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불황형 성장 중인 한국경제 우려
실질GDP서 소비ㆍ투자 다 줄어
정부가 소비ㆍ투자 확 줄인 탓
감세에 따른 세수 부족이 원인
尹정부, 역할 제대로 하고 있나

내년 경기는 올해보다 나을까. 정부는 꾸준히 ‘상저하고上低下高’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경기 침체가 하반기에 극적으로 반전하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대다수다. 이럴 땐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게 수순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소비와 투자를 민간보다도 더 줄였다. 세수가 부족하다는 게 이유인데, 문제는 정부가 지출을 줄이는 방법도 적절치 않다는 점이다. 

민간의 소비와 투자가 줄면 정부가 소비와 투자를 늘려 경기를 조절하는 게 일반적이다.[사진=뉴시스]
민간의 소비와 투자가 줄면 정부가 소비와 투자를 늘려 경기를 조절하는 게 일반적이다.[사진=뉴시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엔 하락 하반기엔 상승)’ 전망과는 달리 올해를 두달가량 남겨둔 현시점에서도 경기는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지난해보다 경기가 나빠지는 정도가 둔화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경기가 계속 우상향하고 있다”며 상저하고의 유효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향후 경기를 낙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1분기보다 0.6% 성장했다. 좋은 시그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GDP에 영향을 미치는 소비, 투자, 수출이 모두 1분기보다 감소했기 때문이다(계절조정ㆍ실질GDP 기준). 소비는 0.7%, 투자는 0.1%, 수출은 0.9% 줄었는데,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처음 발생한 일이다. 

소비와 투자가 모두 줄었는데도 전체 GDP가 성장한 건 순수출(수출-수입)이 늘어난 덕분이었다. 실질GDP는 소비, 투자, 순수출의 합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수출 증가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면서 순수출이 증가했고(불황형 흑자), 결국 이 부분이 소비와 투자의 감소분을 상쇄했다는 얘기다. 향후 경기를 낙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소비와 투자가 줄어든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다. 답은 정부에서 찾을 수 있다. 소비와 투자는 각각 민간부문과 정부부문으로 나뉜다. 2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0.1%, 정부소비는 같은 기간 2.1% 줄었다. 민간소비 감소폭보다 정부소비 감소폭이 훨씬 컸다는 얘기다.

전분기보다 정부소비가 줄어든 건 코로나19 시기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던 시기를 빼곤 전무하다. 투자에선 민간투자가 같은 기간 0.1% 늘었는데, 정부투자는 되레 1.3% 감소했다. 민간투자 증가분을 정부투자 감소분이 까먹은 셈이다. 종합하면 정부소비와 정부투자 감소가 지금의 경기 위축에 영향을 줬다는 결론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다양한 시그널을 통해 정상적인 정부 지출을 제한하려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윤석열 정부는 다양한 시그널을 통해 정상적인 정부 지출을 제한하려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역대 정부는 그동안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민간소비나 민간투자가 감소할 때 정부소비와 정부투자를 늘려 경기를 조절해 왔다. 경기가 크게 출렁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일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소비, 투자, 수출이 모두 감소하자 정부는 소비와 투자를 늘려 민간소비와 민간투자 감소를 방어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같은 조절책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 세수 부족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민간 주도의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작은 정부’를 표방했다. 특히 재정건전성을 외치며 긴축재정까지 시사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인세 등을 인하해 세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니 정부 지출(소비와 투자)을 줄일 수밖에 없는 게 현재의 상황인 셈이다. 시장만능주의가 ‘시장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원론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지금처럼 보호무역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윤석열 정부의 방향성이 합당한지는 의문이다. 

중요한 건 정부가 지출을 줄이는 방법도 타당하지 않다는 점이다. 만약 세수가 줄어 정부가 지출을 감축하고자 한다면 감액 추가경정예산을 국회에 제출해 공식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의적으로 지출을 줄이는 건 국회의 예산심의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정부의 살림은 가계 살림과 다르다. 가계는 수입이 늘면 지출을 늘릴 수 있고, 수입이 줄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정부 살림은 반대다.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서 세수입이 줄면 오히려 지출을 늘려야 한다. 정부마저 지출을 줄이면 경기가 악순환(소득 감소→지출 감소→생산 감소→소득 감소)에 빠질 수 있어서다.

반대로 경기가 끓어올라 세수입이 늘면 정부는 지출을 줄여야 한다. 정부의 재정운영 원칙은 경기와 역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9월 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부와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은 “강제로 불용을 종용하지는 않겠다”면서도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불용을 활용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발언들은 일선 공무원의 정상적인 예산 집행 노력을 막고 정부가 지출을 줄이는 시그널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이상한 재정운영 사례는 또 있다. 최근 정부는 세수 부족에 따라 지방정부에 교부하는 교부세도 감액하겠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정상적인 감액 절차가 아니다.

올해 세수 부족에 따른 지방교부세 감액은 올해가 아니라 2024년 결산 이후, 2025년에 반영해야 법과 원칙에 부합한다. 올해 예산이 이미 편성돼 있는데, 세수가 부족하다고 해서 정부가 약속한 교부세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지방정부는 정상적인 재정 집행을 할 수 없다. 

2025년이 아닌 올해 교부세 감액을 반영하려면 정부는 교부세 감액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런 절차 없이 올해 교부세를 곧바로 감액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

일선 공무원들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에 교부세를 감액한다는 공문을 발송하지 않고, 전화나 비공식적인 방식을 통해 감액을 통보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세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출을 줄이라고 종용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법과 원칙을 흔드는 건 문제다. 세수 부족은 정부의 소비와 투자 감소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바람에 역대 정부가 해왔던 경기조절의 역할마저 못하고 있다. 이게 합당한 건지 정부 스스로 고민해야 할 때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rsmtax@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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