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로부터 “당신은 누구입니까?”란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대거나 자신이 하는 일 등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좀 더 복잡한 의도가 숨어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당신의 존재 혹은 당신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었다면. 심리학 교수이자 신경과학자인 그레고리 번스는 저서 「‘나’라는 착각」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존재를 ‘단수’로 이해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자신을 단지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겠지만, 실제 당신은 ‘하나’가 아니라며 “우리는 몸이라는 실체를 갖고 있지만,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운명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보여준다. 테베의 왕이 오이디푸스를 낳자 신전은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놀란 왕은 양치기에게 아들을 죽이라 지시하지만 이뤄지지 않는다. 갓난아이인 오이디푸스는 이웃 나라 코린토스의 왕이 키우게 된다.훗날 성인이 된 오이디푸스는 신전에서 앞선 예언을 듣는다. 코린토스 왕을 아버지로 생각한 그는 운명에 저항하고자 코린토스를 떠나고 그 와중에 시비가 붙어 친부인 테베 왕을 살해한다. 이후 스핑크스를 무찔러 친모인 테베 여왕을
애플이 추진한 ‘애플카’는 단순한 전기차가 아니었다. 스마트폰이 모빌리티(Mobility·이동수단)로 들어가는 혁신을 의미했다. 많은 이들이 애플카를 ‘바퀴 달린 아이폰’으로 묘사했던 이유다. 하지만 애플은 애플카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왜일까. 아이폰 제조사 애플이 2014년부터 10년간 공들였던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타이탄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 2월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애플카 개발 취소 소식과 함께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직원들이 인공지능(AI) 업무에 재배치되거나 구조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의 작품들은 지금 읽어도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가 최초로 사용한 단어인 ‘로봇’과 인간 같은 곤충들, 인간에 의해 강제로 대량 증식된 도롱뇽, 전염병을 권력 수단으로 이용하는 독재자는 세계대전 당시의 세계와 지금 우리의 세계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터미네이터(1984년)’는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대표적인 영화다. 자원을 낭비하고 서로 갈등만 일삼는 인간들이 쓸모없다고 판단한 ‘지능을 가진 기계’들이 인간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디스토피아 영화의 고전이
인쇄기가 없을 때 성경은 사람들의 ‘필사筆寫’로 만들어 배포됐다. 성경 66권을 묶은 ‘1질(일종의 세트)’을 사려면 집 10채값을 지불해야 했다. 당연히 성경을 소유할 수 있는 곳은 돈이 많은 수도원이나 교회밖에 없었다. 문제는 수도원이나 교회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교리를 해석해 체제를 유지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을 널리 확산하는 데 일조한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은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구텐베르크는 1448년 재정가 요한 푸스트(Johann Fust)를 설득해 인쇄기와 800굴덴(Guldenㆍ독일어권 금화 단위)
중국은 3세기부터 목판 인쇄를 했다.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나라는 고려다. 그럼에도 15세기에 개발된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인쇄기가 ‘혁신의 산물’로 꼽히는 건 여러 장을 한번에 인쇄할 수 있는 ‘압축기술’ 때문이다. 구텐베르크의 기계식 인쇄 방법을 오프셋인쇄(offset printing)가 출현하는 20세기까지 그대로 사용했다는 건 더 놀라운 일이다. 15세기 서양의 지식 혁명에 불을 지핀 주인공인 그는 포도주를 짤 때 사용하는 압착기를 개조해 근대적 인쇄기계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를 ‘근대
인쇄기를 발명해 중세 유럽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고 지식 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그의 발명은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이 성경과 지식을 독점하던 체계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는 제자로부터의 배신과 동업자의 소송에 따른 파탄, 노년에 찾아든 실명이란 엄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독점과 어둠이란 중세의 봉인을 해제한 것에 따른 천형天刑이었을까.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개발하기 전 유럽에선 수천권의 필사본만이 나돌았을 것이다. 그가 금속활자로 인쇄기를 발명한 시점에서 불과 50년이 흐
고대 이집트 왕들은 사후세계를 믿었다. 후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자死者의 서書’는 고대인들이 기록한 사후세계 안내서다. 그럼 당시 사람들은 ‘사자의 서’를 어디에 어떤 형태로 기록했을까. 공병훈의 맥락 인류 최초 문자 미디어 마지막 편에선 ‘종이의 기원’ 파피루스(papyrus)를 살펴봤다.문자를 기록하는 ‘틀’ 점토판이 탄생한 것으로 알려진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남쪽 지방으로 오늘날 이라크의 남부 지역에 해당한다. 수메르 사람들은 점토판에 문자를 새기는 작업을 2000년 동안 해온 것으로 여겨진다.현재까지 발굴된 대
시간적ㆍ공간적 제약이 있는 말을 문자로 남길 수 있었던 건 역사적 함의가 크다. 문자가 없었다면 고대문화도, 지금의 찬란한 문명도 없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 문자 미디어’ 1편에서 우리는 말이 문자가 된 경로를 짧게 살펴봤다. 2편에선 ‘책의 기원’으로 불리는 점토판이 만들어진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후 ‘책의 기원’이라 불리는 점토판과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만들어지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문자가 기록된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은 점토판이나 석판에
완전 자율주행차는 시간당 1.4TB 데이터를 생성한다. 1GB 영화 1434편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 때문에 자율주행차에서 중요한 건 데이터를 처리ㆍ관리하는 체계와 능력이다. 그래야 숱하게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자율주행차가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 메이커들은 데이터보단 카메라와 센서에 더 주목한다. 괜찮은 흐름일까. 운전 중에 문자메시지를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고객사의 중요한 회신일 수도 있어 잠깐 스마트폰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 순간 갑자기 한 아이가 차 앞으로 튀어나온다. 이때 당신이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은 얼
찰스 다윈은 인류의 말의 기원을 “언어가 다양한 자연의 소리와 다른 동물들의 소리, 그리고 인간 자신의 본능적 울음소리들을 모방하고 수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만큼 인류의 가장 오래된 미디어는 ‘말(language)’이며, 인류가 영원히 사용할 미디어이기도 하다. 공병훈의 맥락, 이번엔 인류의 영원한 미디어 ‘말’을 논해보자.말은 인간이 지닌 최소한의 소통방식이자 최후의 소통방식이다. 인류가 사는 곳이 아무것도 없는 진공 상태가 된다면 말은 더 이상 인류의 미디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말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
도시는 이제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됐다. 이는 도시 생활을 형성하는 동력이 세계 전체를 움직일 수도 있단 뜻이기도 하다. 많은 전문가가 심각한 사회 분열, 불평등, 전염병, 기후변화 등 난제를 풀 수 있는 답을 도시 개혁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도시는 줄곧 인류 발전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지금의 도시는 우리의 운명을 되레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규모는 커지는데 거주민은 빈곤해지고, 첨단기술의 집약체인 가상 공간은 사람들을 점차 단절시킨다. 여기에 각종 유행병과 기후위기까지 도시를 위협한다. 「번영하
「바게트 : 근 손실은 곧 빵 손실이니까」정연주 지음 | 세미콜론 펴냄 음식을 매개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띵 시리즈’의 스물네번째 주제는 바로 ‘바게트’. 요리 잡지 기자 출신의 정연주 작가는 현재 프리랜서 푸드 에디터이자 요리책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할머니가 돼도 직접 구운 빵을 끼니마다 먹을 거라며 근육까지 준비하는 저자의 바게트 사랑은 웃음과 군침을 동시에 자아낸다. 「밤이면 건방진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었다」김수영·김춘수·김종삼·이성부·강은교·장정일·허연 지음 | 민음사 펴냄 ‘오늘의 시인총서’ 출간 5
1592년 어느날, 풍신수길은 한통의 전갈을 받았다. 조선에 상륙한 왜군은 연전연승을 벌이고 있지만, 바다에선 7전 7패를 기록 중이란 내용이었다. ‘이순신’이란 탁월한 장수가 있음을 알아챈 풍신수길은 몇몇 지휘관에게 특명을 내렸다. “이순신을 죽여라!” 풍신수길은 왕이 아닌 이순신을 ‘진짜 리더’로 본 모양이다. 이순신의 승전 소식에 의병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기세는 한층 높아졌다. 전 만호 김태허金太虛는 전 현감 박홍춘朴弘春, 전 봉사 김응충金應忠과 더불어 울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울산읍을 회복했다.진사 정세아鄭世雅는 영천에서, 전
# 우리는 원초적 질문 ‘다시 열린 중국시장과 현대차’ 첫번째 편에서 중국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짚어봤다. 이를 통해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서 입지를 잃은 결정적 배경도 살펴봤다.# 원인은 분명했다. 2010년대 중국 시장은 전기차 중심의 신에너지차 체제로 빠르게 전환했는데, 현대차는 이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현대차에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원초적 질문 두번째 편을 열어보자. 그동안 자동차 산업은 유럽·미국과 같은 서방 국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발명한 곳도, 사상 처음으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한
“광고만 하면 되냐? 솔직히 눈에 띄어? 사람들은 관심 없다고!” 마케팅 전문가 세스 고딘은 20년 전 펴낸 저서 「보랏빛 소가 온다(Purple Cow)」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웬만해선 눈에 띌 수 없을 만큼 비슷한 상품과 서비스가 많아진 시대다. 이젠 엄청난 비용을 투입한 광고 공세가 아니라 ‘리마커블(remarkable)’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2003년 출간해 누적 판매 300만부를 기록하며 비즈니스 명저로 불려온 「보랏빛 소가 온다」가 20주년 기념 에디션으로 재출간됐다. 이 책은 혁
# 서울 종로구 ‘부암동 터널’을 지나 광화문으로 향하다 보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이 있다. ‘자하문로’다. 이곳은 2010년대 중반 대로변에 한글 간판이 나란히 세워지며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지금 자하문로는 ‘한글 간판’의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자하문로는 ‘한글 간판’이란 특징을 잃은 걸까. 더스쿠프가 그 길을 걸어봤다.경복궁의 서쪽. 흔히 서촌이라 부르는 이곳의 중심 도로는 ‘자하문로’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눈에 띌 만한 광경이 나타난다.
신각이란 인물이 있다. 임진왜란 때 한강을 지키던 부원수였다. 그는 왜군이 경상ㆍ충청ㆍ경기 3도를 장악하는 동안 조선 장수 중 내륙에서 승리를 얻은 최초의 인물이다. 1592년 5월 16일 양주전투에서였다. 그런데 신각은 승리를 거둔 지 3일 만에 어명을 받은 선전관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어찌 된 일이었을까.용인전투에서 5만 대군이 무너지기 앞서 조선 관군의 입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 ‘한성’의 수성대장 이양원, 한강을 지키던 도원수 김명원, 부원수 신각, 그리고 우의정 유홍 등 네 사람이 얽힌 충격적인 사건이었
「일상의 발명」미셸 드 세르토 지음|문학동네 펴냄 삶은 일상의 연속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타인과 낯선 환경을 맞닥뜨려도 다양한 각자의 방식으로 헤쳐 나간다. 때로는 각자가 가진 것으로 무언가를 꾸며내거나 새로운 것을 조작해내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를 ‘대중의 전술’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대중이 어떤 방식으로 저항하는지 흥미롭게 설명한다. 「기후 책」그레타 툰베리 지음|김영사 펴냄 어떤 수식어도 달리지 않은 이 책은 ‘기후 책’ 그 자체다
여성의 사회적 권익은 점차 진일보하고 있다. 20세기 말과 비교해 볼 때 여성은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있으며 더 오랜 경력을 유지하게 됐다. 고위직 여성의 비율도 예전 대비 높아졌다. 그런데 과거보다 훨씬 능력과 자질을 갖췄음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을 호소한다. 출산 여성을 위한 육아 휴직은 여성이 일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휴직에 따른 잠재적·부정적 효과 또한 존재한다. 육아 휴직 이후 벌어지기 시작한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경력상 간극이 결국엔 임금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출산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