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용산전자상가 개발 계획 발표
신산업 30% 의무화 한다지만
용산 밖에 더 많은 신산업들
용산으로 들어올 기업 있나
경쟁력 없이는 어려워

서울시가 ‘용산전자상가’를 재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름하여 메타밸리 프로젝트다. 용적률 1000%를 적용해 고층빌딩을 세우고, 그중 30%는 ‘신산업’ 업체로 채우겠다는 게 서울시의 밑그림이다. 하지만 ‘신산업’ 업체를 채우려면 다른 지역에서 그들을 유치해 와야 한다. 용산은 그 정도의 매력을 갖고 있을까. 

용산전자상가는 ‘메타밸리’의 청사진이 그려진 상태다.[사진=연합뉴스]
용산전자상가는 ‘메타밸리’의 청사진이 그려진 상태다.[사진=연합뉴스]

바닥은 ‘테라조’ 무늬였다. 1980년대를 상징하는 이 복도 위엔 종이상자가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PC나 통신기기의 부품을 찾는 사람으로 가득했을 이곳은 서울 용산구에 있는 선인상가 21동이다. 부품을 찾는 고객 대신 복도를 채운 건 택배 배송을 위한 박스들이었다.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오던 손님이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나마 선인상가는 운영하는 업체들이 여전히 많았지만 도로 건너편에 있는 나진상가는 ‘철거 준비’를 대부분 끝마친 상태였다. 철거를 위한 공사 펜스에는 ‘광고물을 붙이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바로 옆 출입구로 들어가면 이곳을 떠나지 않은 몇몇 업체가 눈에 띄었지만, 활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원효상가, 나진상가, 선인상가. 흔히 ‘용산전자상가’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이곳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수산물시장이 있던 곳이다. 1980년대 들어 농수산물 시장은 가락시장으로 이전했고, 청계천과 세운상가에 있던 전자제품 판매업체들이 용산으로 터전을 옮겼다. 선인산업·나진산업 등 농수산물을 거래하던 회사들은 그대로 전자상가의 운영을 맡았다. 그렇게 나진상가, 선인상가, 원효상가가 만들어졌고, 통틀어 용산전자상가로 불렸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전자상가를 발판으로 ‘낙후한’ 용산 일대가 발전할 거라는 기대가 컸다. 공교롭게도 그 기대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6월 16일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를 용적률 1000%를 부여해 ‘메타밸리’로 재건축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용적률 1000% 중 300%엔 의무적으로 ‘신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신산업을 유치해 용산을 ‘미래 먹거리’의 산실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거였다.


서울시가 예시로 꼽은 신산업은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통신장비 제조업, ▲소프트웨어 및 디지털콘텐츠업, ▲방송업, ▲전기통신업, ▲컴퓨터프로그래밍·시스템통합 및 관리업, ▲정보서비스업 등이었다. 언뜻 봐도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산업들이다.[※참고: 여기서 말하는 신산업은 서울시가 예시로 든 분야에 국한한다.] 

문제는 이런 산업군이 용산구에 많지 않다는 데 있다. 2021년 기준 서울 사업체조사 보고서를 보면, 용산구 안에 있는 신산업의 비중은 4%를 밑돈다. 신산업이 가장 많은 자치구는 금천구(전자부품·컴퓨터 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32.5%), 강남구(소프트웨어 및 디지털콘텐츠업 17.1%, 전기통신업 17.4%, 컴퓨터 프로그래밍 시스템통합 및 관리업 12.8%, 정보서비스업 19.2 %), 마포구(방송업·15.8%)였다.

반면, 용산구 내 신산업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2020년 대비 2021년 줄어든 신사업은 소프트웨어 및 디지털콘텐츠업(350→ 329개), 전기통신업(21→20개), 컴퓨터프로그래밍·시스템통합 및 관리업(198→189개), 정보서비스업(112→108개), 방송업(13→7개)을 영위하는 업체는 줄었다. 유일하게 늘어난 건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통신장비 제조업(44→45개)이었다. 신산업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컴퓨터 및 통신장비 수리업(71→74개)도 증가했다. 

이렇게 서울시가 용산 내 ‘신산업’으로 정의한 업체는 줄었는데, 의무임대 30%를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컴퓨터 및 통신장비 수리업체가 ‘신산업’에 속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구단위계획이 결정 전까지 전문가집단의 자문을 거쳐 의무 입주할 신산업군을 결정할 것”이라면서 “다만, 컴퓨터 및 통신장비 수리업이 신산업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용산 ‘메타밸리’를 채우려면 신산업을 영위하는 업체가 더 설립되거나 다른 지역에서 업체가 이주해야 한다. 금천구·강남구·마포구 등에 둥지를 틀고 있는 ‘신산업’ 업체들이 용산에 매력을 느끼고 이전해야 한다는 건데, 그 결과를 장담하긴 어렵다.

일례로, 강남구에 있는 기업들은 IT밸리가 있는 판교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용산으로 이전해 판교와 더 멀어진다면 다른 요소에서 장점이 있어야 강남 기업들이 용산으로 이전할 것”이라며 “임대료도 높기 때문에 이를 상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용산을 떠난 업체를 ‘유턴’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수십년 동안 용산전자상가 일대의 오피스를 중개했던 한 공인중개사의 말을 들어보자. “나진상가에 있던 업체 중 30여개가 파주에 있는 지식산업센터로 이전했다. 용산에서 임대를 할 돈으로 지식산업센터를 구입해 나갔기 때문에 용산에 ‘메타밸리’가 생긴다고 해도 돌아올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작은 업체들은 살길을 찾아 용산을 떠났다. 용산전자상가 일대에 남아 있는 건 ‘다나와’ ‘컴퓨존’ 등 가전·조립컴퓨터 시장을 배경으로 성장한 업체들이 전부다. 하지만 이들마저도 구로 등 다른 지역에 사옥을 짓고 있다. 용산에 남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용산은 정말 ‘메타밸리’가 될 수 있을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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