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대학 입시에서 좌절한 젊은이, 학교를 졸업하고도 직장을 찾지 못한 구직자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요즘 젊은이들의 좌절에는 ‘못난’ 어른 책임이 크다.좌절의 핵심은 ‘취업’이다. 청년(15~29세) 체감실업률 24.4%(2019년 2월·통계청 조사)라는 수치는 한 가정에 청년 2명이 있다고 가정하면 한집 건너 한명씩 청년실업자가 있다는 얘기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 그대로 젊은 그들에겐 봄은 봄이 아니다. 신록이 원망스럽고, 일찍 얼굴을 함초롬히 내민 꽃망울이 자신을 비웃는 듯
미국과 북한과의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나고 기업인 A씨에게 들은 얘기다. 맨주먹으로 창업해 한해 1조원 이상의 제품을 미국에 수출할 정도로 성장했던 A씨는 하노이 협상에서 보여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태도는 돌발적인 변심이 아니라 미국 특유의 협상술이라고 단언했다.미국은 협상이 80~90% 무르익을 때까지는 상대방을 최대한 배려하는 맘씨 좋은 키다리 아저씨 같은 태도를 보이다가 마지막 단계에서 돌연 강성으로 돌아선다. 시간에 쫓기는 상대방은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협상장을 떠나느냐의 선택에 몰린 나머지 대부분
불과 30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베트남 국민들은 얼굴 표정까지 달라졌다. 미국과 북한 2차 정상회담이 열린 베트남 하노이의 활기차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고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을 절감했다.베트남전이 끝나고 미국과 수교(1995년)를 맺기 5년 전 1990년 하노이의 모습은 흡사 한국전쟁 직후 한국을 연상케 했다. 당 청사처럼 천장만 유난히 높은 호텔에 묵었는데, 바닥은 냉난방조차 되지 않는 초등학교 교실 같은 마루였고, 화장실엔 화장지 대신에 갱지가 놓여있었다. 식사는 달걀 프라이에 쌀국수가 고작이었다.사람들 표정은 어둡고 거리는 온
인간은 자신의 악행을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미화하는 ‘매우 편리한’ 두뇌구조를 가졌다. ‘자기기만’이라는 자체 정화 작용을 통해 아예 그런 잘못이 없었다고 기억을 조작하고, 심지어는 범죄라 하더라도 훌륭한 행동이었다고 믿어버리기까지 한다.2017년 개봉된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 al)’는 우리가 모두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역사적 실체라도 증명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설사 진실이 표면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웅변한다. 요즘 한국사회를 흔들고 있는 5·18 비난발언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나는 부정한
안희정, 김경수, 이재명. 요즘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바람 앞 촛불 같은 운명의 3인이다. 수행비서 성폭행과 대선 댓글 조작사건으로 각각 법정구속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 그리고 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 재판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광역지방자치단체장으로 여권에서 유력 차기대권주자로 꼽혔던 스타였고 지금도 열성지지자들이 많다.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나이가 50대라는 점이다. 자신이 성추행한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보복을 한 혐의로 법정구속된 안태근 전 법무
‘표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족집게 축구해설가 이영표 전 국가대표 선수는 요즘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출연금지’라는 징계조치를 내린 이유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는 지난해 6월 러시아 월드컵 중계방송을 하던 중 장현수 선수가 태클을 하고 페널티킥을 준 장면은 해설자로서 언급을 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홍철 선수에게 한 말(소속팀 돌아가서 크로스 연습을 더 해야 합니다)은 지금 생각해도 큰 실수였다고 자책한다. 그는 무심코 쏟아낸 비수처럼 ‘모진’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려 자신은 해설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김대중 정부 시절 ‘윤태식 게이트’로 알려진 정·관계 로비사건으로 나라가 뒤숭숭했다. 1987년 홍콩에서 윤태식이 부인 수지 김을 살해했는데, 안기부와 짜고 자신은 ‘밀입국 미수사건’의 피해자라고 조작했다.그는 한국에 돌아와 1998년 9월 지문인식 기술을 개발하는 패스21이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벤처열풍에 힘입어 고속 성장했지만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그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이 줄줄이 재판정에 섰다.당시 검찰은 패스21 주주 308명을 대부분 불러 조사했다. 패스21 주식을 보유한 언론인들
박근혜 정권 말기 촛불시위와 탄핵으로 대통령 업무가 중단됐을 때 국내외에서 위기설이 비등했다. 특히 경제가 망가질까 노심초사했다. 기우였다. 박근혜 정부는 세계 평균치에는 못 미치지만 2.9%의 경제성장률(세계 평균 대비 -0.1%)을 기록했다. 박근혜 정부는 정치적으로는 파산선고를 받았지만 후임 정권에는 꽤 괜찮은 금고를 넘겨준 셈이다.공교롭게도 일자리정부와 공정경제를 내세우는 문재인 정권도 집권 3년차에 들면서 경제위기론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2.66%로 추정된다. G20 국가 중 미국 2.9%, 호주 3
쿠알라룸푸르는 교통체증과 택시요금 바가지로 유명한 도시였다. 특히 외국인에게는 미터기를 적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몇배씩 승차요금을 내게 만드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지난 연말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필자는 놀라운 교통혁명을 목격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차량공유플랫폼을 처음 선보인 ‘그랩(Grap)’은 시민들을 교통지옥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스마트폰에 깔린 앱으로 호출하면 기사 얼굴과 차량번호가 뜬다. 승낙을 하면 대부분 5분 내에 정확히 도착한다. 새벽 3시에도 호출해도, 외진 관광지에서 불러도
정치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미국 언론인 마이클 킨슬리는 42세 때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남들보다 일찍 노화를 겪으며 깨달은 사실을 바탕으로 멋진 인생을 살기 위한 조언을 정리해 「처음 늙어보는 사람들에게」라는 책을 썼다.그는 이 책에서 노년의 경쟁이 더 드라마틱하다고 주장한다. 71세의 노인이 지팡이에 의지해 비틀거리거나 요양원 침대에 누워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는 것처럼 그 나이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거나 CEO(최고경영자)로 일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니 지금 잘나간다고 뻐길 것도 없고 자랑할 일도
2018년이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험난한 세파를 헤치느라 탈진증후군(번아웃 신드롬)에 걸린 듯 몸과 마음이 지칠 때다. 12월말 세모歲暮의 공허함을 달래줄 과일향 물씬 나는 영화 한 편과 어릴 적 할머니 무르팍에서 옛날 얘기를 듣는 듯 추억에 빠지게 하는 따뜻한 책 한권을 소개한다.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인생후르츠(Life is fruityㆍ후시하라 겐시 감독)’는 후반 인생을 고민하는 이에게 멋진 대안을 제시한다. 2014년 촬영 당시 90세였던 츠바타 슈이치 할아버지와 87세 츠바타 히데코 할머니의 일상을 2년간 담아냈
그곳은 차라리 무덤덤했다. 포화가 소나기처럼 퍼부어지고, 뼈와 살이 흩어지던 아비규환의 현장은 역설적으로 처연하게 아름답기까지 했다. 영하 10도가 넘는 차가운 북풍이 비수처럼 날아들던 2018년 12월의 어느날, 필자는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의 화살머리고지 일대의 남북도로가 연결되는 지점에 우두커니 서있었다.비무장지대 내 남한의 북쪽 끝과 북한의 남쪽 끝이 연결되는 지점은 도로의 색깔만 조금 다를 뿐 남과 북은 하나였다. 길이 이어진 3㎞는 65년 전 피비린내 나는 상흔을 지우려는 듯 북쪽의 도로는 흙으로 덮였고, 남쪽의 도로에는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춘풍추상春風秋霜’을 언급하며 비서관실에 액자를 선물했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되, 자신에 대해서는 가을서리처럼 차갑고 엄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액자는 청와대 비서동인 여민관에 걸려있다.현 정부는 출범 후 줄곧 과거 정권의 적폐ㆍ부정부패청산에 주력해왔다. 전직 대통령 두명을 감옥에 보내고 대법원 수장까지 칼끝을 겨누고 있다. 중국의 문화혁명이 떠오를 정도로 대변혁기라고 할 만하다. 이런 작업이 성공을 거두려면 스스로에게 얼음장처럼 엄격해야 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신과 측근에게 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곤두박질쳤던 당시를 정면으로 비춘다. 경제기자로서 현장을 지켰던 필자는 외환위기가 터진 다음에 위기를 예언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모두 허풍쟁이라고 단언한다. 누구도 한국이 구제금융을 지원받을 정도라는 사실을 예단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또 하나. 외환위기의 터널을 그렇게 빨리 돌파할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영화는 미국 정부와 IMF와 한국 정부, 재벌과 서민, 지도층과 국민들을 지나치게 대결구도
■정년은 사전장례식 = 누구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정년停年을 맞는다.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정든 일터에서 떠나야 한다. 그게 고용된 자의 운명이다. 하지만 아무데도 소속돼 있지 않다는 게 얼마나 허전한지를 현역 때는 실감하지 못한다. 조직에서 내던져진 자신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낙담하기 쉽다.직장인은 인생에서 3번의 정년을 맞는다. 제1의 정년은 타인이 정년을 결정하는 ‘고용정년’이고, 제2의 정년은 자신이 정하는 ‘일의 정년’이며, 제3의 정년은 하늘의 뜻에 따라 세상을 하직하는 ‘인생정년’이
2007년 노무현 정권 말기 때 일이다.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 노동 시민단체들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당시)에게 “최악의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여한다. 시상식은 열리지 않았지만 유 장관이 주도한 국민연금 개혁에 낙인을 찍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유시민의 연금개혁은 세월이 갈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보건복지부 공무원들로부터는 역대 최고의 장관으로 꼽힌다. 그의 연금개혁으로 세 집단이 이익을 봤고, 한 집단만이 손해를 봤다. 첫째, 미래세대가 이익을 봤다. 둘째, 노동자조차도 되지 못하는 가난한 노인들이 수혜자가 됐다. 셋째,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세상을 떠난 날 인터넷에 뜬 댓글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그를 기리는 추모의 글에 똬리를 틀고 있는 비난조의 댓글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물이 많아도 고인이 되면 접어주는데 의외다 싶었다.그는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아내 엄앵란과 10여년을 함께 살았지만 사실상 따로 살았다. 졸혼卒婚(호적상 부부관계는 유지하되 사실상 따로 생활하는 것) 상태였던 그는 2011년 발간한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로 세상의 공분을 샀다. 서른세살 때 아나운서 출신 미국 유학생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요즘 항공업계가 무척 부산하다. 오랫동안 꽁꽁 닫혀있던 항공운송시장에 국토교통부의 신규면허 발급 방침이 발표되면서 새 항공사가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플라이강원ㆍ에어로케이ㆍ프레미아항공ㆍ에어필립 등 4~5곳이 줄이어 도전장을 내밀었다.정부가 폐쇄적 항공시장을 개방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 건 늦었지만 옳은 방향이다. 지난 10여년 국내시장 성장의 과실을 외국항공사에 빼앗기면서도 오너 갑질파문, 칼피아 유착 의혹 등 불미스러운 사태나 빚는 후진적 항공산업 체질을 개선할 근본 해법은 시장개방과 경쟁촉진뿐이다.
재산을 자식에게 미리 물려주는 게 좋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할까. 많은 독자들은 물려줄 게 별로 없다며 다소 시큰둥하게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재산은 많고 적음의 차이일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간 남겨놓고 세상을 하직한다. 집 한채 있는 사람도 그렇고 은행에 장례식 비용 정도의 통장잔고라도 있다면 상속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재산이 있어야 자식과 교류가 활발한 나라다. 그만큼 돈의 가치가 소중히 취급된다. 그렇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 않은 돈을 미끼로 자식으로 하여금 찾아오게 만
20여년 전 미국 하와이 출장길에 본 광경이 아직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태평양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에 개 무덤이 즐비했습니다. 십자가와 함께 세워진 묘비에는 세상 떠난 가족(반려견)에 대한 그리움과 비통함이 넘쳐났습니다. 지금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당시로는 의아함을 넘어 문화충격이었지요. 필자가 어렸을 때 개는 식용食用이었고, 방범견에 불과한 천덕꾸러기였으니까요.딸아이가 처음 하얀털을 가진 수컷 말티즈를 데려왔을 땐 데면데면했습니다. 꼬리치고 입 맞추려고 달려드는 강아지가 성가시고 귀찮았습니다. 그러나 술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