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종로의 자화상➊ 광장시장
세계인이 찾는 종로 광장시장
한복 · 포목 알려지지 않은 가치
길 위의 셰프들, 그곳만 따뜻했다
여전히 침체에 빠져 있는 상인들
광장시장 호황의 빛과 그림자

광장시장의 부활은 넷플릭스와 무관치 않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광장시장의 부활은 넷플릭스와 무관치 않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공허한 구호만 같던 이 문장이 지금 현실이 되고 있다. 전세계인이 한국에 관심을 갖고 있고, 서울은 가장 방문하고 싶은 도시로 꼽힌다.

# 그중에서도 종로 한복판에 위치한 ‘광장시장’은 글로벌 명소로 떠올랐다. 2019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길 위의 셰프들’이 광장시장을 콘텐츠로 다루면서다. 매일 새벽같이 광장시장으로 출근해 직접 밀가루 반죽을 칼로 썰어 손칼국수를 만드는 주인장의 모습은 세계인을 매료시켰다. 코로나19가 어느덧 끝을 고하고, 여행길이 다시 열리자 숱한 외국인이 광장시장을 찾고 있다.

#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젊은층도 광장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빈대떡, 찹쌀순대, 머리고기, 떡볶이…. 저렴하고 맛좋은 길거리 음식이 즐비해서다. 그렇다면 상인들은 광장시장의 인기를 체감하고 있을까. 아울러 광장시장의 인기가 종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을까. 더스쿠프가 광장시장의 빛과 그림자를 확인하기 위해 길 위에 섰다. 

넷플릭스 ‘길 위의 셰프들’은 광장시장의 대표 먹거리인 칼국수, 빈대떡, 간장게장, 떡볶이 등을 소개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넷플릭스 ‘길 위의 셰프들’은 광장시장의 대표 먹거리인 칼국수, 빈대떡, 간장게장, 떡볶이 등을 소개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서울 종로5가에 자리한 ‘광장시장’은 세계인이 찾는 명소가 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길 위의 셰프들: 아시아(2019년 작)’가 인기를 끈 게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음식과 전통을 다룬 ‘길 위의 셰프들’은 광장시장의 대표 먹거리인 칼국수, 빈대떡, 간장게장, 떡볶이 등을 소개했다. 그렇다면 광장시장의 인기는 시장 안을 넘어 종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을까. 더스쿠프 視리즈 ‘종로의 묘한 봄’ 첫번째 편이다. 

더위가 시작되던 6월 2일, 점심시간을 앞두고 광장시장을 찾았다. 시장 초입부터 찹쌀꽈배기를 사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부터 내국인 손님까지 북적이는 시장은 분명 활황이었다. 길 위의 셰프들에서 등장한 ‘고향손칼국수’엔 벌써 장사진이 펼쳐졌다. 직접 밀가루를 반죽하고 썰어 만드는 손칼국수를 맛보려는 손님부터 주인장을 화면에 담으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노점을 에워쌌다. 

광장시장의 명물인 빈대떡을 파는 가게들은 금요일 장사를 위해 빈대떡 수십여장을 부치고 있었다. 빈대떡 가게 주인 김소현(가명)씨는 “넷플릭스 콘텐츠 인기 덕분인지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났다”면서 “지난해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청와대 관광코스에 포함된 광장시장을 찾는 내국인 관광객 발길도 이어졌다”고 말했다. 

광장시장은 서울시 차원에서도 관심이 높은 관광특구(2006년 종로청계관광특구 지정)다. 고종 제위 시절이던 1904년 개장해서인지 역사적 가치도 갖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첫 주말에 찾은 곳도 여기였다. 

이처럼 광장시장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자 이곳에 진출하는 기업도 하나둘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수제맥주업체 ‘제주맥주’다. 제주맥주는 지난 5월 한달여간 광장시장에서 팝업스토어 ‘제주위트 시장 바’를 열었다.

제주맥주 관계자는 “한국 길거리 음식에 관심을 갖는 MZ세대가 많아진 만큼 대표적인 전통시장인 광장시장에서 팝업스토어를 진행했다”면서 “젊은층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활기를 광장시장의 모든 상인이 느끼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먹거리 노점들이 모여 있는 전집 골목을 벗어나, 시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오가는 이가 드물었다. 광장시장 중앙을 조금만 벗어나도 경기침체와 불황의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어머니의 뒤를 이어 30년째 한복집을 운영하는 윤혜경(가명)씨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장 입구 음식점들은 호황이지만 여기 있는 한복집, 이불집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 광장시장은 이미 유명한 장소가 됐지만 먹거리만 알려졌을 뿐, 외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우리 한복이나 침구를 알리려는 노력은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광장시장엔 먹거리만 있는 게 아니다. 대지면적 4만3000㎡(약 1만3000평), 건물면적 8만5000㎡(약 2만5757평)에 달하는 이곳엔 수천여 개의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특히 광장시장은 과거 한복, 침구, 포목, 구제의류 등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혼인율이 낮아지고, 결혼 때 한 벌씩 맞추던 한복마저 렌털하는 추세가 확산하면서 광장시장 한복집들도 점차 어려워졌다. 시장 건물 안쪽에 붙어 있는 ‘100년 전통 광장 한복부’라는 간판만이 옛 영광을 기억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전집 골목 상인 모두가 호재를 누리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전집 골목 한복판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김순영(가명)씨의 얼굴엔 근심이 내리깔려 있었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슈퍼를 운영했지만 지금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었다곤 하지만 물이나 음료수를 사가는 정도인 데다, 내국인 손님들의 지갑은 꽁꽁 닫혔다. 

코로나19만 끝나길 바랐던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김씨는 “코로나19만 지나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여태껏 버텼다”면서 “빚내는 것보단 낫겠지 싶어 보험이며 적금을 모두 해약하며 견뎠는데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큰손’인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회복하지 않은 것도 한계였다. 김씨는 “기념품이며 주전부리들을 팔고 있지만, 서양 관광객들은 좀체 소비를 하지 않는다”면서 “지갑을 여는 유커가 찾지 않으니 매출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커의 회복은 더디기만 하다. 매년 방한 외국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유커는 일본·미국 등에 밀린 지 오래다. 올해 1~4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258만명 중 일본인은 48만명, 미국인은 29만명을 기록했다. 유커는 25만명에 그쳤다. 외국인도 내국인도 지갑을 열지 않으니 김씨로선 당장 오늘 치러야 할 물건값이 막막하기만 하다. 그에게 광장시장의 호황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광장시장은 ‘관혼상제’의 모든 것을 판매하는 종합 상설시장으로 자리잡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광장시장은 ‘관혼상제’의 모든 것을 판매하는 종합 상설시장으로 자리잡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렇다면 광장시장에서 이어지는 종로3가의 분위기는 어떨까. 광장시장을 나와 ‘다시세운광장’을 지나 종로3가로 발길을 옮겼다. 어느샌가 외국인이나 젊은층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만이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과자 전문점, 액세서리 가게…. 지금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진 공실들이 즐비했다. 그나마 사람이 붐비는 곳은 저가 커피 전문점이었다. 주머니 가벼운 어르신들이 찾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게였다. 대로변에 나 있는 샛길을 통해 종로 먹거리 골목으로 들어섰다. 한두 사람이 겨우 오갈 수 있는 좁은 골목을 두고 수십여개 식당이 마주 보고 있었다. 그중 오래돼 보이는 보쌈집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2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했다는 김복숙(가명)씨는 “보다시피 사람이 없지 않느냐 ”며 혀를 내둘렀다. “점심이고 저녁이고 손님이 없다. 다들 돈이 없으니 지갑을 안 여는 거다. 손님은 없는데 식자재며 가스비며 안 오른 게 어딨나. 코로나19 때보다 더 힘들다.” 

이 골목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주로 일대 공구·전기 상가 상인들이다. 경기가 안 좋으니 상인들은 식당을 찾는 발길마저 줄이고 있었다. 한식 도시락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 주인 박은경(가명)씨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터진 이후론 저녁 장사를 접었고, 한때 직원까지 5명이 일했지만 지금은 남편과 둘이서 일한다. 

박씨는 “여기 상인분들이 고객인데, 그분들도 상황이 어렵다 보니 회식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면서 “점심 배달 장사만 하고 있는데, 코로나19가 끝나도 경기가 회복되는 걸 좀체 느끼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굳게 닫힌 서민들의 지갑은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치솟은 금리에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앞으로 나아질 거란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100 미만으로 꺾여버린 소비자심리지수(한국은행)가 1년째 회복하지 못하는 건 단적인 예다. 소비심리지수는 현재 경제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낸 지수다. 100 미만이면 부정적인 전망이, 100 이상이면 긍정적인 전망이 많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들로선 쓸 돈 안 쓰고 줄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 대신 도시락을 싸오는 상인들이 하나둘 늘어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넷플릭스 덕분인지 광장시장으로 몰려든 열기는 오직 그곳만의 것이었다. 시장 안쪽 골목에도 이어지는 종로3가도 활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세조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경기가 침체하면서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이나 골목상권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면서 “경제적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도 한계를 드러내면서 불황형 경제로의 진입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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