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비상시에 쓰라고 배정된 예비금
매년 일상 경비로 갖다 쓴 국회
국회 예비금 절반 이상은 특활비
특활비 내역 숨기려 예비금 썼나
경비와 특활비 본예산에 편성해야

예비비라는 예산 항목이 있다. 특별한 상황이 생겼을 때 혹은 기존 예산이 모자라 예산을 좀 더 끌어와야 할 때 쓰는 돈이다. 헌법상 독립기관(국회ㆍ대법원ㆍ헌법재판소ㆍ중앙선거관리위원회)은 이를 예비금이라는 항목으로 부른다. 그런데 독립기관이 이 예비금을 원칙에 맞게 쓰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회가 특히 의문이다. 

국회는 본예산에 특수활동비를 편성하고 있지만, 본예산보다 예비금에서 더 많은 특수활동비를 쓰고 있다.[사진=뉴시스]
국회는 본예산에 특수활동비를 편성하고 있지만, 본예산보다 예비금에서 더 많은 특수활동비를 쓰고 있다.[사진=뉴시스]

‘필요할 때 쓰기 위해 미리 마련하거나 갖춰 놓음.’ 예비豫備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다. 아직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필요한 상황이 생길 것을 대비해서 준비해두는 행위다. 이런 예비 상황을 위해 마련해 놓은 돈이 바로 예비비다.

정부도 예비비를 둘 수 있는데, 국가재정법(제22조 제1항)은 “정부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또는 예산초과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일반회계 예산 총액의 100분의 1 이내의 금액을 예비비로 세입세출예산에 계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만이 아니다. 국회,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상의 독립기관도 ‘예비금’이란 예산 항목을 두고 있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예산을 운용하기 때문에 예비비 성격의 예비금도 각 기관마다 별도로 편성해서 운용한다.

‘독립기관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개별 법률에 따르고 있는 거다. 국회는 국회법 제23조, 대법원은 법원조직법 제82조,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제11조, 중앙선관위는 선거관리위원회법 제18조에 예비금 편성 근거를 두고 있다. 

예비금은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돈인 만큼 마구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독립기관도 마찬가지다. ‘2023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독립기관의 장’은 예비금이 필요한 이유와 금액 등을 명확히 밝힌 ‘예비금사용계획명세서’를 작성해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참고: 국가재정법상 ‘독립기관의 장’이란 국회의 사무총장,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장, 헌재의 사무처장, 중앙선관위의 사무총장을 말한다. 이들이 예산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칙적으로는 예비금의 특정 용도별 금액이 신청 총액의 50%를 초과해서도 안 된다. 기재부 장관은 예비금사용계획의 적정성을 점검해 배정하고, 이를 연례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상적ㆍ경상적 경비로 집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 예비비는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독립기관의 예비금은 별도의 공개 절차가 없다.[사진=뉴시스]
정부 예비비는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독립기관의 예비금은 별도의 공개 절차가 없다.[사진=뉴시스]

국가재정법과 예산 운용지침 등을 종합해서 볼 때, 예비금의 사용 원칙은 크게 3가지로 정리된다.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해야 하고,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급함이 있어야 하며, ▲예산을 보충하는 수단으로서 일상 경비처럼 사용해선 안 된다.

그럼 독립기관들은 예비금을 이 기준에 맞게 사용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국회의 예비금이 엉망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선 지난 2022년 결산 기준 독립기관 4곳에 배정된 예비금 예산현액(실제 사용 가능한 예산)은 총 18억4000만원이었다. 국회에는 13억원, 대법원에는 2억8000만원, 헌재에는 2500만원, 중앙선관위에는 2억3500만원을 책정했다. 예비금을 집행한 곳은 국회와 중앙선관위였고, 대법원과 헌재는 집행하지 않았다. 국회는 13억원 중 11억9100만원을, 중앙선관위는 2억3500만원 전액을 썼다. 

감시 피하려 예비금 갖다 썼나 

중앙선관위는 예비금을 어디에 썼을까. 모두 재해보상금 지급에 썼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위촉된 공정선거지원단원이 뇌출혈로 쓰러졌고, 그 당사자가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재해보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중앙선관위가 패소했기 때문이다. 예측불가능성과 시급성, 예산 보충성 등 예비금의 지급 기준에 맞게 사용한 셈이다. 

국회는 어떨까. 국회는 11억9100만원 중 6억5000만원(54.6%)을 특수활동비로 사용했다. 그 외 3억2500만원(25.9%)은 업무추진비로, 2억3200만원(19.5%)은 직무수행경비로 사용했다. 언뜻 봐도 예비금의 용도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첫째,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직무수행경비는 직접적인 사업비가 아닌 간접비다. 쉽게 말해 어떤 활동을 하는 데 드는 경비, 예컨대 밥값이나 차비를 예비금으로 충당했다는 거다. 특히 업무추진비의 경우, 사우나 비용이나 술값으로 쓰였다는 지적을 받으며 논란이 많았던 예산이다. 비상금이라 할 수 있는 예비금을 이런 경비로 쓰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다. 

둘째, 국회 특수활동비는 이미 본예산에 9억8000만원이 편성돼 있다. 그런데 예비금에서 6억5000만원을 더 갖다 쓴 거다. 정부기관 가운데 예비비를 특수활동비로 쓰는 곳은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국가정보원을 제외하곤 없다.

게다가 지난 5년간(2018~2022년) 국회의 특수활동비 예산 현황을 살펴보면, 국회는 지금까지 예외 없이 예비금을 특수활동비로 끌어다 썼다. 2018년 4억8500만원, 2019년 5억1900만원, 2020년 6억원, 2021년 6억3700만원, 2022년 6억5000만원으로 예비금 사용액도 점점 커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9년부터 본예산의 특수활동비 예산이 9억8000만원으로 고정돼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본예산보다 예비금 비중이 더 컸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국회의 예비금 지출은 예비금 사용 원칙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다고 볼 수도 없고, 시급한 지출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아서다. 더구나 매년 연례적으로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건 명백한 규정 위반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 예비비는 감사원의 ‘국가결산검사보고’와 정부의 ‘예비비사용총괄명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국회와 같은 독립기관은 별도의 공개 절차가 없어서 예비금을 제대로 썼는지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 국회가 이런 점을 이용해 특수활동비를 본예산에 편성하지 않고 예비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만약 이런 의혹제기가 불편하다면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직무수행경비를 원칙에 맞게 예비금이 아닌 본예산에 편성하면 될 일이다. 

송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onjongpil@gmail.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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