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폭염기 대응한다는 건설사
이전보다 더 못 쉬다는 노동자
건설사-노동자 생각 왜 다를까
폭염예방대책 강제규정 없어

폭염기 건설 현장은 ‘위험의 도가니’다. 더위를 이기지 못한 채 쓰러지는 노동자가 숱하게 생겨서다. 이 때문에 정부는 35도가 넘는 날 가장 뜨거운 오후 2~5시엔 옥외작업을 최소화하라고 권고한다. 건설사들은 매년 정부의 권고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왜일까. 

폭염으로 인한 산업재해 사망자는 건설업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사진=뉴시스]
폭염으로 인한 산업재해 사망자는 건설업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사진=뉴시스]

날씨가 더우면 기계가 아닌 사람은 멈출 수밖에 없다. 근무 시간 내내 태양 아래서 일해야 하는 옥외 노동자들은 더 그렇다. 그중에서도 더위의 위험을 가장 크게 겪는 건 건설 노동자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8~2022년 폭염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23명에 달했는데, 그중 17명(74.0%)이 건설 현장 노동자였다. 건설업계가 여름이 찾아올 때마다 긴장하는 이유다.

이런 사고를 줄이기 위한 법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1년에 3명 이상 열사병으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해당 현장의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법만이 아니다. 사고를 막기 위한 예방 조치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온열질환 예방 수칙으로 ▲물(시원하고 깨끗한 물ㆍ규칙적으로 음용), ▲그늘(작업장소 가까운 곳에 그늘진 장소 마련ㆍ시원한 바람이 통하도록 조치), ▲휴식(1시간 주기로 10~15분 이상), ▲무더위 시간대(오후 2~5시) 옥외작업 최소화를 제시했다.

건설사들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고 주장한다. 건설사별로 온열 질환을 막기 위해 수십개의 현장을 점검한다는 기사는 때만 되면 나온다. 현대건설은 노동자의 작업열외권을 보장한다.

작업열외권은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노동자가 작업 열외를 요청하면 작업에서 제외하고 잔여근무시간에 임금 손실을 보전해 주는 제도다. 돈 때문에 노동자가 위험을 인지하고도 작업을 계속하는 걸 막기 위한 대응책이다. GS건설ㆍ대우건설 등 다른 대형 건설사에서도 폭염 시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고 홍보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노동자들이 느끼는 건설 현장의 실태는 다르다. 건설사의 주장과 달리 이전보다 폭염에 더 취약해졌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7월 31일부터 8월 1일까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언급했듯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인 경우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옥외 작업을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옥외작업을 중단한다’고 답한 노동자는 18.3%에 머물렀다. ‘별도 중단 지시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81.7%로 비중이 훨씬 높았다. 노동자 10명 중 8명은 폭염이 발생하는 날 오후 2~5시에도 휴식 없이 일한다는 건데, 이는 건설사들이 옥외작업을 최소화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폭염 대응책을 실시하는 건설사와 현장 노동자가 느끼는 간극은 빡빡한 공사 기간에서 온다.[사진=뉴시스]
폭염 대응책을 실시하는 건설사와 현장 노동자가 느끼는 간극은 빡빡한 공사 기간에서 온다.[사진=뉴시스]
[사진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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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2022년 같은 질문에 ‘옥외작업을 중단한다’고 답한 노동자가 두배 이상(41.5%)이었다는 점이다. ‘폭염이 밀려온 날 오후 2~5시에 옥외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응답률이 단 1년 만에 23.2%포인트(2022년 41.5%→2023년 18.3%) 하락했다는 거다.

건설사들은 한결같이 ‘폭염예방대책’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통계는 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건설사의 주장과 노동자가 느끼는 현장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 현장의 간극➊ 법 아닌 권고 = 언급했듯 열사병으로 1년에 3명 이상의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는 처벌받는다. 중대재해처벌법에 근거한 처벌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제시하는 온열질환 예방수칙은 말 그대로 ‘권고’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산업안전보건법’엔 고온 규정이 있고 하위 법령인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고열 규정이 있지만 어느 법도 폭염일에 옥외작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의하고 있지 않다”면서 “건설현장과 관련한 폭염 대책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법 39조에 따르면 고온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막기 위해 사업주는 필요한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 예방 조치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 상세히 규정해 놨다.


이 규칙 567조를 보자. 사업주는 노동자가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는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그늘진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휴게시설’은 시행규칙에 명시했지만 휴식시간은 없다.

이에 따르면, 건설사들이 폭염 중 실시하고 있다는 ‘온열질환 방지대책’은 법에서 규정한 게 아니다. 당연히 건설 현장마다 상황이 다르고, 노동자가 느끼는 현실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 현장의 간극➋ 고질병 = 폭염 중 옥외작업을 두고 건설사의 주장과 노동자의 체감이 또 다른 이유는 건설업의 고질병, 공사기간(공기ㆍ工期)에서 찾을 수 있다. 대부분 건설 현장은 공사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다. 공기가 하루씩 길어질수록 경제적 손해도 크다. 사업을 위한 대출이자 등이 늘어나서다. 이 때문에 시행사 등 사업주는 빠르게 공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하는 ‘온열질환 예방수칙’에 따라 폭염 경보가 발령된 날 오후 2~5시에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상청에 따르면 2023년 6월 1일부터 현재(8월 11일)까지 서울 폭염 일수는 16일이었다. 매일 3시간씩 휴식한다고 가정하면 48시간의 작업시간이 모자란다. 휴식시간을 늘릴수록 제한된 공사기간 내에서 일을 빠르게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온열질환 예방수칙을 지키고 있다고 말하는 건설사들도 실제로 휴식시간을 보장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온열질환 예방수칙을 실시하고 있는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정ㆍ공기에 따라 오후 2~5시 휴식을 취하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럴 땐 나중에 휴식시간을 주는 방식으로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실제로 휴식할 수 없는 공정에서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 사고는 잦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건설 현장에서 온열질환 사망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공정은 ‘거푸집 설치ㆍ해체’였다. 거푸집은 콘크리트를 부은 후부터 단단해질 때까지 지지하는 가설구조물이다.

예를 들어 25층 아파트의 건설 현장에선 거푸집을 설치하고 콘크리트 타설을 마친 다음 며칠 후 맨 아래층에 있는 거푸집을 해체한다. 그다음 가장 위층으로 올라가 다시 거푸집을 설치하고 콘크리트를 타설한다. 

이런 방식으로 아파트는 1층부터 25층까지 만들어진다. 거푸집 설치와 해체가 늦어지면 아파트 ‘층’이 그만큼 천천히 올라가는 거다. 빡빡한 공사기간 내에 일을 마치려다 보니 가장 뜨거운 시간(오후 2~5시)에도 노동자는 쉴 수 없다.

짧은 공사기간은 건축물의 안전도, 건설 노동자의 안전도 흔들고 있다. 아무리 휴게시설을 충분히 설치하고 냉방기를 돌린다고 해도 휴식시간이 없는 노동자는 휴게시설에 갈 수 없다. 기후 위기로 인해 여름은 갈수록 더워질 일만 남았다. 더 더워질 여름에 대비할 수 있는 ‘진짜’ 폭염 대책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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