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3년 5월 명나라와 왜국은 물밑 ‘강화교섭’ 과정에서 조선을 완전히 배제했다. 나라의 절반가량인 하삼도(전라도·경상도·충청도)를 왜국에 넘겨줘야 할지도 몰랐지만, 조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조선 대신들은 입으로만 대책 마련을 떠들어댔다. 3고高(고물가·고금리·고환율) 장기화로 민생은 벼랑 끝에 몰렸는데, 여전히 입으로만 ‘국민! 국민’을 외치는 어떤 사람들이 오버랩된다.조선이 이순신을 조선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기 전 부터 명군과 왜군은 ‘강화교섭’을 화두로 삼고 있었다. 명나라의 강화사절이 왜나라를 향해
만다꼬김일태만다꼬 씰데없이 너그 아부지는 얘기를 해가꼬바뿐 아를 댕기가구로 맹그노묵을 기 쌨는데 고기는 만다꼬 사 왔노걍 오지작년에 산 것도 아죽 때도 안 탔는데옷은 또 만다꼬 사 왔노하루 이틀 된 것도 아인데나이들마 다 쪼매쓱 아픈 긴데만다꼬 전화해가꼬아슴찬쿠로잘난 아들 얼굴 보고 맛난 거 묵고 항께좋기는 좋구마는만다꼬ㅡ김일태ㆍ성선경, 『여기, 창녕』(수우당, 2023) 어제 날짜로 소개하고 평을 썼던 시가 가족해체 현상을 담은 시라서 오늘은 가족 간의 정을 다룬 시를 다뤄볼까 한다. 이 시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전화상으로
조선 대신들이 ‘평양을 사수하겠다’는 백성과의 약속을 저버린 채 도망칠 궁리를 하자, 류성룡이 일침을 놓았다. “한번도 싸우지 않고 왜군에 평양을 내주면 명나라가 의심할 것이다.” 그러자 몇몇 대신은 ‘그냥 명나라에 싸웠는데 졌다고 거짓보고하면 그만이지 않느냐’며 반박했다. 이런 ‘거짓 인생’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지금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선조는 5월말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자마자 내심 평양성을 버릴 결심을 했을지도 모른다. 류성룡의 만류로 여전히 평양성에 버티고 있었지만, 은밀히 예조참의 노직
“평양을 버리지 않겠다.” 선조는 백성 앞에서 당당하게 약조했지만, 사실 명나라란 ‘뒷배’를 믿은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명나라가 조선을 돕겠다는 의사를 내비치지 않자, 대신들이 먼저 동요했다. 후방에선 이순신이 승전고를 울리고 있었지만, 높으신 나리들은 평양을 떠날 궁리만 하고 있었다. 참으로 고위직이란 양반들의 무책임함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류성룡은 수성대장 윤두수에게 ‘이일이 또 술만 먹고 있으니, 빨리 영귀루로 출발하라고 영令을 내리시오’라고 재촉했다. 명령을 받은 이일은 그제야 군사를 거느리고 함구문을 떠
1592년 5월 개성으로 도망친 선조는 ‘임진강’을 사수하라면서 신할, 유극량, 권징, 한응인 4명을 그곳에 배치했다. 그런데 이들 중 적임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결국 왜군은 임진강을 돌파했다. 한편에선 이들 4명의 실패라고 말하지만, 오합지졸을 그곳에 배치한 권력자의 잘못된 판단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지금 우리의 권력자는 선조와 달리 진짜 인재를 선별해 옆에 두고 있는 걸까. 신할은 용맹한 지도자이긴 하지만 공명심公明心보단 공명심功名心이 많은 인물이다. 유극량은 용기는 뛰어나나 통찰이 빈약하고, 경기감사 권징은 전투에 문외한인
강서구 마곡동에 자리잡은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는 5월 9일, 개관 3주년 기념행사로 남북하나재단 주관 탈북 시인 봉순이의 북 콘서트가 열렸다. 사전행사로 탈북 예술인 문성광의 멋진 색소폰 연주가 있었다. 최근에 천년의시작을 통해 시집 『삶이 나에게』를 출간한 탈북 작가 봉순이는 이 행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얼굴을 공개했지만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았다. 최초우 배우가 낭랑한 목소리로 봉순이의 시 3편을 낭송하면서 북 콘스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1987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나 2003년에 탈북, 2005년에 대한민국으
큰 산불이 났다. 소방당국과 유관부처, 그리고 공무원이 산불의 진화하기 위해 분투했다. 그런데 정작 지자체의 장은 그 시간에 골프 연습을 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산불은 진화됐지만 여론은 성난 마음을 감추지 않고 표출했다. 지도자의 자질은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는 법이다. 전쟁 와중에 한양을 떠난 선조와 화마가 덮친 와중에 골프를 치고 술자리를 가진 그들이 뭐가 다르던가. 왕을 지켜야 할 고위 공직자들은 물론 군사들까지 모두 도망쳤다는 소식에 선조가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장계가 하나 올라왔다. 목숨을 내건 전쟁터에서 요리조리 피해 다니며
임진왜란 때 신립의 전사戰死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육전에 능한 왜군의 전투력을 얕잡아봤다가 굴욕적인 패전을 맛봤기 때문이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일 텐데, 섣불리 응전하다가 화를 입었다. 최근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을 강제동원했다는 논란을 희석하는 내용을 골자로 삼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의 검정 결과를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기류를 과연 알았을까.도순변사 신립은 각 도에서 차출한 병마 8000기를 거느리고 의기당당하게 충주성 북쪽 단월역丹月驛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일의 눈물 섞인 호
정부가 최근 발표한 일제 강제 동원 피해 배상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쪽에선 굴욕외교라 칭하고, 다른 한쪽에선 적절한 해법이라 칭송한다. 어떤 ‘안案’이든 의견이 엇갈리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의견을 표출하는 방법은 상식적이어야 한다. 배상안을 두둔하면서 “친일파가 되겠다”는 말을 내뱉은 한 지자체 장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다.맹장 이일의 출전 소식에 들끓었던 서울 한성의 민심은 한풀 꺾이는 듯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밀양에 이어 경주까지 함락됐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민정과 군정을 총괄해야 했던
죄가 없으면 두려울 것도 없고, 두려움이 없으면 당당하게 마련이다. 이순신이 그랬다. 젊은 시절 그는 수없이 많은 의심을 받았지만 언제나 당당했다. 모반에 연루된 누군가의 집에서 자신이 쓴 서신이 발견됐을 때에도 “안부를 묻는 편지가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라면서 되레 호통을 쳤다. 얼마 전 검찰에 출두한 야당 대표에게 이런 기백이 있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든다. 이순신 리더십, 아홉번째 편이다. 정읍현감과 태인현감을 겸임하던 시절에 전라도사 조대중曺大中이 서신으로 순신에게 안부를 물어왔다. 조대중의 호는 정곡鼎谷으로 어질고 반듯한
참 이상하다. 대형 참사가 터졌는데, 상부 사람들은 온전하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만 수사를 받거나 구속된다. 현장 관계자에게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잘못이 있는 건 아닐진대, 왜 이런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걸까. 고위 공직자의 무고와 책임 회피에 벼랑에 몰렸던 이순신을 통해 그 이유와 답을 찾아보자. 함경도 병마사 이일은 순신에게 ‘패전사유를 써서 올리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억지 자백서를 받아 조정에 패전했다고 보고한 근거로 내놓을 심산이었다. “제가 녹둔도를 수비하는 군사가 적은 것을 걱정해 증병해 달라고
집권당의 대표는 누가 될까. 당심을 넘어 민심이 반영될까. 답은 ‘글쎄’로 수렴한다. 집권당의 핵심 요직을 차지한 이들이 당심이나 민심이 아닌 권력자의 마음을 좇고 있다는 의문이 곳곳에서 제기돼서다. 더 큰 문제는 측근이란 사람들이 권력자가 진짜 민심을 읽을 수 있도록 돕고 있느냐다. 통찰ㆍ열정ㆍ소통의 리더 이순신 7편을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과 현 정치권의 상황을 살펴봤다. 북병사 김우서는 일개 진영鎭營의 변방 장수인 이순신이 여진족 울지내를 생포한 공을 세운 것을 시기했다. 조정에 이런 내용의 장계狀啓를 올렸다. “이순신
정치는 협상의 장이다. 여야가 충돌하고 타협하면서 나랏일을 처리하는 게 바로 정치다. 그래서 정치인은 똑똑해야 한다. 때론 전략적으로 거래를 할 줄 알아야 하며, 때론 비수를 꽂을 줄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여야는 둔해 보인다. 전략이 없으니 협치가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맡겨도 되는 걸까.이순신이 차고 다니던 화살통은 그의 활솜씨만큼이나 눈길을 끌었다. 용과 봉이 조각된 것으로 그에겐 보물과 다름없었다. 골동품을 좋아했던 당시 우의정 유전柳塡은 활터에서 우연히 순신의 활 쏘는 모습을 구경하는데
거대 야당 대표를 둘러싼 의혹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어느 장관의 해임 문제도 점입가경이다. 여야는 예산안까지 처리를 미루면서 대치하고 있다.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해’라는 말을 던지는 여야 정치권에 정말 ‘민생’이란 단어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들에게 ‘청백리 사상’ 따위를 기대하는 것도 이젠 무리일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이순신 같은 지도자는 없는 걸까. 통찰·열정·소통의 리더 이순신 네번째 편이다. 약관의 나이에 경전의 깊은 뜻을 이해하며 통찰력을 키워 온 이순신은 진작에 무관 공직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9세 무렵 금강
지난 28일 은평구가 주최하는 제6회 이호철 통일로문학상 본상 및 특별상 수상작가 기자회견이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분단문학의 대표 문인 故 이호철 작가를 기리고 그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2017년 은평구에서 제정한 상이다. 매년 국적, 언어와 상관없이 인종, 차별, 폭력, 전쟁 등 문제를 문학적 실천으로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작가에게 상을 수여한다.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故 이호철 작가는 6.25 전쟁 중 월남하여 1955년 ‘문학예술’에 단편소설 ‘탈향’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지난 달 25일, 은평구가 주최하는 제 4·5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기자회견이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은 은평구에서 50년 동안 작품활동을 해온 문인, 故이호철 작가를 기리기 위해서 2017년 은평구에서 제정한 상이다. 이호철 작가는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한국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이러한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첫 작품 「탈향」을 집필하여 대표적인 분단작가로 떠올랐으며,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아 10여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이호철 작가의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국내
남북문학예술연구회에서 주관하고 통일부에서 후원하는 2021년 가을 학술대회가 지난 10월 30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예술가의 집 다목적실 및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이번 학술대회는 ‘재난의 상상력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북한 문학예술’을 주제로, 북한의 주요 재난들과 그 시대의 문학예술 분야를 연구하여 북한의 사회상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의 시간을 가졌다.총 3부로 진행된 ‘2021년 가을 학술대회’에서 1부는 “재해 전후 문학예술의 지형”을 주제로 고자연 인하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으며 발표자 및 토론자로는 김성수(성균관대),
조선시대에도 ‘시험’과 ‘낙하산’은 있었다. 고위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추천’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추천하는 사람의 마음대로 등용이 가능했던 건 아니었다.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었고, 이 부서의 업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부서도 존재했다. 상호견제의 톱니바퀴 속에서 낙하산을 솎아냈다는 거다. 물론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 견고한 시스템은 무너졌다.‘공무원 시험’은 역사가 오래된 제도다. 6세기 중국 수나라에서 시작해 우리나라에선 10세기 고려 광종 때 도입했다. 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하기 시작하면서 고위 공
여름 클래식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의 두번째 장이 열린다. 클래식 레볼루션은 특정 작곡가를 선정해 그들이 남긴 작품을 다채롭게 조명하는 클래식 공연이다. 열흘 동안 독주회부터 실내악, 협주곡, 교향곡 등 다양한 장르의 클래식 공연을 선보인다. 제1회 클래식 레볼루션의 막이 올랐던 지난해엔 독일 작곡가 베토벤이 주제였다. 올해의 주제는 탄생 100주년을 맞은 아르헨티나 작곡가 피아졸라와 낭만주의를 이끈 독일 작곡가 브람스다.‘탱고의 황제’라고 칭송받는 피아졸라는 정열적인 전통 탱고 음악에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한 ‘누에보(새로운) 탱
국립한국문학관(관장 염무웅)은 지난 26일 제1회 국립한국문학관 학술대회 ‘문학, 데이터. 효과.’ 1부 사전행사로 작가 대담을 개최했다.선배 시인 백석을 향한 애정과 존경으로 ‘백석평전’을 쓴 안도현 시인과 분단 이후 고향 정주에 남은 백석을 주인공으로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을 쓴 김연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작가 대담은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사회를 맡았다.“백석이라는 흰 바람벽이 있어, 소설가 김연수와 시인 안도현은 일곱 해의 마지막과 백석평전을 썼다”는 행사 문구처럼 ‘흰 바람벽이 있어, 기대 쓰다’를 주제로 진행된 작가 대담