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끓는 지구 시대 목숨 건 노동
온열질환 예방조치의 한계
폭염 보호법 발의 이어졌지만
6건 모두 상임위원회 계류 중
20대 국회서 8건 임기만료 폐기

“여름철 온열질환, 물, 그늘, 휴식만 지키면 된다.” 고용노동부가 여름철만 되면 강조하는 슬로건이다. 실제로 물, 그늘, 휴식은 여름철 실내외 모든 사업장이 지켜야 하는 의무사항이자, 가장 좋은 온열질환 예방책이다. 그런데도 매년 폭염 속 노동자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허술한 정부의 관리·감독과 법안만 쏟아낸 채 처리할 의지는 없는 국회의 ‘나쁜 컬래버’다. 

금배지들은 여름마다 폭염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법안을 쏟아냈다.[사진=연합뉴스]
금배지들은 여름마다 폭염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법안을 쏟아냈다.[사진=연합뉴스]

“지구 온난화 시대가 지나가고 ‘끓는 지구(global boiling)’ 시대가 시작됐다.” 지난 7월 27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UN) 사무총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경고성 말이 아니다. 근거가 있다.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가 올해 7월 중순까지 전세계 평균기온을 측정한 결과, 역대 최고치(1940년 이후)를 갈아치웠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폭염대비책이 필요한 이유인데, 대책이 절실한 곳은 노동현장이다. 폭염이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실제적 위협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여서다. 

■ 관점➊ 실태 = 실제로 온열질환 산업재해 피해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0년 18명이던 온열질환 산재 피해자 수는 지난해 24명으로 늘었다.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도 4명(2022년 기준)이나 됐다. 온열질환이 열사병·열탈진·열실신 등만을 포함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폭염에서 비롯한 피해·사망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 19일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하남점)’에서 폭염 속에 쇼핑카트를 정리하던 20대 노동자 A씨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하남시의 낮 최고기온은 35도에 달했는데 A씨는 폭염에 자동차 열기까지 더해진 주차장을 오가며 쇼핑카트를 관리했다. A씨의 사인은 ‘폐색전증 및 온열에 의한 과도한 탈수’였다. 

그로부터 9일 뒤인 28일엔 서울교통공사 하청업체 소속 40대 노동자 B씨가 열차 내 에어컨을 청소하던 중 사망했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30도로, 운행을 마치고 멈춰 있던 열차는 햇빛을 받아 매우 뜨거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가 생전 동료에게 “너무 더워서 미치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다. 

■ 관점➋ 허점 = 그럼 언제까지 목숨을 건 폭염 속 노동을 이어가야 할까. 폭염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방법은 없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보호책은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8월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을 개정해 건설현장 등 실외작업장에만 적용했던 온열질환 예방조치를 물류센터·유통업체 등 실내작업장으로 확대했다. 

그 배경엔 2021년 6월 발생한 쿠팡 이천 물류센터 화재사고가 있었다. 당시 화재의 최초 발화지점은 물류창고 지하 2층에 있던 선풍기 연결용 멀티탭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물류창고 직원들이 에어컨 하나 없는 꽉 막힌 물류창고에서 선풍기에 의지해 일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고를 계기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온열질환 예방조치가 실내작업장으로 확대됐다. 실내든 실외든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시원하고 깨끗한 물’ ‘휴식공간(그늘·바람)’ ‘휴식시간’ 등 세가지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거다. 

특히 폭염특보 발령 시엔 1시간마다 10~15분씩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참고: 기상청은 일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예상될 때 ‘폭염주의보’를, 일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예상될 때 ‘폭염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법적 제도 안엔 처벌 규정도 있다.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5000만원 이하의 벌금’, ▲휴게시설 미설치 시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설치기준 미준수 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휴식시간 제공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전문가들은 온열질환 예방조치만 잘 지켜져도 노동자가 폭염 때문에 목숨을 잃을 일은 없다고 강조한다.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물, 휴식공간 휴식시간 등 세가지 수칙이 온열질환을 막는 가장 좋은 예방책이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서 “위반 사업장에 행정조치를 내리는 사례가 적다는 것도 따져봐야 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6월 목숨을 잃은 코스트코 노동자의 경우, 3시간에 단 15분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휴게시설이 설치돼 있었지만 그마저도 너무 멀어 뜨거운 주차장에서 휴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기후로 폭염이 잦아지면서 온열질환 예방조치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상기후로 폭염이 잦아지면서 온열질환 예방조치를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처럼 현장에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건 정부의 관리·감독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방증이다. 류현철 이사장은 “고용노동부 관리·감독관뿐만 아니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도 현장을 관리·감독할 수 있다”면서 “관리·감독 인원이 부족한 게 아니라 효율적으로 집행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법적·제도적 한계도 있다. ‘냉방장치(에어컨)’ 설치 등 좀 더 적극적인 조치는 강제규정이 아닌 권고사항이란 점이다. 실내 온도가 실외 온도보다 높거나, 실내외 온도가 차이가 나지 않는 작업장에는 ‘냉방장치’를 설치하고, 아이스조끼, 쿨토시 등 ‘보랭장구’를 지급하도록 돼 있지만 법적 의무가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는 대부분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다. 지난 2020년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엔 ‘열사병’이 포함돼 있다. 1년 내 3명 이상의 열사병 환자가 발생하거나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받는다. 하지만 전형적인 사후약방문이란 지적이 많다.

■ 관점➌ 보완 = 이처럼 폭염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지지만, 21대 국회에 발의된 폭염 대책 관련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6건)은 모두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가장 중요한 ‘폭염 시 작업중지’를 의무화하는 법안의 사례를 보자.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제51조)상 기상상태 불안정으로 인한 작업중지 권한은 사업주에게 있다. 고용노동부는 폭염 시 사업주가 작업중지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손해를 감수하며 작업중지를 하는 사업주는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2020년 7월 발의)과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2021년 7월)은 ▲폭염 발생 시 지자체장이 사업주에게 작업중지 명령, ▲작업중지에 따른 임금 감소분을 정부가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는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만이 아니다. 20대 국회에서도 비슷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8건이나 발의됐지만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아이러니한 건 이들 법안이 모두 여름철을 전후해 발의됐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의 곡소리가 터져 나오면 금배지들이 반짝 관심을 갖지만 그때뿐이라는 거다. 

최근에도 노동자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금배지들이 나서고 있다. 야당은 “8월 중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폭염 시 작업중지를 의무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지금까지 왜 ‘강 건너 불구경’만 했는지는 자성하지 않았다.

수많은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낸 국회. 숙고 없는 법 개정도, 여름만 지나면 잊어버리는 망각도 문제다. 폭염이 끝나고 다시 찾아오는 내년 여름 노동환경은 올해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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