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서울 한복판 섬 아닌 섬
사방 막힌 구로1동 현주소
구로차량기지 이전 오랜 숙원
제2경인선 무산되면서 물거품
차량기지 활용방법 없을까

정부가 2021년 발표한 제4차 국가철도망 기본계획은 2030년까지 아울렀다. 이 계획에는 인천~시흥~광명~서울을 잇는 ‘제2경인선’도 있었다. 제2경인선은 구로차량기지의 이전을 조건으로 내건 사업이었는데, 골칫덩이였던 차량기지를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 주민들의 큰 기대를 받았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이곳엔 어떤 변화가 일고 있을까. 

제2경인선 추진을 위한 구로차량기지 이전 사업이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사진=뉴시스]
제2경인선 추진을 위한 구로차량기지 이전 사업이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사진=뉴시스]

서울에는 수수께끼 같은 ‘섬’이 하나 있다. 서울에 있지만 한강엔 없다. 여의도도, 밤섬도, 선유도도 아닌 이곳은 ‘구일섬’이다. 구로1동과 섬이란 단어를 합친 단어다. 한강이 아닌 서울 복판의 땅이 ‘섬’이라고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북쪽으로는 경인선 철도가 있고 남쪽에는 유수지遊水池(평지나 넓은 강물에서 홍수량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저수하는 곳)가 있다. 서쪽으로는 안양천이 흐른다. 동쪽에는 경인선 철도에서 이어지는 구로차량기지가 있다. 동네 밖으로 나가려면 육교를 지나가거나 도로를 돌아가야 하니 주민들 입장에서는 ‘섬’이나 다름없다. 차량기지의 소음과 분진도 불만의 대상이었다.

주민들이 오랫동안 바라온 건 그래서 동쪽에 있는 ‘구로차량기지’의 이전이었다. 당연히 쉬울 리 없었다. 차량기지를 옮기는 건 정부가 계획을 잡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기회는 있었다. 정부가 2021년 발표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제2경인선 프로젝트’가 포함됐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의 핵심은 인천에서 서울로 오는 또 다른 철도를 신설하는 대신, 구로차량기지로 끊긴 ‘철도’를 잇자는 거였다. 이를테면 제2경인선을 신설하기 위해 구로차량기지를 이전하자는 프로젝트였는데, 옮길 부지는 제2경인선이 만들어지면 서울 접근성이 개선되는 다른 지자체에서 찾을 계획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2경인선이 관통할 지자체론 인천~시흥~광명~구로(서울) 4곳이 선정됐고, 구로차량기지도 옮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지난 5월 9일 이 계획이 비틀어졌다. 기획재정부가 이날 개최한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서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B 등 다른 노선이 생겼기 때문에 제2경인선의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수도권 서남부의 철도 교통 환경이 달라졌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2022년 사업을 확정한 GTX-B는 인천대입구~인천시청~부평~부천종합운동장~신도림~여의도~용산~청량리~상봉~별내~왕숙~평내호평~마석으로 이어진다. 인천~부천~서울~남양주를 연결하는데, 인천에서 부천ㆍ서울로 이어진다는 점이 제2경인선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재정사업평가위원회의 결과 발표 이후 이뤄진 부천시 주민설명회에서 “GTX-B 등 다른 노선들이 생겼기 때문에 제2경인선의 경제성 평가에 영향을 줬다”면서 “현재로서 제2경인선의 비용 대비 편익(B/C) 값은 0.5~0.6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0.5~0.6 수준이라는 건 100이라는 비용을 투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편익이 50~60이라는 얘기다. 투입한 것보다 얻는 것이 더 적기 때문에 경제성이 있는 사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엎어진 이전 기대

이에 따라 제2경인선과 맞물려 검토되던 구로차량기지 이전 건은 사실상 ‘없던 일’이 됐고, 차량기지 이전을 염원해온 주민들은 실망감에 빠졌다. 한 지역 주민은 “사방이 막혀 있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게 너무 어렵다”며 “그래서 구로차량기지가 옮겨졌으면 했는데, 무산돼서 아쉽다”고 말했다.

제2경인선은 무산됐지만 구로구는 차량기지 이전작업을 계속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 구로구청은 5차 국가철도망 기본계획에 ‘구로차량기지 이전’ 문제를 넣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다만, 차량기지 이전이 가능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전 부지를 찾는 게 이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서울로 이어지는 철도가 필요한 경기도 지자체들은 차량기지 이전과 무관하게 다른 계획을 세워둔 상태다. 제2경인선이 경유할 것으로 계획됐던 인천ㆍ시흥ㆍ광명 등 지자체도 대안 노선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제2경인선의 시발점인 인천의 경우, 현재 역은 그대로 유지한 채 3기 신도시로 만들어지는 광명ㆍ시흥에서 곧바로 신도림으로 갈 수 있는 노선을 계획했다. 광명ㆍ시흥 신도시에 만들어지는 경전철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인데, 국토부에 이미 노선도 제출했다.

제4차 국가철도망 기본계획의 밑그림은 제5차 계획에서 바뀔 가능성이 높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제4차 국가철도망 기본계획의 밑그림은 제5차 계획에서 바뀔 가능성이 높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광명시는 시흥시와 함께 구로구가 아닌 금천구~관악구로 이어지는 노선을 계획했다. 이른바 ‘신천~신림선’인데 지하철 2호선과 연계해 강남 접근성을 키우겠다는 게 목표다. 사전 타당성 조사 결과는 올해 안에 나올 예정이다.

시흥시는 광명시와 함께 진행 중인 신천~신림선 외에도 신구로선을 추진하고 있다. 신구로선은 제4차 국가철도망 기본계획에 포함된 노선으로 사전타당성 조사 결과 발표를 남겨놓고 있다. 시흥대야에서 시작해 범박옥길을 지나 항동(구로구), 온수(구로구)를 통과해 목동(양천구)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이런 상황에서 ‘구일섬’ 주민들은 차량기지의 이전을 꿈꿀 수 있을까.

이 지역 일대 공인중개사는 “차량기지를 옮길 만한 예산이 있다면 다른 방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면서 말을 이었다. “구로차량기지 위를 인공대지로 덮어 공원으로 만들든, 지하로 이전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든 방법이야 많지 않겠나. 정부와 지자체가 이전이 어렵다면 다른 방법이라도 찾았으면 한다. ‘구일섬’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섬’이니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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