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실감할 때가 많다. 회사 생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면접· 회의·프레젠테이션 등 이미지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서의 ‘말하기’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계속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일이 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이 여전히 부러움의 대상인 이유다. 말이 곧 돈이 되고 경쟁력이 되는 순간을 경험하고 나면, ‘말 잘하는 기술’이라도 배워야 하나 조바심이 들기도 한다. 「말하기가 능력이 될 때」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막상 말하려면 힘든’ 이들을
지난해 한 작가에게 전화가 왔다. 일종의 항의 전화였다. 자신의 책을 단독으로 기사화하지 않아 서운하다는 것이 전화의 주요 내용이었다. 그 작가가 불만을 제기한 기사는 한주의 신간 도서를 정리하는 꼭지였다. 여러 책을 소개했고 그중엔 항의 전화를 한 작가의 책도 섞여 있었다.한 명의 작가가 자신의 인생에서 남길 수 있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여러 권의 책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두 권의 책만 남기는 이들도 있다. 그렇기에 책은 그 작가의 삶 자체가 되기도 한다. 수년 만에 나온 자신의 책이 단독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것은 이상한
‘수인의 편지 1’ 운명은 사슬인가끊기지 않는돌아서야 한다막다른 벼랑잡아주는 이 누구 없어도삐져나오는 한숨까지다 내 탓이기에모포 자락 뒤집어쓰고눈물 견디며 산다당신의 뜻 엎질러놓고어머니,이 아들은 일어나야만 합니까.‘수인의 편지 19’ 차라리 모른 척 누워 있을 테니마음껏 물어뜯으라내 뼛속까지한 번도 씻어본 적 없는 이 더러운 피를찬란하게 들이켜다오한 방울 남김없이여름모기여나는 목숨이 아니다청개구리 속에다애물일 뿐이니달디달게 마셔다오어머니당신의 주름살, 귀밑 흰머리내가 죄인입니다태어나지 말았어야 할..「수인의 편지」, 도서출판 잠꼬
이별의 질서 간절한 얼굴을 눕히면 기다리는 입술이 된다 한 사내가 한 여자를 큰물처럼 다녀갔다 악양에선 강물이 이별 쪽으로 수심이 깊다 잠시 네 이름쯤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피가 당기는 인연은 적막하다 내가 당신을 모르는 것은 아직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슬픈 육체가 육체를 끌어당기던 그 여름 당신의 등은 짚어낼 수 없는 비밀로 깊다 꽃은 너무 멀리 피어 서러움은 뿌리 쪽에 가깝다 사랑을 통과한 나는 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던 비애 우리는 어렵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내가 놓아 보낸 물결 천천히 밀려드는 이별의 질서 나는 당신을
1월 1일 새해 다마스를 타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일본에서 돌아오는 여자친구를 마중 나가기 위해서였다. 날씨는 온화했고, 새해 연휴의 마지막 날을 맞은 도로는 비어있었다. 이번 새해는 특별하게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다마스의 작은 차창 너머로 스쳐가는 풍경을 보며 이렇게 소소하게 새해를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새해에는 보통 해돋이를 보러 동해로 갔다. 아니면 일이 바빠 읽지 못하고 미뤄뒀던 책을 읽고는 했다. 2024년에는 어딘가 가지 않고 현대문학상 수상집을 읽었다. 국내에 다양한 문학상이 있지만 현대문학상 수상집이
브랜드를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고유한 가치와 강점, 차별성일 거다. 그래야 다른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선택받을 수 있어서다. 예전엔 ‘브랜드’라 하면 기업의 제품 브랜드를 떠올렸지만, 이젠 기업ㆍ도시ㆍ국가, 심지어 개인도 브랜딩을 하는 시대가 됐다. 기업도 도시도, 국가나 개인도 선택의 대상이 됐다는 의미기도 하다.「도시×리브랜딩」은 지역소멸 시대, ‘도시다움’을 만드는 새로운 변화와 트렌드를 이야기한다. 브랜드 전문가로 현장을 경험해온 박상희 교수, 이광호 PR 컨설턴트, 이한기 기자가 ‘도시’와 ‘브랜드’를
어쩌자고 어쩌자고 어둠이 더 짙어지기 전에 너를 잊어버려야 하리 오늘도 칠흑 같은 밤이 되면 사라진 길을 길삼아 너 돌아오는 발자욱 소리의 모습 한결 낭랑하고 숨막혀, 숨막혀, 숨막혀, 숨막 혀를 깨물며 나는 자지러지지 산 자 필(必)히 죽고 만난 자 정(定)히 헤어지는데 어쩌자고 어쩌자고 너는어쩌자고 어쩌자고온몸에 그리운 뱀비늘로 돋아 발자욱 소리의 모습 내 목을 죄느냐 소리죽여 와서 내 목을 꽈악 죄느냐, 이 몹쓸 그립은 것아,「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민음사, 1992유사 이래 제일 많이 창작된 것이 연애시일 것이다.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이화경 지음 | 모놀로그 펴냄인문학과 문학을 아우르는 이화경 작가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윤슬처럼 반짝이는 순간을 말하고 그 통찰을 고유하고 공감하길 바라는 이들의 잠 못 드는 밤을 위로한다. 사람은 시대와 사회에 계속 상처받지만 그럼에도 존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최근 그림책 「윗도리」로 영역을 확장한 이화경 작가는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의 애환과 모순을 유려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죽은 사람과 사랑하는 겨울」임주아 지음 | 걷는사람 펴냄앞날은 알 수 없다. 먹고살 일도
광시곡의 밤구름 한 장 담은 백지와 한없는 길을 돌돌 말아 내는 만년필로 방안이 어두웠다 밝아진다. 집과 집 사이 방안 천장까지 비가 뭉쳤다. 뾰족하고 높다란 탑이 없더라도 종을 울려 저녁을 선포할 시간이 왔다. 우는 사람을 잠재우고 웃음을 저만치 멈춰놓는다. 시간의 무늬를 따라 구름이 정확히 회전한다. 대낮의 열기도 가만히 숨죽이고 방안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젖은 심장에 낚싯줄 달아 출렁이는 바닥 아래로 내려 보내면, 심해어들이 환멸 깊은 곳에서 죽어가는 자의 가죽을 뚫고 방안 가득 솟아오른다. 갱도를 빠져나온 번쩍이는 그림자의
역사를 다루는 소설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 시기의 배경 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불과 한 세대만 지나도 사고방식의 차이가 생기는데 그 간격이 수백년이라면 간극이 클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작가들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사적 배경을 설명할 때가 많다.다만 설명이 많아지면 독자는 버거움을 느낀다. 시대적 생생함을 살리려 사용하는 낯선 용어나 말투에서도 혼란을 겪을 수 있다. 역사적 사건ㆍ인물을 다룰 때 무게감을 고려하지 않으면 날선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역사 창작물에서 사건ㆍ인물을 기존과 다르게 표현했다가 비판받는 일은 드물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장기간 피해가 확산한 일종의 ‘느린 재난’이다. 1994년 출시된 가습기살균제는 1000만개 가까이 판매됐다. ‘가정의 청결과 건강을 관리한다’는 이 제품은 2011년 원인불명의 폐 질환 사례가 수집되면서 전대미문의 환경재난을 부른 주범으로 지목됐다. 2023년 10월 말까지 피해를 신고한 7877명 중 확인된 사망자만 1835명에 달한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오랜 시간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연구해온 환경사회학 연구자 박진영이 정치와 과학이 부딪히는 장場에서 서서히 변화해 온 한국 사회를 이야기한다. 가습
청천의 유방 어머니 어머니라고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푸른 하늘에따스한 봄이 흐르고또 흰 볕을 놓으며불룩한 유방이 달려 있어이슬 맺힌 포도송이보다 더 아름다워라탐스러운 유방을 볼지어다.아아 유방으로서 달콤한 젖이 방울지려 하누나이때야말로 애구哀求의 정이 눈물겹고주린 식욕이 입을 벌리도다이 무심한 식욕이 복스러운 유방……쓸쓸한 심령이여 쏜살같이 날라지이다푸른 하늘에 날라지이다「금성」 제3호(1924)「봄은 고양이로다」를 쓴 고월古月 이장희 시인은 1900년에 태어나 1929년에 죽은 시인이다. 한겨울에 방에 틀어박혀 어항 속
「고독사 워크숍」박지영 지음 | 민음사 펴냄박지영 작가의 장편소설 「고독사 워크숍」이 출간됐다. 「고독사 워크숍」의 인물들은 존엄한 죽음을 꿈꾼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시시하고 모순된 욕망이 담겨 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고독사 워크숍의 참가자들이 털어놓는 내밀한 자기 이야기이기도 하고 고독했던 자신과 타인의 과거를 애도하며 만들어낸 가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현실을 껴안고 있는 인물들은 고독사를 말하면서도 희망을 찾는다.「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SF는
칼국수 마음에 칼을 품고 있는 날에는 칼국수를 해먹자 칼국수 날은 날카롭다 식칼, 회칼, 과일칼 허기 느끼며 먹는 칼국수에 누구나 자상刺傷을 입는다 그럼 밀가루 반죽을 잘해서 인내와 함께 홍두깨로 고루 밀어보자 이때 바닥에 붙지 않게 마른 밀가루를 서너 겹 접은 분노와 회한 사이 슬슬 뿌리며 도마 위에서 일정하게 썰어보자 불 끈 한석봉 붓놀림 같이 한눈팔아서는 안 된다 특히 칼자국 난 면발들이 펄펄 끓인 다시물에 뛰어들 때 같이 뛰어들지 않지 않도록 주의하자 고통이 연민으로 후욱 끊어오를 때 어린 시절 짝사랑 같은 애호박 하나쯤 송
지금도…… 이 말을…… 당신께…… 꼭, 해야 하는가……? 몇 번이고 제 자신에게 되묻게 됩니다. 내뱉고 말면 어쩌면 당신은 저를 증오할지도 모르겠어요.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건 순식간의 일이지요. 당신이나 저나 그 두 감정이 서로 동시에 마음을 언덕 삼아 맞대고 있지 않았나요?[풍금이 있던 자리 일부]유년 시절 글이 안 써지는 밤이면 신경숙의 작품을 필사하곤 했다. 파란색 노트에 만년필 심을 꾹꾹 눌러가며 글을 옮겨 적으면 손가락 끝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에게 문학이란 ‘신경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2015년 신경숙
2014년 사티아 나델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세 번째 CEO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한계에 봉착한 상태였다. “우린 구글보다 뒤처진 데다 우리의 검색 엔진을 만든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 사티아는 이런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투입됐다.” 빌 게이츠의 말처럼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이 석권했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장악했다.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PC 시장이 급격히 추락하는 상황에서 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를 글로벌 기업
아침새 아침 뜨거운 가슴으로 열다피 흘리는 바다로 일어선다.한 손에 화산을 들고, 정신의 바다지나온 겨울에 빠져 어정거리는새벽을 불 지른다.불가사의한 어둠의 틈새에서 날아온새들은하늘의 동작을날카로운 발톱으로 날라잠든 내 얼굴에 뿌리고신선한 벌판 반야般若의 가지를 흔든다.붉게 솟아, 하늘에깨지지 않는 거울머릿속에 눈부시게 내려앉는 중량.가지들이 어둠에서 뛰어나와당황해할 때세계의 신음을 묶어가는 작업 소리.묶여가는 항구도시를혁명이 뒤에서 아프게 보고 있다.퍼어렇게 반란하는 상징의 칼날.새로운 시간이마당에 생솔처럼 타고 있다.님아, 보는
「정신머리」박참새 지음 | 민음사 펴냄제4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 박참새 시인의 첫 시집이 민음의 시로 출간됐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작품이 많았다고 평가된 올해 김수영 문학상 투고작 가운데서도 박참새의 시는 활화산처럼 들끓는 에너지로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풍부한 문학적 레퍼런스를 토대로 한 과감한 발상과 다채로운 화자, 우회나 주저함 없이 끝까지 시적 주제를 파고드는 정통적인 힘은 비할 데 없이 압도적인 장점이라고 평가받았다.「고백」 김기준 지음 | 실천문학사 펴냄 1980년 후반 독자에게 엽서를 통해 시를 배
도시는 이제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됐다. 이는 도시 생활을 형성하는 동력이 세계 전체를 움직일 수도 있단 뜻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가 심각한 사회 분열, 불평등, 전염병, 기후변화 등 난제를 풀 수 있는 답을 도시 개혁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도시는 줄곧 인류 발전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우리의 운명을 되레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규모는 커지는데 거주민은 빈곤해지고, 첨단기술의 집약체인 가상 공간은 사람들을 점차 단절시킨다. 여기에 각종 유행병과 기후위기까지 도시를 위협한다. 「번영하
올해도 세계 곳곳에선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로 많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잇따랐다. 내년에도 안심하긴 어렵다. 지구환경을 위한 각국의 협약과 노력에도 지구의 평균 온도는 매해 상승 중이며, 더 큰 기후위기에 직면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어서다.이렇듯 지독한 환경 변화는 에너지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불러왔다. 세계 각국은 신재생·친환경 에너지정책 지원에 앞장서고, 팬데믹과 전쟁을 겪는 동안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려는 세계적 흐름은 더욱 강해졌다. 국가별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은 점점 확대하고, 각 나라 정부는 새로운 에너지 저장 매개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