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의 눈물] 침체 흐르는 썰렁하고 서글픈 땅
[노량진의 눈물] 침체 흐르는 썰렁하고 서글픈 땅
  • 강서구 기자
  • 호수 322
  • 승인 2019.01.16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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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의 슬픈 자화상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책상 앞을 지키는 공시족公試族. 청년층이 직면한 취업난과 실업률을 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고시촌에 맘 놓고 입주하지 못하는 현실은 경기침체를 대변한다. 한껏 썰렁해진 노량진의 명물 ‘컵밥거리’는 자영업계의 위기를 구슬프게 전한다. ‘한국경제의 축소판’ 노량진, 그 썰렁하고 슬픈 곳을 더스쿠프(The SCOOP)가 취재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 증가하고 있지만 노량진 상권은 침체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이 증가하고 있지만 노량진 상권은 침체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영하 7도 체감온도 영하 10도. 한파가 기승을 부린 1월 2일 아침 7시, 노량진역 3번 출구 앞. 큼직한 가방을 멘 공무원시험 준비생(공시생)들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7시 30분에 시작하는 아침특강을 듣기 위해 혹은 자습실 자리를 맡기 위한 습관적 발걸음이다.

편한 트레이닝복 바지, 두꺼운 패딩점퍼,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까지 공시생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하지만 노량진의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거리에선 활기가 사라졌다. 노량진역 7번 출구 쪽에는 주인이 없는 빈상가도 군데군데 보였다. 고시 1번가로 명성을 떨치던 노량진에 경기침체의 화마火魔가 덮쳤다.

■ 경기침체와 공시생 = 경기침체로 인한 취업난에 청년실업률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실업률(15~29세)은 9.5%로, 2017년 9.8%보다 0.3%포인트 개선됐다. 
하지만 속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

청년층 취업자 수는 2017년 39만7000명에서 지난해 38만4000명으로 3000명이 감소했다. 단기 아르바이트·취업준비생 등을 반영한 청년 체감실업률(확장실업률)은 12월 22.6%로 전년 동기(21.6%) 대비 5.0%포인트나 상승했다. 연간 체감실업률은 22.8%로 201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취업난이 심해질수록 공무원시험에는 사람이 몰렸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청년층의 취업 관련 시험 준비 실태’에 따르면 공시생은 2012년 29만명에서 지난해 41만명으로 12만명 증가했다. 연평균 증가율은 6.0%에 달했다. 민간기업 시험 준비자 증가율 2.4%보다 2.5배 높은 수준이다. 갈 곳 없는 취준생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 공시생 쫓아내는 침체 = 계속된 경기침체는 공시생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017년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대학내일20대연구소·청년유니온 등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시생의 월평균 지출액은 83만6000원에 달했다. 여기에 주거비까지 더하면 월평균 지출은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하루 10시간씩 공부에 매달리는 공시생이 경제활동을 하는 건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부모 등 가계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제활동 경험이 없는 공시생의 74. 6%(청년유니온·2017년)가 가족으로부터 전액 지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가계소득은 감소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소득 10분위 중 중간층인 소득 5분위 가구(전국 2인 이상)의 1~3분기 월평균 소득은 370만4278원으로 전년 동기(372만9457원) 대비 2만5179원 감소했다.

취업난에 늘어난 공시생

당연히 공시생은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 강의보다 저렴한 온라인 강의를 선택하거나 노량진을 떠나는 공시생이 많은 이유다. 충북 청주에서 올라와 올해 3년차 공시생인 최형섭(31·가명)씨는 “지방에서 올라온 공시생은 노량진에서 2년간 공무원 준비를 하면 2000만~3000만원은 쉽게 나간다”며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4월 국가직 시험에 맞춰 고향으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량진 공무원학원 관계자는 “2~3년 전에 비하면 노량진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며 “강의실·교재정리 등을 하고 무료로 강의를 듣는 지도학생 모집 경쟁률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 공시생 감소에 활기 잃은 상권 = 비용부담을 이유로 노량진을 떠나는 공시생이 늘어나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증가하는데 노량진은 침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들어졌다. 노량진 상권의 매출에서 수험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한잔에 900원짜리 커피, 3500원짜리 돈가스 등 가격이 저렴한 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유도 수험생을 주요 타깃으로 하고 있어서다. 당연히 학생 수가 줄면 식당 등이 자영업자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이는 상권침체의 부정적인 효과가 가장 먼저 미치는 노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노량진 컵밥거리의 포장마차 28개 중 2개가 지난해 사라졌다. 장사가 신통치 않아 문을 열지 않는 가게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컵밥거리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김범준(65·가명)씨는 “낮에는 일용직 등 다른 일을 하고 저녁에만 장사를 하는 가게도 있다”며 “포장마차를 처분해봤자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아 그냥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유입되면 조금 나아질지 모르겠다”면서도 “매출은 새벽 4시면 나와 장사 준비를 했던 예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토로했다.

경기침체가 만든 악순환


매장 상인도 마찬가지다. 노량진에서 식당을 하는 상인들에게선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를 듣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저마다 차이는 있지만 매출이 지난해 대비 20~30%가량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증가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가 공실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경기침체 → 취업난 → 공시생 증가 → 경기침체 → 공시생 소비 감소 → 노량진 상권 침체 → 공실 증가’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모든 상권이 침체하고 있다”며 “노량진은 경기침체에 수험생 감소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침체 정도를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과거 노량진의 대형 상가는 투자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권리금이 사라진 건물도 있다”며 “노량진 상권의 침체를 상인과 부동산 중개소의 우려하는 목소리가 앓는 소리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직장을 찾지 못한 청년층이 공시에 매달리고, 경기침체로 매출이 떨어진 자영업계는 곡소리를 내는 노량진의 민낯. 어쩌면 한국경제의 자화상自畵像일지 모른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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