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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의 컴플라이언스경영
국내 사법시스템 불신 높지만
고소·고발 더욱 늘어난 현실
10건 중 2건 기소되는 실정
억울한 피의자 양산 막아야
소권 남용 제재할 수단 필요

우리는 주변에 착한 사람을 보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칭찬하곤 한다. 하지만 요즘같이 촘촘한 법망이 우리의 일상을 규제하는 시대에 정말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얼마든지 법의 제재를 받을 수 있는 현실을 살고 있다. 문제는 사법시스템의 지나친 남용으로 ‘피해자가 되는 피의자’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는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사회에는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평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을 들어왔던 직장인 K씨는 올해 초 직장동료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두 사람은 회사에 처음 만나 서로 호감을 느끼고 차츰 사귀어 가는 사이였다.

그런데 관계가 틀어지자 상대방은 느닷없이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K씨를 고소했다. K씨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CCTV를 확보해 상대방과의 신체접촉 과정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 가까스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회사 내에선 이미지가 실추돼 이 사건은 K씨에겐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야기를 본격화하기 전에 한가지 통계를 보자. 영국의 싱크탱크인 레가툼연구소(Legatum Institute)가 발표한 ‘2023 번영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67개국 중 종합순위 29위를 기록하고 있다. 언뜻 양호한 성적처럼 보이지만 세세하게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가령, 번영지수 조사항목 중 ‘사회적 자본지수’에서 한국은 107위로 10년 전보다 12계단이나 추락했다. 사회적 자본지수에서 뒤처진다는 건 우리 사회의 신뢰도가 그만큼 낮다는 의미다. 그중에서도 공적기관 및 체계를 향한 불신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사법시스템 신뢰지수’에서 155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2013년 146위에서 9계단 미끄러진 수치다. 

아이러니한 건 사법시스템을 향한 국민의 불신이 높은데도 고소ㆍ고발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검찰청 사법시스템 통계를 살펴보면 2022년 기준 국내 고소사건 접수 건수는 35만7612건으로 전년(32만2438건) 대비 10.9% 증가했다.

이중 수사에 착수한 건수는 34만7409건, 기소율은 23.6%였다. 수사가 이뤄진 사건 10건 중 2건 정도만 기소가 이뤄진 건데, 2022년 전체 형사사건의 기소율(41.6%)과 비교하면 고소사건의 기소율은 매우 낮다. 범죄불성립ㆍ무혐의 등에 불기소 처분이 내려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소사건은 억울한 피의자를 양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앞서 언급한 K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말이다. 

우리나라와 사법체계가 비슷한 일본과 비교해 봐도 한국의 ‘고소 남용 현상’은 뚜렷하다. 경찰대학교 치안정책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평균 1068명이 고소를 당했다. 같은 시기 일본의 평균치(7.3명)와 비교하면 146배나 많다. 2018년에는 그 격차가 217배(한국 1172명ㆍ일본 5.4명)로 커졌다. 

두 나라 모두 독일이나 프랑스의 대륙법을 계승해 사법시스템이 비슷한데도 이렇게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이 고소ㆍ고발을 행하는 기저에는 분노의 심리가 깔려 있다고 한다. 고소ㆍ고발에 ‘나를 불편하게 한 상대’를 향한 복수심이 작용한다는 얘기다. 범죄 성립 여부를 가늠하지 않고 일단 고소부터 하고 보는 식이다. 이 경우 고소인으로서는 피고소인이 처벌을 안 받아도 그만이다. 고소를 통해 이미 어느 정도의 분풀이는 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만연해진 데에는 고소가 너무 쉬운 탓도 있다. 고소를 당한 사람은 본인을 고소한 사람을 명예훼손이나 무고죄 등으로 맞고소한다. 고소가 고소를 낳는 거다. 법적 피해자의 적법한 고소권은 더 세심하게 보장해야 하지만, 고소권의 무분별한 남용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고소 제도가 억울한 피의자를 낳아선 안 된다. 상대를 괴롭힐 목적으로 제기하는 고소는 일종의 폭력이다. 고소인의 억울함을 해결하면서 피고소인의 인권 침해도 막을 수 있는 조화로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다행히 최근 민사소송법 개정으로 우리나라에도 소권 남용을 제재할 방법이 생겼다. 올 4월 18일 공포한 개정 민사소송법에 따라 소권을 남용한 이에겐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2021년 고소권 남용 문제 해결을 위해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 법안은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해외와 비교해도 우리나라가 갈 길은 멀다. 2022년 사법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소권 남용 대응 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영국은 부당소송 금지를 법제화했다. ‘지속적으로’ ‘합리적 근거 없이’ ‘동일한 피고에게 반복적으로 소를 제기하고’ ‘계속해서 패소하거나 소송완결을 하지 않는’ 경우 법무부 장관 혹은 고등법원은 소송을 제기하는 자에게 절차금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  

국내에는 무분별한 소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사진=대법원 제공]
국내에는 무분별한 소권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사진=대법원 제공]

민사절차금지명령을 받은 사람은 고등법원의 허가 없이는 민사소송 절차를 개시할 수 없다. 이미 제기한 소 역시 고등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진행할 수 있다. 이런 조치는 기간을 정하지 않는 경우 그 효력이 무기한 존속한다. 영국에는 소권 남용을 직접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존재하는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경찰서 민원실에 비치해 놓은 고소장 양식에 볼펜으로 대충 휘갈겨 쓴 ‘낙서 같은’ 고소장이 수많은 피의자를 만들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제는 고소의 일상화를 막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법시스템이 제 기능을 해서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장대현 한국컴플라이언스아카데미㈜ 대표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heartbri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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