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류성룡은 당쟁을 유발할 만한 언사를 자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특히 이순신을 두둔할 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래서 혹자는 “류성룡의 침은 종기(당쟁)를 다스리는 특효약이다”는 말까지 남겼다. 종기를 없앨 때는 말을 참아 생긴 침을 발랐던 것에 빗댄 말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여야 정치인들은 정쟁 앞에서 말을 조심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왜국 수뇌부가 반간계로 이순신을 제거하기로 결정하자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소서행장은 조선 재침공에 앞서 일단 이순신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정탐해봤다. 그 결과, 조선의 삼도 수군의
1596년 병신년. 왜국은 조선을 재침하겠단 계획을 확정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에게 혼쭐이 났던 왜국은 철저한 대비책을 세웠다. 그때 조선 조정은 ‘이순신’과 ‘원균’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고, 그 배경엔 조선왕 선조의 우매함이 있었다. 나라든 조직이든 정당이든 지도자가 무능하면 배는 산으로 간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상태일까.1596년 9월 초 책봉식을 마친 풍신수길의 왜나라는 외교적으로 국호를 인정받았다. 명·왜 강화조약은 결렬됐지만, 명나라가 ‘왜국 왕 책봉을 없던 일로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기록은 전해지
테이블 위에서 치러지는 ‘협상’은 피상적이다. 진짜 싸움은 테이블 밑에서 이뤄진다. 누가 속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이득을 취하느냐가 싸움의 핵심이다. 명나라와 왜나라는 1593년 6월의 2차 진주성 전투 이후 4년간 강화협상을 진행했다. 하지만 둘 모두 딴생각뿐이었고, 제3국인 조선은 손해만 봤다. 그만큼 대외 협상은 중요하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외국과 맞닿아 있는 한국은 지금 현명한 외교 전술을 펴고 있을까. 4년간 지루하게 이어지던 명나라와 왜나라의 강화협상은 외견상으론 풍신수길의 ‘일본 왕 책봉’이 화두였다. 명나라는
1594년 봄, 이순신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명나라에서 날아온 패문牌文(통지문)이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적을 치지 마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천하의 이순신도 어쩔 수 없었다. 명나라에 의존하는 외교정책 때문이었다. 어쩔 땐 미국, 또 어쩔 땐 중국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때와 뭐가 다를까. 힘이 없으니 ‘전략적 관계’를 택해야 한다는 우리의 오랜 외교 전술은 옳은 걸까.이순신은 1594년 2월 13일 선조의 출전 명령서를 받고 경남 창원의 저도에서 소비포 만호 이영남, 사량 만호 이여념,
1593년 5월 명나라와 왜국은 물밑 ‘강화교섭’ 과정에서 조선을 완전히 배제했다. 나라의 절반가량인 하삼도(전라도·경상도·충청도)를 왜국에 넘겨줘야 할지도 몰랐지만, 조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조선 대신들은 입으로만 대책 마련을 떠들어댔다. 3고高(고물가·고금리·고환율) 장기화로 민생은 벼랑 끝에 몰렸는데, 여전히 입으로만 ‘국민! 국민’을 외치는 어떤 사람들이 오버랩된다.조선이 이순신을 조선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기 전 부터 명군과 왜군은 ‘강화교섭’을 화두로 삼고 있었다. 명나라의 강화사절이 왜나라를 향해
1592년 9월 1일. 명나라와 왜나라가 ‘휴전’에 합의했다. 명나라든 왜나라든 전열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아쉽게도 이 합의 과정에 ‘조선’은 없었다. 요즘 말로 패싱을 당한 셈이었다. 가정이긴 하지만, 이순신의 선전이 없었다면 조선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조선의 조정은 순신을 두고 분열하기 바빴다. 그때나 지금이나 높으신 양반들은 ‘분열’이 습관인 듯하다.이순신은 부산포해전의 승전 보고서를 조정에 올리면서 별도의 장계를 올렸다. 전사한 녹도만호 정운을 이대원李大源의 사당에 함께 모셔달라는 청을 담은 장계였다. 그
이순신은 4차 출전을 앞두고 74척의 판옥선을 확보했다. 이전 출전 때보다 전선의 수를 두배가량 늘렸다. 하지만 원균은 3차 출전 때와 똑같은 7척의 판옥선만 갖고 있었다. 준비된 지도자와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민생경제가 말이 아닌 지금, 우리에겐 이순신 같은 ‘준비된 지도자’가 있을까.임진년 7월 13일. 3차 출전을 마치고 여수의 전라좌수영으로 돌아온 이순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재출전 준비에 들어갔다. 아울러 육지의 전투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왜적의 정세를 끊임없이 탐문했다. 9차례의 승리를 통
# 이순신의 함대는 무적이었다. 왜군과 아홉차례 만나 모두 이겼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왜군이든 패잔병이든 섬멸하는 과정을 신중하게 진행했다. 휘하 장수들이 “당장 공격하자”고 주장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육군과의 협조체계, 군졸의 피로 등 복합적인 변수를 감안한 결과였다.# 당신의 리더는 어떤가. 실적에 쫓겨 성급한 결정을 내리진 않는가. 현재의 국가 지도자들은 또 어떨까. 먼 미래를 보고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을까.안골포 해전에서의 승리로 왜군과의 전투에서 9전 9승을 기록한 이순신은 밤이 되자 전함대를 몰고 포구 밖 10리(1
임금은 온종일 명나라의 구원만 기다렸다. 백성이 죽든 말든 나라가 위태롭든 말든 그 생각만 했다. 그 무렵, 이순신은 해전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승전을 알아주는 조정 대신들은 없었지만, 이순신은 그 길을 운명으로 여겼다. 혹여 세상이 그때 알아주지 않았더라도 진짜 영웅은 역사에 남는다. 지금 우리의 정치인 중엔 ‘역사’에 남을 이가 있을까.제1차 금산전투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조선 관군과 의병은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전투에 나섰다. 1592년 8월 중순에는 충청도 의병장 조헌이 700명의 의병을 거느
남해군이 9월 7일까지 '노도 문학의 섬 작가창작실' 5기 입주작가를 모집한다. 이 프로그램은 2021년에 시작, 지역 문학에 활력을 주는 것을 목표로, 기성 작가 및 신진 작가에게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노도는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목재를 많이 생산하던 곳에서 유래된 이름을 가진 섬이다. 현재 면적은 0.41㎢에 17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주로 어업과 농사를 영위한다. 노도는 배로만 갈 수 있으며 일일 도선운행 횟수는 계절에 따라 6~7번이다.이 섬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처로도 유명하다. 김만중은 노도에
주력사업은 또 힘을 쓰지 못했다. 비주력사업에서 그나마 ‘작은 결실’을 맺은 게 위안을 줬다. 하지만 비주력사업이 힘 빠진 주력사업을 얼마만큼 메울 수 있을진 더 지켜봐야 한다. 이동통신 1위 업체 SK텔레콤은 과연 ‘탈통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SK텔레콤이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8일 SK텔레콤은 2분기 매출 4조3064억원(연결 기준), 영업이익 4364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0.4%·0.8% 증가하는 데 그쳤다.시장 전망치보다도 낮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가에선 SK텔레
조직의 리더는 통제해야 할 게 많다. 그중 하나는 ‘공정성’이다. 실적이나 성과를 평가할 땐 측근과 그렇지 않은 구성원을 차별해선 안 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이는 다름 아닌 이순신이다. 그는 “전공을 냉정하게 평가해 상부에 그대로 보고하겠다”는 약속을 임진왜란 내내 지켰다. 휘하 장수들이 이순신을 따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순신은 휘하 장졸들과 여러 번에 걸쳐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때마다 “적의 수급을 베는 데 힘쓰지 말고, 한명이라도 더 사살하는 데 치중하라”고 지시했다. 한건의 수급을 확보하는 시간이라면 화살로 10명
신각이란 인물이 있다. 임진왜란 때 한강을 지키던 부원수였다. 그는 왜군이 경상ㆍ충청ㆍ경기 3도를 장악하는 동안 조선 장수 중 내륙에서 승리를 얻은 최초의 인물이다. 1592년 5월 16일 양주전투에서였다. 그런데 신각은 승리를 거둔 지 3일 만에 어명을 받은 선전관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어찌 된 일이었을까.용인전투에서 5만 대군이 무너지기 앞서 조선 관군의 입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 ‘한성’의 수성대장 이양원, 한강을 지키던 도원수 김명원, 부원수 신각, 그리고 우의정 유홍 등 네 사람이 얽힌 충격적인 사건이었
“가장 효율적인 수비는 공격하는 것이다.” 이기고 싶다면 때론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거다. 이같은 전략이 필요한 건 비단 운동경기만이 아니다. 경영자도, 상인도, 군인도 ‘역발상’을 통해 경쟁자나 적을 제압할 수 있다. 임진왜란에서 순신이 ‘전투를 하지 않고도 이겼던’ 것처럼 말이다. 이번 편에선 순신의 통찰력을 옛 기록 그대로 느껴보자.사천해전에서 총상을 입은 이순신에게 휘하 장수들이 휴식을 취할 것을 권했지만, 그는 이를 마다하고 부하들과 함께 술을 나누며 전승을 축하했다. 이튿날인 임진년 6월 2일 오전 8시께, 사방으로 보
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황봉구가만히 있지 말고꿈적거려 봐, 꿈틀대며 움직여 봐.쳐다만 보지 마.멍하게 바보처럼 우두커니 서 있지 말고.찾아야 돼.우물쭈물하지 말고 부지런히 찾아봐.들어가야 돼.망설이지 말고 뛰어들어 봐.불덩이라도 물속이라도몸을 담그고 뭐라도 움켜쥐어 봐.불씨 찾아 너를 태워 봐.불 지르겠다 생각만 하지 말고불 지르고 나서 쳐다만 보지 말고.불꽃 속으로 들어가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더라도너를 재가 되도록 끝까지 태워 봐.물에 씻지만 말고몸을 풍덩 담가 봐.온몸으로 물살을 느껴 봐.살려고 발버둥 치며 헤엄을 쳐 봐.거센 물결에
검수완박이란 지상과제를 해결하겠다면서 탈당했던 의원이 다시 복당했다. 국민뿐만 아니라 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그 의원도, 그를 복당시킨 당 사람들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가 검수완박의 당위성을 인정했으니, 그의 탈당에도 문제가 없다는 궤변만 늘어놓는다. 가뜩이나 돈봉투 때문에 시끄러운데…. 이 당은 과연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까. 노량 근처에 숨어 있던 원균은 판옥선 1척을 타고 순신의 함대가 정박 중인 당포에 도착했다. 이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가 타고 온 판옥선엔 대포가 하나도 실려
2002년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이 불거졌다. 10년 후인 2012년 그 당에서 2008년 전당대회에서 오간 것으로 보이는 ‘돈봉투 사건’이 터졌다. 우연히 상대적 우위를 점한 반대편 당은 ‘부패한 보수 깨끗한 진보’란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2023년 바로 그 당에서 ‘돈봉투 사건’이 터졌다. 여기나 저기나 똑같이 부패한 정치권을 보면서 국민은 염증을 내기 시작했다. 지체 높은 정치인들은 역사의 무서움을 알기나 할까.선조는 평소에 믿어오던 류성룡을 면직시키기 난처했다. 하지만 동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전쟁이 발발했다는 서인의 주
사물이나 현상을 환히 꿰뚫어 볼 수 있어야 미래 예측이 가능하고, 또 구체적이고도 슬기로운 대응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기업인, 공직자, 정치인 할 것 없이 리더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재능이다. 이순신이 보여준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는 그의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조선의 남해 바다를 지키는 4곳의 수군 본영은 임금이 남쪽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구별했다. 따라서 가장 오른쪽이 전라우수영(해남)이고, 계속 왼쪽 방향으로 전라좌수영(여수), 경상우수영(거제)이다. 맨 왼쪽이 경상좌수영(동래)이다. 각각 이억기, 순신,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의 모습을 그 유명한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 표현한 유치환 시인. 경남 통영 출신의 시인은 남해와 포구를 보며 이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경상남도 하동은 ‘하동 팔경’을 갖고 있을 정도로 자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남쪽으로는 남해, 북쪽으로는 지리산을 끼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다양한 자연 경관을 볼 수 있는 지역이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화개장터와, 조선시대 전통 생활상을 유지하는 청학동 역시 이곳 하동에 있어 흥미로운 볼거리도 많은 지역이다.경상북도 김천에서 자란 이승하 시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태헌 한빛미디어 대표)가 “2022 출판정담”을 3회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은 ‘현장에서 분투하는 출판인들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는 행사’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후원 아래 한국출판인회의가 주관한다. 행사는 지난 9월 28일부터 11월 30일까지 3개월간 진행될 예정이다. 제1회 ‘슬기로운 마케팅생활 – 출판의 고비를 넘기다’는, 정성준 김영사 전략기획팀 팀장, 김일신 서해문집 독자본부 본부장, 이연실 어크로스 마케팅부 부장 등, 업계 관계자를 초청하였다. 어려운 콘텐츠를 독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