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지역개발사업 오류의 함정➍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 
다 죽은 공항에는 ‘신청사’ 짓고
정치인은 디즈니랜드 헛꿈 남발
실패한 수상택시와 리버버스 
예타 대상 사업 부실투성이인데
대상 범위마저 줄이려는 금배지 

# 기울어져 가는 공항에 혈세 수백억원을 들여 신新청사를 지었다. 경제 전문가들이 나서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뜯어말렸지만, 지역 정치인과 관료는 숱한 경고를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 결과는 예견된 그대로였다. 공항은 ‘신청사’를 준공한지 9개월 만에 운휴運休에 들어갔고, 그로부터 3년 후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신청사’를 밀어붙였던 이들 중 일말의 책임이라고 지겠다며 나선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 이 사례는 2000년대 초반 경북 ‘예천공항’에서 벌어진 일이다. 누군가는 ‘너무나 아득한 시절의 이야기’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탐욕과 이권으로 점철된 지역개발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 속에선 지역 정치인과 관료가 끊임없이 정치적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더스쿠프의 視리즈 ‘지역개발사업 오류의 함정’ 마지막 편, 데스크와 현장의 관점이다. 

섣부른 지역개발사업은 필히 혈세 낭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섣부른 지역개발사업은 필히 혈세 낭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가파름이란 장벽 

‘나는 새도 넘기 힘든 고개’란 뜻을 갖고 있는 조령鳥嶺. 충북 괴산군과 경북 문경시를 잇는 조령(문경새재)은 예로부터 ‘험준함’의 대명사로 꼽혔다. 좁고 가파른 632m 높이의 고갯길을 넘는 덴 자동차로 20여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비나 눈이 내리면 길이 통제되는 일도 잦았다. 조령 특유의 가파른 경사는 인간이 거스르기 힘든 장벽이었다. 

이 고갯길을 관통하는 터널(이화령터널)이 생긴 건 1998년 10월이다. 600억원이 훌쩍 넘는 공사비를 투입해 만든 터널의 길이는 대략 3㎞. 시속 80㎞로 내달리면 20분 넘게 걸리던 조령을 5분 이내에 빠져나갈 수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3년 후인 2001년 중앙고속도로까지 개통하면서 족히 4시간 넘게 걸리던 서울~문경 거리는 2시간 안팎으로 좁혀졌다. 이 모든 게 불과 3~4년 새 벌어진 일이었다. 

# 기울어진 공항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게 세상의 이치다. 육로가 뚫리자 하늘길에 빨간불이 켜졌다. 문경 옆 예천공항에서였다. 예천공항은 대합실이 가건물일 정도로 초라하고 작았다. 그럼에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김포공항에서 예천까지 30~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장점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화령터널과 중앙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예천공항을 찾던 승객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고, 항공사는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대한항공은 2001년 8월 ‘김포~예천’ 노선의 운항을 중단했다. 이듬해 1월 아시아나항공 김포~예천 노선의 탑승률은 20%를 밑돌았다. 예천공항의 운명은 이미 ‘폐쇄’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곳에선 황당한 논란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신新청사’ 파문이었다. 

 # 허공에 날린 386억원 

2002년 12월.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은 예천공항에 혈세 386억원을 투입한 신청사가 들어섰다. 1999년 첫 삽을 뜬 이후 3년여 만이었다. 가망 없는 공항에 수백억원을 쏟아붓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 건 지역 정치인과 관료였다. 

신청사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숱한 전문가와 학자가 ‘이화령터널 준공과 중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예천공항의 입지가 약해질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이 경고를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2002년 신청사를 준공한 예천공항은 3년 후 폐쇄됐다. [사진=뉴시스]
2002년 신청사를 준공한 예천공항은 3년 후 폐쇄됐다. [사진=뉴시스]

그 결과는 ‘예견된’ 그대로였다. 예천공항은 신청사 개항 9개월 만에 운휴運休에 들어갔다. 3년 후인 2004년엔 공항이 완전히 폐쇄됐다. 300억원이 넘는 혈세만 허공 위로 날려 보낸 셈이었다. 한가지 놀라운 건 신청사 건설을 밀어붙인 정치인과 관료 중에 책임을 진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모럴 해저드의 극치라고 꼬집을 만하다. 

#금배지의 세상 

우리가 20년이 훌쩍 지난 예천공항 ‘신청사 파문’을 다시 끄집어낸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혈세를 쏟아붓고도 사실상 ‘폐기처분한’ 공항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다. 2002년 4월 개항한 양양공항은 ‘영동권 관광거점 공항’을 명목으로 3567억원을 투입해 만들었지만 코로나19 특수를 누리기 전까진 ‘유령공항’에 가까웠다. 1320억원을 들여 세운 울진공항은 아예 문조차 열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들 세 공항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세곳 모두 지역 정치인과 관료가 주도해 건립했고, 결과적으론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어 혈세만 낭비했다는 점이다. 특히 금배지를 가슴에 단 이들은 ‘이 사업엔 타당성이 없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경청하지 않았다. 과거 실패한 공항의 사례를 되짚어 보지도 않았다. 금배지의 세상엔 ‘국가예산은 내 돈이 아니니 멋대로 써도 괜찮다’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었다. 

# 미검증 사업과 혈세 

누군가는 ‘너무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1999년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도입했으니, 예천공항의 신청사와 같은 황당한 사례는 더이상 없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참고: 예타는 대규모 국가예산(총사업비 500억원 이상·국비 3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개발사업의 타당성과 사업성을 평가하는 사전검증제도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지역개발사업에 천문학적인 나랏돈을 쏟아부은 사례는 차고 넘친다. 800억원이 넘는 혈세를 투입했지만 도와 시가 서로 ‘운영비를 낼 수 없다’며 갑론을박을 벌였던 새마을운동 테마공원(경북도 구미시), 국비와 도비 479억원을 들여 만들었지만 개장 이래 단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내포보부상촌(충남 예산군)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둘 모두 예타 대상 사업이었다. 

그럼 이 지점에서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말 많고 탈 많은 지역개발사업의 덫에서 빠져나오려면 우린 무엇을 바꿔야 할까. 사실 답은 간단하다. 전례前例만 제대로 분석해도 부실사업을 줄여 혈세를 아낄 수 있다.

가령, 예천공항의 ‘신청사 파문’을 면밀히 검토했다면 또다른 부실 공항은 탄생하지 않았을 거다. 어지간한 테마파크는 예외 없이 적자에 시달렸단 사실을 깨쳤다면,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내포보부상촌’ 등 건설 프로젝트는 좀 더 신중하게 진행됐을지 모른다.

부실사업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예타를 좀 더 까다롭게 혁신하는 거다. 이미 많은 전문가가 예타의 평가 기준을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하고, 평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정치인과 관료를 비롯한 정책 입안자들이 이렇게 간단한 해법조차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전례를 분석하긴커녕 되레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여기 두가지 사례가 있다.

# MB의 공수표 

[사례
] 경전철 김포골드라인은 ‘김포골병라인’으로 불린다. 출퇴근 시간 열차에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골병이 들 것 같다는 뼈아픈 현실을 풍자한 조어造語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가 꺼내든 카드는 뜻밖에도 ‘리버버스(River Bus)’다. 한강에 수상교통망을 구축해 김포골드라인에 몰리는 수요를 분산하겠다는 게 정책의 골자다. 

하지만 수상교통망을 활용한 서울시의 정책은 이미 실패한 전적前績이 있다. 2007년 10월 론칭했던 수상택시다. 기상 상황에 따른 잦은 운항 변동, 대중교통 환승 불편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상택시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런 전례만 분석했다면 ‘리버버스’란 설익은 정책을 다시금 꺼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례] 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디즈니랜드 헛공약’도 비슷한 예다. 1년 전 치러진 6·1 전국동시지방선거(8회)에 출사표를 던졌던 후보 중 몇몇은 “우리 지역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이들은 한결같이 공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고, 예산을 들여 정책 연구를 하는 등 준비 작업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이뤄진 건 아무것도 없다. 이 또한 ‘MB의 디즈니랜드 공수표’란 전례만 살펴봤어도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된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월트 디즈니사와의 테마파크 유치 협상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2005년 9월)” “월트 디즈니 측과 디즈니랜드 서울 유치 협상을 비밀리에 추진 중이다(2005년 10월)”는 말을 시시때때로 흘리면서 디즈니랜드 유치가 확실한 것처럼 군불을 땠다. 하지만 MB의 디즈니랜드 플랜은 첫 삽도 뜨지도 못한 채 수포로 돌아갔다.  

서울시가 수상택시란 전례를 분석했다면 리버버스란 섣부른 정책도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뉴시스]
서울시가 수상택시란 전례를 분석했다면 리버버스란 섣부른 정책도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뉴시스]

# 예타의 퇴행 

이처럼 과거의 ‘퇴행退行’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는 엉뚱하게도 또다른 퇴행을 모색하고 있다. ‘예타 면제 기준’의 상향 조정을 꾀하고 있는 거다. 지난 4월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는 예타 기준을 500억원에서 1000억원(국비 500억원)으로 높이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 말을 쉽게 풀어 설명하면, 예타의 검증을 받을 필요가 없는(면제) 사업의 목록을 지금보다 더 늘리겠다는 얘기다. 예타의 분석·평가 기준이 좀 더 치밀해져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과는 전혀 다른 길이다. 

곳곳에서 일어난 ‘비난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기재위가 법안 상정을 미루긴 했지만 나랏일이나 나랏돈보단 ‘당선’이 우선인 금배지들을 믿을 순 없다. 더구나 지금은 2024년 4월 10일 치러지는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이다. 예타 면제 기준을 확대하면 현역 금배지들이 선심성 지역개발공약을 맘 놓고 내놓을 수 있다.

선거야 치르면 그만이고, 금배지야 당선돼 봤자 4년의 임기만 채우면 끝이다. 하지만 실패한 정책은 오랫동안 폐해를 남기고 나라 곳간을 거덜 낸다. 

# 호주의 의미 있는 제도 

그렇다면 우린 부실한 개발사업과 혈세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여기 참고할 만한 본보기가 있다. 호주 정부가 운영 중인 규제영향분석평가서(RIS·Re gulation impact statements)다. 호주에선 정책을 입안할 때 반드시 7가지 질문에 기반한 RIS를 작성해야 한다. 그 질문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➊ 해결하려는 문제가 무엇인가 ➋ 정부 조치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➌ 어떤 정책 옵션을 고려하고 있는가 ➍각  옵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순이익은 어느 정도인가 ➎ 누구와 상의했으며 그들의 피드백을 어떻게 반영했는가 ➏ 고려한 것 중 가장 좋은 선택은 무엇인가 ➐ 선택한 옵션을 어떻게 구현하고 평가할 것인가.

RIS를 꼼꼼하게 작성했다고 정책 입안자가 ‘맘대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호주엔 각 부처와 공공기관이 RIS를 잘 준수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감독기구가 존재한다. ‘모범사례 규정사무소(OBPR The Office of Best Practice Regulation)’라 불리는 조직이다. 

OBPR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으로 모든 정책 입안자의 RIS 활동을 감시·관리한다. 호주 정부는 RIS와 OBPR을 통해 국가 정책이 효율적으로 완성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이런 측면에서 두 제도는 이해관계자의 입김이 사업 방향과 예산을 좌우하는 우리나라의 ‘개발사업 프로세스’에 도입해 볼 만한 시스템임에 분명하다. 

# 높으신 나리 통제하려면…

이제 결론을 이야기해보자. 실패한 개발사업은 필연적으로 부정과 비리로 얽혀 있다. 이런 폐단을 뿌리 뽑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혹자는 실패가 뻔한 사업을 밀어붙인 이들을 ‘문책’하는 시스템과 문화를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백번 옳은 말이지만 아직까진 이상理想일 뿐이다. 시스템과 문화는 그렇게 빨리 성숙하지 않는다. 학연, 지연, 여기에 이권으로 묶여있는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는 ‘그들만의 아성’을 지키는 데 능하다. 그들은 이익 앞에선 한목소리를 내지만, 책임을 져야 할 땐 언제 그랬냐는 듯 발을 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지금이라도 호주가 운영 중인 OBPR 같은 ‘외부의 눈’을 높으신 나리들의 곁에 둬야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을지 모른다.  

이윤찬 더스쿠프 편집장 
chan4877@thescoop.co.kr
  
김정덕·김미란·윤정희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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