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분산에너지법에도 송전망 타령
전력 자급자족 위한 정책 필요
미래 방향성 따라 정책 일관돼야

전기가 넘치는 지역에서 부족한 지역으로 ‘전기’를 보낼 수 있는 고속도로를 깔겠다고 하면서,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직접 소비하는 분산형 전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중앙집중형인 전기고속도로와 분산형 전력체계는 정책 근간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 두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능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분산형 전력체계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중앙집중형 전력체계 중심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는 분산형 전력체계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중앙집중형 전력체계 중심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사례➊ 전기고속도로 = “태양광발전소의 전기가 과다 생산돼 값싼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못 쓰고 있다.” 올해 들어 태양광발전소가 밀집한 호남지역에서 전기가 과잉 생산돼 산업통상자원부가 이 지역 태양광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의 출력을 제한하자 나온 비판이다. 일부에선 “남아도는 전기를 수요가 많은 수도권으로 보내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송전망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니나 다를까. 산자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지난 5월 전기위원회를 통해 서해안(해상)에 초고압 직류송전(HVDC)망인 일명 ‘전기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내용을 담은 ‘제10차 장기 송ㆍ변전 설비계획’을 수립했다. 

#사례➋ 분산에너지법 = 지난 5월 25일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하 분산에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의 취지는 말 그대로 기존의 중앙집중형 전력체계를 지역별로 분산하는 체계로 바꾸자는 거다. 현재의 전력체계는 발전소를 만들기 쉬운 해안을 중심으로 대형 발전소를 짓고, 여기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하는 구조다. 대형 발전소와 장거리 송전망이 필수다.

다만 누구도 내가 사는 곳 주변에 대형 발전소나 고압의 송전탑이 들어오는 걸 원치 않는다. 이 때문에 그걸 만드는 비용이 많이 들고, 사회적 갈등도 크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분산에너지법이다. 각 지역에서 전력을 생산해 직접 소비하는 체계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기본 정의를 살펴봤으니, 앞서 언급한 사례 두개를 다시 보자. 전자는 중앙집중형이고, 후자는 분산형이다. 두 정책 모두 윤석열 정부(산자부)가 추진하고 있는데, 목표는 정반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지속적으로 분산형 전력체계 구축을 주장해온 에너지전환포럼의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분산형 전력체계는 기존의 중앙집중형 전력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분산형 전력체계에선 원전을 육성하겠다는 것도, 송전망을 더 만들겠다는 것도 모순이다.[사진=뉴시스]
분산형 전력체계에선 원전을 육성하겠다는 것도, 송전망을 더 만들겠다는 것도 모순이다.[사진=뉴시스]

예컨대 중앙집중형에서는 수백개의 대형 발전소와 고압 송전망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분산형은 지역별 전력을 자급자족하는 게 기본이어서 다양한 에너지원을 쓰는 소형 발전소들을 지어야 하고, 그 발전소를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무수한 이해관계 조정과 설득이 필요하고, 정부의 역할도 늘어난다. 정부가 기존의 체계를 유지하면서 분산형 전력체계를 보조 수단처럼 사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듯하다.” 정부가 중앙집중형 전력체계와 분산형 전력체계가 양립 가능하다고 착각한 게 아니냐는 거다. 

그렇다면 심각한 문제다. 미래 방향성은 분산형 전력체계로 잡아놓고, 실제로는 중앙집중형 전력체계를 강화하면 정책 목표를 달성하긴커녕 혼선만 빚을 공산이 크다. 기존과 다른 분산형 전력체계의 중요한 특징을 따져보면 왜 이런 우려가 나오는지 살펴볼 수 있다. 

분산형 전력체계의 가장 큰 특징은 언급한 것처럼 전력 자급자족이다. 당연히 수요와 공급이 맞춰져야 하지만, 기존의 중앙집중형 전력체계 상황에선 쉽지 않다. 광역지자체별 전력자급률(2021년 기준)을 보면, 인천(243.0%), 충남(227.9%), 부산(191.5%), 전남(184.7%), 경북(183.9%), 강원(182.2%), 경남(122.8%) 등 대형 발전소가 많은 지역은 높게 나타난다. 반면 대전(1.9%), 광주(7.2%), 충북(7.8%), 서울(11.3%), 대구(18.2%)는 자급률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 자급자족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은 두가지다. 전력자급률이 낮는 지역에 공급을 늘리거나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에 수요를 분산하는 거다. 공급을 늘린다는 건 인구 밀집 지역에 발전소들을 더 지어야 한다는 건데, 그 자체로 주민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수요를 분산한다는 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를 지방으로 보내는 거다. 정부가 강압적으로 이전을 명령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다. 공장이나 데이터센터에 그만큼의 유인책을 줘야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기요금을 달리 책정하는 거다.

자급률이 높은 지역은 전기요금을 싸게, 자급률이 낮은 지역은 전기요금을 비싸게 책정해 전기에 민감한 업종일수록 선택의 폭이 좁아지도록 전기요금 체계를 설정하는 거다. 지금과 같은 천편일률적 요금제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분산에너지법에 전기요금을 달리 책정할 수 있는 근거가 포함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전기요금의 책정기준을 바꾸는 일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해야 한다. 섣불리 기준을 세우면 현장에서 혼선이 생길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산형 전력체계를 구축한다는 건 기존의 체계가 완전히 뒤바뀐다는 의미다. 앞에선 생산 문제만 거론했지만, 전력 자급자족이란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력판매체계도 바꿔야 한다. 한전이 전력판매를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라, 지역별로 전력판매자가 존재하는 구조여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종합해볼 때, ‘원전(소형 원전 포함)을 늘려야 한다’ ‘송전망을 더 늘려야 한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 적용은 불합리하다’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를 통해 전력 수급을 조절하겠다’는 등의 주장들은 분산형 전력체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원전 확대’를 외치고 중앙집중적인 전기고속도로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이 전력체계의 ‘기본’을 알고 있기는 한 걸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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