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視리즈] 2023년 직장인별곡➊
팬데믹 기간 인기 끈 ‘좋좋소’
중기 현실 잘 그려냈다는 평가
한국 직장인 비슷한 애환 겪어
2019~2022년 코로나 국면서
직장인 삶 어떻게 달라졌을까
코스닥 300대 기업 3년 분석

팬데믹이 끝났지만 직장인들의 시름은 현재진행형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팬데믹이 끝났지만 직장인들의 시름은 현재진행형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2019년 직장인 보고서 

한 직장에서 5.63년을 다니고, 연봉은 5098만원(세전)이다. 윗분들이 평균치를 바짝 올려놔서 그렇지, 이것저것 떼고 나면 지갑이 휑해진다. 어쨌거나 한푼도 쓰지 않고 5.63년 동안 돈을 모으면 3억37만원, 서울지역에 아파트 한채 마련할 수 없다. 이곳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2018년 말 기준)은 7억1972만원이니까…. 

그럴싸한 집이라도 한채 마련하려면 돈을 아껴야 하는데, 그러기도 쉽지 않다. 김밥도, 자장면도, 햄버거도, ‘값’이 매겨진 식음료란 식음료는 모조리 올랐다. 하다 하다 1만원이 넘는 냉면까지 숱하니, 이 삼복더위에 마음을 식히기도 어렵다.  


# 고통의 터널 

더스쿠프가 2019년 여름에 그린 코스닥 300대 기업에 종사하는 직장인의 자화상自畵像이다. 2019년이면 코로나19가 몰려오기 전이다. 그때 누군가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려야 외출이 가능한 세상이 온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았을 거다.

또다른 누군가가 ‘모든 식당의 영업시간이 밤 9시면 끝나고, 저녁 술자리에 4명을 넘으면 과태료를 물린다’는 얘기를 흘리면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얘기라며 비웃음을 던졌을 거다. 지금은 일상처럼 쓰이는 팬데믹, 언택트 같은 말도 없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고통의 터널을 실제로 통과했고, 지금은 ‘팬데믹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란 몹쓸 바이러스가 세상을 지배했던 그때, 우리나라 직장인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 2023년 직장인 보고서  

한 직장에서 5.72년을 다니고, 연봉은 6043만원(세전)이다. 윗분들이 평균치를 바짝 올려놔서 그렇지, 이것저것 떼고 나면 지갑이 휑해진다. 어쨌거나 한푼도 쓰지 않고 5.72년 동안 돈을 모으면 3억4587만원, 서울에 아파트 한채 마련할 수 없다. 이곳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2022년 말 기준)은 10억6759만원이니까…. 

그럴싸한 집이라도 한채 마련하려면 돈을 아껴야 하는데, 그러기도 쉽지 않다. 김밥도, 자장면도, 햄버거도, ‘값’이 매겨진 식음료란 식음료는 모조리 올랐다. ‘점심’과 ‘물가 상승’을 합친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하다 하다 1만8000원이 넘는 냉면까지 숱하니, 이 극단 폭염에 마음을 식히기도 어렵다.  

그 때문일까. 직장인은 오늘도 구슬픈 ‘별곡別曲’을 입에 걸친다. ‘그래도 희망이 있겠지…’란 기대감을 애써 품지만,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코스닥 300대 기업에 종사하는 직장인의 자화상自畵像을 그려봤다. 2013년, 2019년에 이은 세번째 그림이다. 이번에도 ‘별곡’이란 타이틀을 붙였다. 언제쯤 우린 ‘희망가’를 부를 수 있을까.  팬데믹 후 펼쳐진 2023년 직장인 별곡 그 첫번째 편이다. 

2023 직장인 별곡엔 하루하루가 치열한 직장인들의 고충과 애환이 담겼다.[사진=연합뉴스]
2023 직장인 별곡엔 하루하루가 치열한 직장인들의 고충과 애환이 담겼다.[사진=연합뉴스]

2021년 최고의 유튜브 콘텐츠 중 하나는 쇼트폼 웹드라마 ‘좋좋소(좋소 좋소 좋소기업)’였다. 하루에도 인기 콘텐츠가 몇천편씩 쏟아져 나오는 유튜브 시장에서도 대부분의 회차가 100만뷰, 200만뷰를 넘길 만큼 인기였다. 지난해엔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에 초청받기도 했다. 국내 웹드라마 사상 최초의 쾌거였다.

‘좋좋소’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중소기업 재직 경험이 있는 이들은 “보고 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온다”는 감상을 남길 만큼 열악한 중소기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주인공은 당일도 아니고 ‘바로 지금 면접에 올 수 있냐’고 묻는 황당한 중소기업 ‘정승 네트워크’에 취업한 사회초년생이다. ‘좋좋소’는 그가 취업 전선에서 겪은 다양한 난관을 다룬다. 인성 나쁜 차장, 무능력한 과장, 회사에 관심 없는 대리, 회사에서 게임만 하는 사장 조카이자 이사가 주인공의 동료들인데, 주인공과 직원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에피소드들이 숱하게 펼쳐진다. 

가령, 근로기준법상의 규제 조항을 피하기 위해 사업자를 쪼개 5인 미만 사업자인 것처럼 꾸미거나, 근로계약서를 대충 쓰는 식이다. 오너는 회사의 중요한 경영 결정은 즉흥적으로 내리고 법인카드를 사적인 용도로 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올라운드 멀티플레어인 ‘이 과장’이란 사람이 온갖 잡일을 도맡는 등 몸과 마음을 바쳐 회사가 명맥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역시 ‘부품 취급’받는 건 매한가지다. “왜 이런 회사에 다니냐”는 질문을 받은 이 과장이 “어딜 가든 정승네트워크 같다”고 한탄하는 장면은 명대사로 남기도 했다. 

‘좋좋소’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던 시기는 2021년. 공교롭게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세를 떨치던 때다. ‘좋좋소’의 시리즈처럼 3년 4개월간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은 ‘유리지갑’으로 불리는 임금 노동자의 삶을 흔들었다.

연봉이 높고 복지도 좋다는 대기업을 다니는 직장인이야 다소 형편이 나았겠지만, 이들의 비중은 전체 기업 종사자의 18.7%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종사자 81.3%의 삶은 ‘좋좋소’ 속 그들처럼 고달팠을지 모른다. 이는 “우리 회사 CCTV를 보는 것 같다”며 ‘좋좋소’가 흥행한 배경과 맞닿아 있다. 

더스쿠프가 우리나라의 중견ㆍ벤처기업이 상장해 있는 코스닥 기업의 근무여건 변화를 추적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팬데믹을 넘어 엔데믹(endemicㆍ풍토병)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 코로나19 국면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분석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2019년과 2022년의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코스닥 300대 기업의 근무여건을 비교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표면적으론 팬데믹 기간 직장인의 처우가 괜찮아졌다. 팬데믹이 휩쓸기 전 2019년 말 300개 기업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5.28년, 평균연봉은 5299만원이었다. 

몹쓸 바이러스의 공포가 수그러든 2022년 말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평균 근속연수는 5.72년으로 2019년 대비 0.44년 길어졌다. 이 기간 300대 기업의 평균 직원 수가 늘었다는 점(2019년 414명→2022년 465명)을 고려하면 실제 회사를 버티는 직원들이 그만큼 많았다고 풀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직장인 대부분이 버티고 또 버티면서 팬데믹이란 긴 터널을 통과했단 거다. 

이렇게 버텨서 얻는 성과가 적었던 것도 아니다. 2022년 말 평균연봉은 6043만원으로 팬데믹 전과 비교해 14.0% 증가했다. 한달에 62만원가량 더 쓸 수 있게 된 셈인데, 이 기간(2019~2022년) 소비자물가상승률(8.2%)보다 폭이 컸다.

자연스레 평균 근속연수만큼 일을 해서 손에 쥘 수 있는 돈(총괄수익)도 2억7998만원(2019년)에서 3억4587만원(2022년)으로 23.5% 증가했다. 총괄수익의 앞자리 숫자가 바뀔 만큼 변화가 컸다는 건데, 언급했듯 이는 ‘표면적인 결과’에 불과하다. 

속을 들여다보면 이 통계가 민낯을 드러낸다. 코스닥 300대 기업 중에서도 평균 근속연수가 줄어든 기업은 88개, 평균임금이 감소한 곳은 64개에 달했다. 총괄수익이 줄어든 기업도 71개나 있었다. 이중 27개 기업은 평균 근속연수와 평균연봉이 모두 2019년 대비 감소했다. 업황이 좋았던 몇몇 기업이 전체 평균치를 끌어올렸단 얘기다.

경기침체 장기화, 고물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대출이자 증가 등 민생을 괴롭힌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통계라는 점도 한계다. 이런 전제를 깔고 코스닥 300대 기업의 평균 근무여건으로 살아가는 가상의 직장인 A씨와 함께 통계의 이면을 읽어보자. 

‘좋좋소’는 한국 중소기업의 현실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진=왓챠 제공]
‘좋좋소’는 한국 중소기업의 현실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사진=왓챠 제공]

■1막 : 직장인 = A씨는 ‘팬데믹 쇼크’를 견디며 근속하는 데 성공했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코스닥에 상장할 만큼 역량 있는 중견회사였다. 그새 연봉까지 늘었으니 대견하다고 자축할 만한데, 정작 A씨의 고민은 깊기만 하다. 무주택자인 A씨가 3년 전 받던 연봉으로 집을 샀다면 훨씬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 8억2722만원(2019년 말ㆍ한국부동산원)이었다. 당시 5299만원의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았다면 15.6년이 걸렸을 터였다. 그런데 연봉이 6043만원으로 오른 2022년엔 17.6년을 모아야 한다. 그사이 서울 집값이 10억6759만원으로 훌쩍 뛰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포기하고 수도권으로 눈을 돌려봐도 마찬가지였다. 2019년의 평균연봉으로 수도권 집을 사는 데 필요한 기간은 9.4년이었는데, 2022년엔 11.3년으로 늘어났다. 이 기간 수도권 집값의 상승 폭도 상당했기 때문이다(5억1869만원→6억8682만원). 

처음엔 ‘영끌’로 집을 산 직장 동료가 마냥 부러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그가 집을 살 땐 ‘제로’였던 기준금리가 이제는 3.50 %로 인상됐다. 팬데믹 전엔 3% 수준에 불과했던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상단은 2022년 말 연 8%대에 육박했다. 무주택자든 유주택자든 고충이 없는 건 아니란 얘기다. 

내집 마련은 월급쟁이 직장인에겐 일생일대의 가장 큰 숙제다. 입지와 매입 시기, 매매가, 금융 상환 계획 등 따져볼 게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인지 A씨는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다.

언급했듯, A씨의 3년간 연봉 증가율은 14.0%로 소비자물가 상승률(8.2%ㆍ2019년 대비 2022년 기준)을 웃돌았는데도 그렇다. 대표적으로 A씨의 점심 메뉴는 단출하다. 구내식당이 짜준 식단이거나 가벼운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직장인에게 맛있는 점심은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요, 직장 생활의 낙인데도 A씨는 오늘도 한끼 식사를 저렴하게 해결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식품 물가 상승으로 외식은 물론, 장을 보는 데도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에 맞서기 위한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책이 경제 위기를 넘기는 데 일조했지만, 시장에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중에서도 외식이나 식품 같은 생활물가의 상승률은 더 두드러졌다. 

일례로, 통계청의 생활물가지수 중 식품지수는 지난 3년간 14.7%나 오르면서 A씨 연봉 상승률을 웃돌았다. 같은 기간 외식물가지수는 11.5% 상승하면서 A씨의 연봉상승률보다 낮았지만, 여기에 현실이 제대로 반영됐는지는 의문이다.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들의 점심값 지출이 늘어났다.[사진=연합뉴스]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들의 점심값 지출이 늘어났다.[사진=연합뉴스]

KB국민카드가 개인ㆍ신용ㆍ체크카드 매출 빅데이터를 이용해 서울 5개 업무지구 직장인의 소비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의문이 더 깊어진다. KB의 소비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요 업무지구에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월 23만9000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상반기(20만4000원) 대비 17.1%나 늘어난 수준이다.

A씨는 통계청이 발표한 공식통계보다 훨씬 더 극심한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ㆍ런치+인플레이션)’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처한 현실도 거의 비슷하다. 

물론 모든 직장인의 현실이 이렇게 팍팍하진 않을 거다. 이른바 ‘팬데믹 특수’로 일부 업종과 직장인은 축배를 들었던 반면, 실적이 차갑게 식은 업종도 있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엔데믹으로 전환하면서 처지가 180도 뒤바뀐 곳도 있었다. 이렇듯 업종별로 엇갈린 희비는 ‘2023년 직장인 별곡’ 두번째 편에서 자세히 알아보자.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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