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종로의 자화상➋
넷플릭스 효과에 광장시장 호황
종로는 엔데믹 효과마저 ‘글쎄’
전통적 직장인 상권이지만…
소비여력 낮아진 직장인들
청년들에겐 너무나 먼 상권
상황 이런데 임대료 인상 조짐
종로의 봄은 다시 올 수 있을까

‘넷플릭스’ 효과를 누린 광장시장의 인기는 시장 밖으로 퍼지지 못했다. 광장시장을 찾은 외국인이나 젊은층의 발길은 종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종로는 여전히 어르신들과 직장인들의 상권이었다. 그렇다면 그곳 상인들의 현실은 어떨까. 넷플릭스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엔데믹(endemic·풍토병) 효과는 누리고 있을까. 더스쿠프 視리즈 종로의 자화상 두번째 편이다. 

종로 대로변엔 여전히 공실이 넘쳐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종로 대로변엔 여전히 공실이 넘쳐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어느 상권이 그렇지 않았겠느냐마는 종로 역시 코로나19로 혹독한 계절을 보냈다. 그렇다면 마스크를 벗고 일상이 회복하는 지금 종로는 어떨까. 코로나19 위기 경보 수준이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된 6월 2일, 종로 ‘젊음의 거리’를 찾았다. 

음식점과 술집이 즐비한 종로 젊음의 거리는 금요일을 맞아 저녁 장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퇴근시간이 되자 지하철로 향하는 사람들과 저녁 모임을 나온 사람들이 젊음의 거리를 오갔다. 오후 7시가 넘어서자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겹게 이어진 코로나19가 끝나고 다시 종로에 봄이 온 걸까. 이날 만나본 상인들의 속내는 달랐다. 

종로 대로변 안쪽에서 전집을 운영하는 한송희(가명)씨는 “2차 손님을 상대로 하는 장사인데 택시비 부담에 다들 일찍 귀가하니 저녁엔 손님이 없다”면서 “그나마 점심 장사로 버티고 있지만 야채가격부터 가스비까지 안 오른 게 없어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택시비는 사람들이 발길을 재촉할 만큼 올랐다. 서울 중형택시 기본요금은 지난 2월 1일을 기점으로 3800원에서 4800원으로 26.3% 인상됐다. 기본거리는 2㎞에서 1.6㎞로 줄었고, 거리요금 기준은 132m당 100원에서 131m당 100원으로 올랐다. 시간요금 기준은 31초당 100원에서 30초당 100원으로 조정됐다.

지난해 12월엔 택시 심야(오후 10시~익일 오전 4시) 요금도 올랐다. 오후 11시~오전 2시 할증률은 40%(그 외 시간은 20%)에 달한다. 택시 수급 불균형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그중 몇몇 부메랑은 애먼 상인들에게 돌아왔다. 

오른 건 택시비만이 아니다. 주류 가격도 치솟았다. 주류업체들은 지난해 각종 비용 상승을 이유로 주류 출고가를 인상했다. 하이트진로는 소주와 맥주 출고가를 각각 7.7%, 7.9%씩, 롯데칠성음료 소주와 맥주 출고가를 각각 6.0%, 8.2%씩 올렸다. 

문제는 술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4월 맥주에 부과하는 세금을 1L당 30.5원(885.7원) 인상한 만큼 주류 업체들이 언제 또다시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들지 알 수 없다. 직장인들에게 ‘퇴근 후 맥주 한잔’도 호사스러웠던 과거가 돼버린 이유다.

을지로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박승태(가명)씨는 “친구들과 맥주 한두 잔만 마셔도 몇만원이 훌쩍 넘으니 모임을 갖기도 부담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버는 돈은 그대로인데 나갈 돈은 눈덩이처럼 늘어나니 여윳돈이 없다는 건데, 이런 직장인의 애환은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505만4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 증가했다. 반면 월평균 지출은 338만5000원으로 같은 기간 11.1% 늘었다. 

특히 금리 인상에 이자비용 부담이 급증했다. 가구당 월평균 이자비용은 2021년 1분기 8만3000원에서 올해 1분기 12만4000원으로 49.3%나 늘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206.5%(OECD 기준)를 넘어섰다.

이 수치가 200%를 넘어선 건 사상 처음이다. 한국만의 독특한 ‘전세보증금’을 고려하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303.7%(한국경제연구원·2021년 기준)에 이른다. 100만원을 버는 데 갚아야 할 돈은 303만원이라는 의미다. 

종로에서 20년 넘게 맥줏집을 운영한 정현수(가명)씨도 이렇게 얼어붙은 경기를 실감하고 있다. 마스크를 벗고 만남도 자유로워졌지만 경기는 지난해만도 못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지난해 4월 사회적 거리두기(거리제한·인원제한) 해제 때 반짝하고 경기가 좋아졌지만 지금은 코로나19 때와 다를 게 없다”면서 “다들 어려우니 회식 손님만 가끔 있을 뿐 개인적인 모임을 갖는 손님은 드물다”고 말했다. 상인들 사이에서 “종로가 여느 서울 변두리만도 못하게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19 여파가 잦아들고 있지만 종로 상권의 회복은 아직 먼 이야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코로나19 여파가 잦아들고 있지만 종로 상권의 회복은 아직 먼 이야기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곳에서 13년 넘게 잡화 노점상을 운영해온 김애희(가명)씨는 “13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노점상이 90여개에 달했지만 이제 10여개만 남았다”면서 “종로 학원가가 침체하면서 거리를 오가는 젊은층이 줄었고, 당연히 노점을 찾는 발길도 끊겼다”고 말했다. 장사 개시도 못하고 집에 돌아가는 날이 허다하다고 털어놓은 김씨는 “만남의 장소였던 과거의 종로는 없어진 지 오래”라면서 쓴웃음을 삼켰다.

옛 영광을 잊은 종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건 공실률이다. 종로의 중대형 상가와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각각 9.5%, 9.7%에 이른다. 최근 공실이 약간 줄어들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서울 평균 공실률(중대형 상가 8.6%·소규모 상가 6.3%)을 웃돌고 있다. 특히 공실이 많은 대로변의 분위기는 더 침체해 있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임대문의’가 나붙은 공실을 마주했다. 그런데도 임대료는 역설적으로 상승곡선을 그릴 태세다.

이곳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한진희(가명)씨는 “임대인이 건너편 인사동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니 조만간 임대료를 올리겠다 통보한 상황”이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종로의 임대료가 지금도 높은 수준이란 점을 감안하며, 상인들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다. 종로 중대형 상가 평균 임대료(이하 1㎡당) 7만8000원으로 서울 평균 5만2200원보다 49.2% 높다. 

인근에 있는 시청(6만4500원), 을지로(5만1000원)와 비교해도 비싼 수준이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박정훈(가명)씨는 “임대료를 낮추면 건물값이 떨어질 거라는 게 임대인들의 생각”이라면서 “종로 대로변엔 6년, 10년째 비어있는 건물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종로 대로변에 매장을 낼 수 있는 건 대형 프랜차이즈뿐이다. 종로 YBM 별관이 이전한 후 1년 넘게 공실이던 자리엔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 ‘커피빈’이 개점을 준비하고 있다. 

젊고 색깔 있는 청년 창업가들에게 종로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곳’이다.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청년 창업가들이 몰려들어 ‘힙지로’란 별칭을 얻은 을지로와 너무도 대조적이다. 

정은상 부동산도서관 대표는 “작은 인쇄소들이 모여 있는 을지로는 임차면적이 작은 단일 건물인 데다, 임대료도 종로보다 저렴하다”면서 “반면 종로는 젊은층이 창업하긴 어려운 동네”라고 지적했다. 독특한 색깔이 없는 동네엔 젊은층이 오지 않고, 정작 그곳에 머무는 직장인은 돈 쓸 여유가 없다. 종로의 봄은 언제쯤 다시 올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