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우림시장 겨울 그리고 여름➋
에너지 요금마저 고공행진
전기·가스요금 5차례씩 인상
분납제도 한시 적용한다지만…
사각지대의 영세상인들에겐
정부의 지원 손길 못 미쳐
폭염에 속 타들어가는 상인들

가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에어컨은 그림의 떡이다. 손님을 위해 켜고, 손님이 나가면 끈다. 영세상인들의 땀방울을 식혀주는 건 낡은 선풍기 한대뿐이다. 그러지 않고는 버틸 재간이 없는 에너지 고요금 시대를 지나고 있어서다. 폭염에 더 뜨겁게 메말라가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더스쿠프 視리즈 ‘우림시장 겨울 그리고 여름’ 두번째 편이다. 

영세상인들은 선풍기 한대에 의지해 폭염과 싸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영세상인들은 선풍기 한대에 의지해 폭염과 싸우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치솟는 식자재 가격에 하루하루 한숨이 늘어가는 영세상인들. 가뜩이나 무거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또 있다. 바로 에너지요금이다.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이 연일 밤낮 가리지 않고 공격하지만, 어쩔 도리 없이 당하고만 있다.

오징어·고구마 가격 상승에 튀김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던 김명숙씨는 몰려온 더위를 피하려야 피할 수 없다. 뜨겁게 달아오른 튀김기 앞에서 그는 선풍기 한대에 의지해 고구마를 튀기고 떡볶이를 만든다.

하지만 맹렬한 기세의 불볕더위를 선풍기만으로 당해내긴 어려워 보였다. 그건 손님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한손엔 검은 비닐봉투를, 다른 한손엔 양산을 든 노년의 손님은 “자식들이 더위에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용돈을 보내줬는데 더워서 입맛이 없다”며 가게로 들어왔다.

이곳 우림시장 안에서 국밥집을 하는 이재환(가명)씨는 폭염을 지나며 한참 눈치게임(?) 중이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 에어컨을 가동했다가 손님이 뜸할 땐 슬며시 에어컨을 끈다. 지난 14일, 이씨는 손님 오기만을 한참 기다렸다가 오후 3시 30분 에어컨을 껐다.

“점심장사를 하고 행여나 손님이 올까 계속 틀어놨는데 아무도 없네요. 그래서 두시간 전에 에어컨을 껐어요. 저녁 장사하려면 이따가 또 켜야죠.” 푹푹 찌는 날씨에 에어컨을 계속 켜둘 만도 한데, 이씨에게 그건 사치다. “국밥에 들어가는 고기를 서너 시간씩 푹푹 삶아야 하는데, 거기 들어가는 가스요금이 만만치 않아요. 그거 감당하려면 전기요금이라도 아껴야죠.”

시장 상인들이 에너지요금에 이토록 민감하게 구는 건,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이 끝없이 오르고 있어서다. 한국전력은 2022년 세 차례(4·7·10월), 2023년 두 차례(1·5월) 등 2년 동안 총 다섯 차례 전기요금을 구성하는 전력량요금, 연료비조정요금, 기후환경요금을 인상했다. 

한국가스공사도 2년간 민수용(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을 총 다섯차례 끌어올렸다. 자영업자들의 부담은 그만큼 커졌다. 윤미정(가명)씨가 운영하는 죽집에서 에어컨이 ‘그림의 떡’으로 전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씨는 몇년 전 가게 한쪽 벽에 벽걸이형 에어컨을 설치했지만, 켜지 않는 날이 더 많다. 대신 낡은 선풍기 두대가 거친 소음을 내며 ‘미지근한 바람’을 나르고 있었다.

“에어컨이 있어도 켤 엄두를 못 냅니다. 이 작은 가게에서 지금도 한달에 10만원씩 전기요금이 빠져나가요.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우리 같은 영세상인들에겐 큰돈이에요. 어디 그것뿐인가요. 죽 끓이느라 아침마다 가스도 쓰잖아요. 가뜩이나 비수기여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얼마나 버틸지 몰라요.” 새벽 6시 30분에 나와 저녁 8시 30분까지 장사를 하지만, 윤씨의 통장에서 늘어나는 건 어째 빚뿐이다.

정부는 이런 어려움을 해소해주기 위해 지난 7월 “예산 400억원을 투입해 소상공인의 냉방비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발표했다. 노후 냉·난방기를 교체해주고(300억원), 개방형 냉장고에 문을 설치하는 지원사업(100억원)을 벌이겠다는 게 골자다.

그중 냉·난방기 교체 사업은 2015년 12월 31일 이전에 제조된 노후 냉·난방기를 에너지효율 1등급 신품으로 교체하면 제품 금액의 40%(최대 160만원)를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17일부터 시행했는데 15일 만에 접수 건수가 4150건을 돌파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월엔 일부 주택용에만 가능했던 ‘분납제도’를 소상공인들에게도 적용해 한시적(6~9월)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에너지요금 폭탄을 피할 수 있게 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런 지원으로는 전기요금 감소를 체감할 수 없다”면서 한계상황에 몰린 소상공인을 에너지 취약계층에 포함하는 ‘에너지 지원 법제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전기요금체계를 개편해 ‘소상공인 전용요금제’를 신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연합회는 “지난해부터 올해 2분기까지 전기요금 인상률이 39.6%에 달한다”면서 “당장 ‘냉방비 폭탄’을 피할 수 있는 실질적인 요금 할인 정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영세상인들은 정부의 손길을 받질 못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사각지대에 놓인 영세상인들은 정부의 손길을 받질 못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문제는 이 역시 쉽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데 있다. 몇몇 의원이 “소상공인에게 전기·도시가스 요금을 지원하거나 에너지이용권을 발급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여야의 볼썽사나운 정쟁 속에 국회는 식물국회로 전락했고, 안건은 소관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한 상인은 이날 이런 말을 남겼다. “아직도 LP(액화석유가스·Liquefied Petroleum Gas)통을 놓고 장사하는 영세상인들이 수두룩해요. 전통시장 주요 화재 원인이기도 한데, 불나면 보험 가입해 놓으라는 말만 하지 환경 바꿀 생각은 안 해요. 우리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영세상인들은 사각지대에서 아무런 도움의 손길도 받질 못해요. 선거 때나 되면 와서 얼굴 슬쩍 비치고 사진이나 찍어갈 줄만 알지, 애타는 우리 속을 알기나 하겠어요?”

폭염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는 2023년 8월의 여름, 영세상인들의 속도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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