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박상인의 심사숙고 1편
정경유착의 역사 써 온 한경협
논란 때마다 사과와 쇄신 약속
이번엔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싱크탱크라면서 수장은 기업가
끊어내지 못한 정권과의 유착
신뢰 회복보다 세 확장에 열중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재계에서의 영향력을 잃었던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ㆍ옛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부활의 초석을 놓고 있다. 산하기구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통합하고 싱크탱크 역할을 강조하면서다.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사태 이후 탈퇴했던 4대 재벌그룹도 재가입을 결정했다. 한경협은 이번에야말로 쇄신하겠다고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럴진 알 수 없다. 더스쿠프의 새 연재 ‘박상인의 심사숙고’ 1편이다.

한경협이 민간싱크탱크 역할을 강조하면서 쇄신을 약속했지만 과연 약속이 지켜질지는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한경협이 민간싱크탱크 역할을 강조하면서 쇄신을 약속했지만 과연 약속이 지켜질지는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ㆍ옛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되살아나고 있다. 8월 22일 산하 기구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흡수 통합하면서 기관 명칭을 전경련에서 한경협으로 바꿨다. 연구 기능에 집중해 싱크탱크로 거듭나겠다는 거다. 지난 18일 주무관청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기관명 변경을 승인했다. 

앞서 4대 그룹은 한경협에 사실상 복귀하는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이런 한경협의 부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왜일까. 우선 한경협의 해체 위기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략히 복기해보자.[※참고: 독자 편의를 위해 과거 사건에도 현 명칭인 ‘한경협’을 사용했다.]

한경협은 2016년 박근혜ㆍ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정경유착의 온상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를 이유로 국회 청문회에서 4대 그룹 총수들이 한경협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현 집권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던 김병준씨가 한경협 회장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4대 그룹의 한경협 재가입을 촉구했다. 그는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직접적으로 한경협 재가입을 권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럼 한경협이 4대 그룹의 재가입을 요청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뭘까. 앞서 언급했듯 정책 싱크탱크의 필요성이다. 격변하는 경제 질서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들은 정부뿐만 아니라 대외 파트너(각종 경제단체)와 협력하고, 대화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한데 한경협이 그 역할을 맡겠다는 거다. 

하지만 명분이 타당하지 않다. 첫째, 한국의 재계를 대표하는 공식 조직은 대한상공회의소다. 대한상의는 상공회의소법에 따라 설립ㆍ운영하는 법정 민간경제단체다. 모든 업종(1차 산업 제외)의 대ㆍ중소기업들이 회원인 종합경제단체이기도 하다. 총 73개의 지역단체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나 대한상의와 비슷한 조직들이 있다. 

둘째, 재벌그룹 계열사들이 주요 회원사인 한경협과 유사한 조직이 있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일본밖에 없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는 한경협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경제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 한경협이 자신들이 내세운 포부처럼 정책 싱크탱크로 거듭나려면 회장 정도는 관련 전문지식을 갖고 연구소를 운영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데 한경협 측은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임명했다. 과연 싱크탱크 역할에 조직의 초점을 맞출지 의문이다. 넷째, 정치권과 연관성이 짙은 김병준 대행이 여전히 고문으로 한경협 활동을 유지하고 있는 건 난센스다. 이 때문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다시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싱크탱크에 정치권 인사는 불필요하다. 

다섯째, 이미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연구기관이 활동 중이다. 수많은 국책 연구기관이 싱크탱크로 정부를 보좌하고 있는데,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대표적이다. 각 재벌그룹도 나름대로 ‘경제연구소’라는 싱크탱크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상의 역시 2018년 ‘대한상의 SGI(지속성장 이니셔티브I)’란 연구기관을 설립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산하 연구기관을 통합해 덩치를 키운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실증적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런 문제를 갖고 있는 한경협은 지금껏 ‘쇄신’하지 못했다.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경협 회장단은 음성적 정치자금을 내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한경협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업윤리헌장도 발표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인 1997년엔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대선자금을 국세청을 동원해서 모금한 ‘세풍 사건’에, 2002년엔 한나라당 대선자금을 차떼기로 제공한 ‘차떼기 사건’에 연루됐다. 당시 손길승 회장은 사임하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2011년에는 한경협이 기업별로 로비해야 할 정치인을 리스트업(사실상 할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이유로 들어 2013년 허창수 당시 한경협 회장(현 GS건설 회장)은 “민간싱크탱크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3년 만인 2016년 미르ㆍK스포츠재단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후에도 한경협은 정경유착의 우려를 없애기 위해 윤리위원회를 만들고, 윤리경영헌장도 제정한다면서 쇄신안을 내놨다. 

그런데 눈에 띌 만한 쇄신안이 나온 적은 없다.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조차 “한경협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면서 쇄신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한경협의 최근 행보는 이런 의구심을 더 키우고 있다. 한경협은 최근 IT공룡 네이버ㆍ카카오, 그룹 BTS가 소속된 엔터테인먼트기업 하이브, 물류플랫폼 쿠팡, 배달플랫폼 우아한형제들ㆍ요기요 등에 ‘회원사가 돼달라’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신뢰를 먼저 구축하기보다는 세력부터 확장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경협이 하겠다는 쇄신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
sanpark@snu.ac.kr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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