들지 않는 방법으로 팁을 쓸 수 있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팁은 초단기 노동의 문제인 긱(gig) 경제와 맞닿아 있다. 긱 경제에서처럼 최저임금 제도를 변경해 팁을 받는 직원들이 늘어난다면, 이들은 연금‧사회보험‧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 이는 고용주에겐 모두 비용에 해당한다. 

미국에서조차 비판이 늘고 있는 팁 문화를 도입하려는 곳들이 카카오모빌리티 등 택시 호출앱이나 일부 요식업자인 건 이들이 긱 경제를 대표하는 곳들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에서는 부유한 지방정부들을 위주로 최저임금 이하를 적용받아야 하는 팁 제도를 폐지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워싱턴DC는 2018년 이른바 ‘팁 크레디트 제도’를 폐지했다. 이런 지자체들은 연방 공정노동법에 따라서 팁을 받는 직원들도 시간당 2.13달러가 아니라 연방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도록 했다. 

마이클 린 코넬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8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팁이 서비스 품질과 관련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생각처럼 강력하게 연관돼 있진 않다”고 주장했다. 린 교수는 2017년 논문에서 “팁은 서비스 개선 차원에서는 비효율적인 경제적 도구”라며 “팁이 직원에게 얼마나 많은 동기를 부여하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미시건 주의 한 레스토랑 직원이 지난 2019년 팁으로 2020달러를 받아 화제가 됐다. [사진=뉴시스]
미국 미시건 주의 한 레스토랑 직원이 지난 2019년 팁으로 2020달러를 받아 화제가 됐다. [사진=뉴시스]

호주는 팁을 허용하지 않고, 봉사료를 계산서에 포함한다. 호주의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23.23호주달러로 2만원이 넘는다. 호주 최대 노동조합인 AWU(Australian Workers Union)의 미샤 젤린스키 사무차장은 지난 2018년 호주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 기고문에서 “호주에서도 최근 팁 문화가 확산할 조짐이 보인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처럼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는 나라에서 팁은 경제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는 근로자는 나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쁜 소비자란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는 탓에 소비를 꺼리는 이들을 뜻한다. 팁이 아무리 많아도 소비로 이어지긴 힘들다는 얘기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불안한 미래를 위해 예방적 저축에 나서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초과저축이 발생해 문제가 되고 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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