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실업급여 제도 개선한다더니…
현황 파악 못하고 논란만 확대
0.01% 미만 부정수급에 매몰
취약층 실업급여 삭감 방안 제시
산술적 공정 탓에 약자 보호 외면

지난 7월 국민의힘과 정부가 실업급여를 ‘시럽급여’에 빗대 논란을 일으켰다. 당정이 실업급여를 곡해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지만, 그로부터 한달 만인 22일 고용노동부가 ‘급여기초임금일액 산정규정’ 개선안을 내놨다. 실업급여의 허점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지만, 취약계층의 생계를 위협할 거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정부의 실업급여 제도 개편이 취약계층을 더욱 힘들게 할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실업급여 제도 개편이 취약계층을 더욱 힘들게 할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의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난 7월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주관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의장이 했던 말이다. 

공청회에 참석했던 조현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는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을 간다”면서 “(실업급여로)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했다. 비자발적인 이유로 실직한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재취업을 돕기 위한 실업급여가 본래 취지와 달리 용돈처럼 쓰이고 있어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었다. 

국민의힘 주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실업급여 최저액(184만7040원)이 최저임금 세후 월소득(179만9800원)보다 높아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실업급여를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실직 전에 180일(약 6개월)만 일하면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주어진다는 점도 실업급여 수급자를 늘리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고용보험기금 재정건전성 악화도 거론했다. 지난해 말 기준 고용보험기금 적립금은 6조4000억원이지만,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려온 예수금(10조3000억원)을 제외하면 실제 적립금은 -3조9000억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급여 부정수급도 적지 않다는 게 국민의힘의 판단이다. 2022년 기준 실업급여 부정수급 건수는 2만3907건이었는데, 부정수급액이 269억원에 달한다는 거다.

이를테면 여당과 정부는 고용보험기금 상황이 좋지 않은데, 실업급여가 실직자들의 용돈처럼 쓰이고 있으니 이 상황을 손봐야겠다고 주장한 셈이다. 이를 토대로 당정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하향 혹은 폐지하거나 반복수급ㆍ부정수급 예방을 위한 특별점검 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반발 여론이 들끓었다. 애초 단초를 제공한 전제가 사실과 다르거나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실업급여로 해외여행을 가는지, 명품을 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럽급여’ 논란 이후 한달여가 흐른 현재 정부는 단시간 저임금 노동자의 실업급여를 줄이는 방안을 내놨다.[사진=뉴시스]
‘시럽급여’ 논란 이후 한달여가 흐른 현재 정부는 단시간 저임금 노동자의 실업급여를 줄이는 방안을 내놨다.[사진=뉴시스]

더구나 실업급여 재원의 절반은 노동자가 부담하고, 비자발적 실직이 성립하면 응당 받는 것이기 때문에 쓰임새를 알 필요도 없다. 실업급여를 반복적으로 받는 실직자가 취직보다 실업급여에 연연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실업급여 최저액이 최저임금 세후 월소득보다 많다는 주장도 논란이 있다. 계산을 제대로 하려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중에는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점(면세),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은 실직 후에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실업급여 하한액에 이를 포함해야 한다는 점을 함께 따져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실직 전에 180일만 일해도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주어진다는 주장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 있다. 1년간 일해야 수급 자격이 주어지는 외국과의 비교를 통해 나온 건데, 그런 나라들은 실업급여 수준이 더 높게 책정돼 있거나 수급 기간도 한국보다 훨씬 길어서다. 여당과 정부가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한 내용만 끌어다 썼다는 얘기다. 

고용보험기금 재정건전성이 나쁘다는 전제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기금 적립금 중 상당액이 국내 채권에 투자돼 있어 사실상 정부가 기금 적립금을 끌어다 쓴 거나 다름없어서다.

실업급여 부정수급 문제도 마찬가지다. 2022년 기준 전체 실업급여 지급 건수는 795만3273건이고, 총 지급액은 11조3909억원이다. 이렇게 볼 때 부정수급 건수는 전체의 0.003%, 부정수급 액수는 0.002%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정수급이 괜찮다는 게 아니라 부정수급 논란으로 실업급여 제도를 뒤흔들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반론들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하향하거나 폐지하는 게 오히려 취업과 실직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거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같은 반론과 지적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듯하다. ‘시럽급여’ 논란이 불거진 지 한달여가 흐른 8월 22일 고용노동부가 ‘급여기초임금일액 산정규정’ 개정안을 고용보험위원회 운영전문위원회에 상정해 논의한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현행 규정은 ‘1일 소정근로시간이 3시간 이하라면 이를 4시간으로 간주’한다. 예컨대 주5일 하루 2시간씩 최저시급을 받으면 월급으로는 41만7989원을 받지만, 실업급여는 하루 4시간 일한 것으로 간주해 92만3520원을 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급여기초임금일액 산정규정’ 개정안을 상정한 건 이 규정을 삭제하겠다는 건데, 이 방안이 시행되면 1일 노동시간이 2시간인 노동자의 실업급여는 46만1760원, 3시간인 노동자의 실업급여는 23만880원이 삭감된다. 

얼핏 합리적인 개정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김성희 고려대(노동대학원) 교수는 “외국의 사례에서 보면 소정근로시간을 정해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용자(고용주)가 너무 짧은 시간만 노동자를 고용해서 저임금 단시간 노동자가 발생하지 않게끔 하기 위한 조치”라면서 “우리나라의 경우엔 그렇게 노동시장을 규율하기 힘드니까 실업급여 제도 안에서만이라도 소정근로시간을 정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저임금노동자를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준 것이란 얘기다. 

김 교수는 “만약 소정근로시간 때문에 실업급여가 역전되는 게 문제라면 노동시장에서 최소근로시간을 적절히 규율하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김 교수는 “‘급여기초임금일액 산정규정’ 개정은 저임금노동자의 보호장치를 줄이는 건데, 이는 공정한 조치가 아니다”라면서 “약자 보호는 산술적 합리성만을 따지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현황 분석조차 허술한 정부와 여당이 곱씹어볼 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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